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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북클럽 다불다불 <완벽한 피해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문제>
  • 202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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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북클럽 다불다불에서는 모함메드 엘쿠르드의 <완벽한 피해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를 함께 읽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모여든 참여자들은 모두 마지막까지 책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요, 테이블에 하나둘 올라오는 책들 역시 구석구석 밑줄과 인덱스로 두툼해진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일과를 마친 평일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책과 간식, 정성스레 쓰인 발제문을 두고 둘러앉은 사이 오간 이야기들은 다불다불, 지치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

팔레스타인 점령과 봉쇄, 집단학살은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저자는이스라엘인의 죽음에 인종학살의 연료가 될 만큼 뜨거운 비탄이 쏟아지는 반면, 팔레스타인인의 죽음에는 무감한 숫자 이외의 이야기가 주어지지 않음을 비판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는 서구 중심 사회에서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시온주의 식민주의를, 팔레스타인인의 눈동자를 결코 마주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인간화된 팔레스타인인은 강고한 이데올로기와 편견 아래 테러리스트 또는 피해자로만 재현됩니다. 테러리스트와 피해자 이분법의 제한된 내러티브는 학살과 저항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인에게 말할 기회란 오로지 완전한 피해자일 때, 불구가 되거나 기력이 쇠하거나 비탄에 잠겨 역사와 정치적 맥락 밖 인도주의적 구제의 대상이 될 때만 주어짐을 지적합니다. 호소의 정치는 그럼에도 제도 안 투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팔레스타인인들을 ‘존중할 만하고’ ‘공감이 가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발언권을 얻으려 했으나, 저자는 이러한 “송곳니 뽑기의 정치”가 극도로 제한된 피해자성 아래 팔레스타인인의 정동과 행위를 제한한다는 한계를 제시합니다.


‘완벽한 피해자’를 요구하는 논리는 시온주의 식민자가 아니라 피억압자에게 증명의 의무를 지웁니다. 식민자가 한 민족을 절멸하고 학살하려는 의지는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실행에 옮겨져도 그저 묵인되는 반면, 유대 국가와 시온주의가 자행하는 부정의에 대한 분노는 자기검열의 대상이자 증언을 묵살할 구실이 됩니다. 이러한 억압 속 ‘세련된’, ‘인정받는’ 말하기는 이스라엘의 폭력과 식민 지배를 비껴갈 뿐 아니라, 여권과 피부색의 색에 따라 생명의 위계를 나누고 발화에 권력을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인종주의를 재생산합니다. 저자는 이렇듯 저항의 말하기가 힘을 잃고 의미론적 비판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고, 반유대주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대신 불손함과 풍자 속 주체성을 발휘할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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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팔레스타인과 연대할까요? 특히나, 반성폭력 운동의 연대자로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함께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한 갈래의 답만 존재하는 질문도 아니고, 저 또한 하나의 명쾌한 답을 갖지는 못했지만, 함께 책을 읽고 발제를 들으면서 나눈 생각들은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데 방향이 되어 주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전형이자 모범, 혹은 실험실”(231)이라고 쓴 옮긴이의 말에서 그 힌트를 찾았는데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반성폭력운동 모두 통제와 폭력과 착취를 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을 구분짓고 다른 권력과 공모해 그 구조를 영속하는 뿌리 깊은 억압에 맞서는 운동이라는 점, 또 ‘무고한 피해자’라는 허상의 이미지를 잣대 삼아 압제에 순응하고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권력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곧 우리의 해방이라는 점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완벽한 피해자’의 위치를 강요하며 항변과 호소 이외 다른 발화를 허용하지 않는 식민주의 정치가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성폭력 피해자를 억압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음도 다시금 느꼈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을 법체계 내에서 다루게 될 때, 피해자의 역할은 수동적인 ‘피해자다움’을 가장하거나 ‘꽃뱀’ 논리에 어렵게 맞서는 것만으로 축소되어 버리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발제문에서도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고유한 야망과 욕망, 분노, 복수심이 법정에서 보여져선 안 될뿐더러, 피해자의 발화가 종종 변호사 시장에서 피해자를 재단하고 수치를 주는 수단으로, 유튜브와 커뮤니티에서 조회수를 얻기 위한 상품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어려움이 다루어졌는데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피해자의 말하기를 돕고,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과 정의를 함께 모색하기 위한 길을 찾기까지 드는 고민을 서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북클럽이 열린 5월 28일은 해초와 승준, 동현 활동가가 가자지구를 향한 항해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불법 나포되었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요, 활동가들의 소식을 향한 여론과 이재명 대통령의 반응 역시 화두에 올랐습니다. 미국 등 서구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답습된 미디어와 여론 속 대통령의 발화 자체는 (매우 예상 밖이면서도) 긍정적인 일이었지만, 활동가들이 전쟁과 봉쇄를 뚫기 위해 배에 올라야 했던 동기보다 항해의 합법성 여부,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여부와 같은 형식만을 따졌다는 아쉬움도 공유했습니다. 동시에 혐오와 편견 어린 발언에 대항하려는 우리 역시 반박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피상적인 법령만을 근거로 드는 대신, 폭력과 부정의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비판해 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새겨 보았습니다.


분노와 고통, 또 한편엔 시니컬함과 유머가 비유와 상징으로 날카롭게 뒤얽혀 있는 책을 읽어내는 것은 지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열띤 토론으로 슬슬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참여자들은 “어떤 팔레스타인인이 될지 선택”(231)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희망을 나누었습니다. 성폭력 생존자의 말하기가 세상에 내는 균열처럼, 시스-이성애-비장애중심주의-자본주의 가부장제의 규범을 신나게 위반하며 나아가는 페미니스트의 연대처럼, 우리도 매일매일 마주하는 혐오와 편견에 용감하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지 말고 함께 나아가자고 약속하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이 글은 북클럽 다불다불 참여자 도희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