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겨울과 봄, 광장을 가득 채운 빛을 기억하시나요? 한파에도 똘똘 뭉쳐 자리를 지키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이를 위해 경찰을 막아서고, 참담한 순간에도 함께 케이팝을 부르며 기운을 북돋았지요. 사실 늘 광장에 있었던 여성들이 새삼 정치적 주체로 부상한 시기였습니다. 많은 기사에서 왜 여성들이 그토록 거리를 가득 메웠는지, 이에 비해 남성들의 수가 적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기도 했죠.
출판사 롤링다이스의 기획자 임소희 님은 2030 여성들의 개인사에 주목했습니다. 여성으로 뭉뚱그려 납작하게 해석하기보다 어떤 삶에서 어떤 감각이 파생해 광장으로 이끈 것인지 들여다보기로 한 것입니다. SNS에서 공개적으로 작가를 모집하고 9명의 역사를 담아낸 책이 바로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이하 이평빛)>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9명의 작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각자의 언어들이 하나의 결로 이어져 ‘우리는 함께한다’는 든든함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빛의 물결을 이뤄냈던 그 시간들이 머릿속에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이번 책담회는 소희 님의 제안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두 시간을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어요. 소희님과 상담소 활동가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 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나의 경험, 새롭게 고개를 드는 고민들을 계속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몇 가지 골라 여러분에게도 공유합니다.
“각자가 가진 가장 밝은 빛을 들고 한데 모였던 거다” -52p
이번 광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응원봉을 꼽을 것입니다. 모양도 빛깔도 다른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어둠을 비추던 광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온 이유를 팬덤 문화로 납작하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평빛>의 두 번째 글을 쓴 신지현 작가의 해석이 더 와닿습니다.
이 응원봉이 광장으로 나온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마음인 ‘사랑’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내 국가, 내 가족, 자유 등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켜내고자 각자가 가진 가장 밝은 빛을 들고 한데 모였던 거다. (중략) 그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응원봉은 그저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빛나는 마음일 것이다.
활동가로서 여러 집회를 다니다보면 일면식도 없는 이 사람들이 단지 하나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한데 모인다는 것이 마냥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곧 서로가 서로의 원동력이 되기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합니다. 투쟁을 이어가는 힘은 분노가 아닙니다. <이평빛>에도 나오지만, 분노는 사람을 너무도 쉽게 지치게 합니다. 결과에 따라 허망함과 무력감에 훨씬 쉽게 휩싸이게 됩니다. 반면,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할 때 느껴지는 묘한 고양감은 ‘나와 같은 것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라는 든든함, 소속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집회에 한 번이라도 나와 본 사람이라면 분명 느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들 죽고 싶어 하면서 대체 왜 앞장서서 광장으로 모여든 걸까?” -79p
우리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페이지는 79쪽이었습니다. 소희 님은 한국의 자살율, 그 중에서도 2030 청년 여성의 자살율이 유독 높은 것을 설명하며 운을 떼었습니다. <조용한 학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며 이 사회가 만든 출구없는 절망과, 이에 좌절하는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왜 ‘그렇게들 죽고 싶어 하면서’ 광장에 모여든 것일까요? 최윤주 작가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폭력 속에서도 용기를 내려는 것처럼, 혼란 속에서도 더 나은 길을 찾으려는 것처럼, 이전과는 다른 삶을 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참담한 삶이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강렬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그 마음의 그을음을 쫓아 광장까지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들에 순간 머리가 좀 띵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온통 읽힌 것만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아까 신지현 작가가 언급한 사랑이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사실 증발하고 싶다는 말에도 미약하게나마 사랑이 담겨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가장 큰 슬픔만큼은 남겨진 사람들이 겪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 그건 내게 있어 무력과 비관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의리이자 사랑의 표현이고, 여태는 그 마음이 매일을 연장해주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역시 세상을 바꾸는 건 ‘폭력’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버팀목이라는 단어로 일축할 수 없는, 너무도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사랑의 감정이 나를 구하고, 뒷걸음질 치는 세상을 구하고, 또 서로를 구하는구나.
“연대는 존재를 넘어 출현하고 인식될 수 있는 곳으로 흘러야 한다” -230p
이번 광장이 마냥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터프의 성소수자 혐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도 SNS에서도 퀴어와 트랜스젠더는 쉽게 배척당했습니다. 어느 정치인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그 정치인의 기조와 다르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난했고요.
그래서일까요? 아쉬운 이야기이지만, 광장에서의 화력은 이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을 집결하고 조직해야하는 상담소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혐오 세력을 수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옵니다. 이지윤 작가는 이번 광장의 조직력이 ‘가해자가 특정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번 윤석열 비상계엄 사태는 처음부터 가해자의 정보를 확정한 게임이었다. 누가 이 내란의 우두머리인지 모두가 안다. 내가 싸우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울 힘을 얻는다.
조금 서글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우리를 한데 묶은 것은 함께 몰아내야하는 상대가 분명히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지윤 작가가 후술한 것 처럼, ‘주류가 되어 싸울 수 있는 경험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생계의 문제로 직결되는 이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승부욕을 박탈당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경쟁에서 밀려나온 여성들이 어떤 효능감을 느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광장 이후 우리가 요구하고 욕망하는 것은 제각기 달랐습니다. ‘싸워야 할 상대’가 일원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집결해갈 것인지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선 스스로를 계속 보이는 곳에 드러내는 일을 계속 하려 합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 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한 엄지효 작가는 그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연대는 존재를 넘어 출현하고 인식될 수 있는 곳으로 흘러야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신체(육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가 곧 우리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산 건 아닐까? (중략) 조금이라도 소리를 높여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다가는 옆자리 안티 페미니스트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연대의 힘이고, 이 연대가 물리적인 실체를 가졌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연대가 현실에서 실체를 갖게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가상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
이번 광장의 이야기는 곱씹어볼 지점들이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이미 정성적 평가를 마친 것도 있겠지만, 아직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광장에서의 따뜻함을 마음에 품은 채로, 이후의 연대를 더 넓게 더 강하게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