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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후기]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애프터 미투- 그레이섹스 GV를 다녀왔습니다
  • 2022-11-18
  • 988

<애프터미투> 영화 포스터


지난, 11일(금)에 열린 애프터미투: Ep.4 그레이 섹스 GV에 다녀왔습니다. 그레이 섹스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요. 그레이 존에 갇힌 섹스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명백한 강간에서부터 헷갈리는 순간들까지 찝찝하지만 결코 지나칠 수는 없는 우리들의 섹스에 대해 담론의 장을 여는 도발적인 영화이지요. (참고로 감독님께서 제목에는 섹스가 꼭 들어가길 원하셨다고 하네요. 동의없는 스킨쉽이었지만, 자신이 성적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으셨대요.)


애프터 미투이니만큼 미투 이후의 변화를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처음은 국내 첫 스쿨미투로 알려진 용화여고 사건에서 가해 교사를 감싸는 동료 교사들과 학교 재학생들의 항의로 시작을 합니다. 특히, #With_You라는 해쉬태그를 피해자에게까지 닿도록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외부까지 잘 보이도록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부착한 것 뿐인데 특정성을 가져서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말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피해자에게 무차별로 가해지는 역고소 사례들이 근간으로 하고 있는 논리구조와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선생님을 마주치지도 말고, 눈에 띄지도 말고, 그냥 눈 앞에 보이지 말아라”는 선배들의 말은 20여년이 되어서야 그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또, 중년이 된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자기 말하기는 약 40여년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레이 섹스까지를 연결하는 이 횡단적 서사는 긴 시간의 삶 속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직면해 온 순간들을 엮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할 용기를 가지기까지의 시간을 이어온 문화예술계의 조력자를 등장시킨 강유가람 감독님의 촬영분도 빼놓을 수 없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추천할만한 부분이라고 느낀 것은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지점이 없었던 것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재현의 윤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큰 스크린을  피해자분들의 그림이나 일기장 뿐 아니라 명화나 파도 등의 간접적인 상징을 사용하여 해당 장면을 채웠는데 그것이 극예술 같은 느낌을 주었을 뿐 아니라 진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서 좋았습니다. 피해자의 모습이라고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너무 많았다면 포르노그라피적인 재현처럼 느껴지거나 가학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러 질감이 느껴지는 선 드로잉으로 구현한 미술 감독님의 혜안도 돋보였습니다.


 네 번째 챕터인 그레이 섹스에서는 여러 가지 경험들이 나오는데요.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사친이 술에 취한 자신을 준강간한 사건을 강간으로 명명하지 않고자 그 사람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편지를 쓰는 등의 연애를 이어간 이야기, 클럽 바깥에서 만난 사람과 모텔로 갔지만, 예상에는 없었던 섹스를 하게 된 이야기(유독 숙박업소에 가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통념이 많지요. 이것이 좋은 반례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자신만큼 너를 배려해주는 이가 없다고 하면서 성관계의 시작과 끝을 자기 멋대로 정하고 행위해 관계가 끝난 후 강간당한 느낌이 들어서 괴로웠다는 이야기, 틴*의 앱으로 만난 사람이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전문 마사지사도 아니었거니와 성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사람의 이야기 등 불편한 섹스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해당 당사자와 친밀한 관계였거나 성적 동의가 없었어도 내가 성적 욕망을 품고 있었기에 성폭력으로 언어화하기 어려웠고 성폭력 피해라고 인지할 경우 올라오는 공포감에 눈을 감아 버리고 적극적으로 가해한 상대에게 발 맞춘 에피소드는 우리의 데이트 문화, 혹은 성문화 전반이 순결한 피해자담론과 공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성관계를 굳이 건강 상의 이유나 체력 등을 사유로 해야만 거절로 받아들이는 관행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연인 사이에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도식이 남성중심적 성문화에서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아요. 상황이 이러니, 연인관계에서는 완곡한 거부를 표현하여 성적 표현을 피하는데요.원하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붙이는 것이 되려 반박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은 거절을 거부하는 남성적 성문화가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얼마나 억압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놓칠 뻔한 지점을 생각해냈는데요. 우리 모두가 성적 동의에 숨은 의도를 관찰할 능력을 같게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그것은 주관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하기에 성적 표현을 하기에 앞서서 성적 동의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성적 친밀감을 드러내기 직전에도 확인해야하겠지요. 대부분이 로맨스적인 무드를 깨기에 눈빛만 봐도 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도로 친밀해야 가능한 것이고 내가 강하게 욕망하는 경우에는 상대의 의도를 내 입맛대로 규정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할지라도 개인의 표현 속에 숨겨진 속내를 알면 좀 상대를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더 배려할 수 있을테니 상대를 이 참에 더 잘 알아간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습관을 기르시면 어떨까요?게다가, 상대가 지적 장애나 자폐증같이 유도 심문 같은 말하기를 하면 자기 결정을 쉽게 바꿀 취약성이 있는 경우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더 어렵다고 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의사에 따르라는 다그침이나 위계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의 조건 설정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적극적 침해행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이렇듯 성적 위협이나 성적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즐길 권리로서의 성이 퇴색되는 듯한 지점이 있는데요. 영화에서 공주처럼 우리는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객체로서 훈육받아 왔기에 적극성을 못 내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어떠한 성적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하기를 원하는지 여유있는 시간에 한 번쯤은 고민해보시는 것을 추천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