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후기] <강간죄 밭 갈고 동의 심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알게 된다는 것의 힘
강간죄 밭 갈고 동의 심기 활동(이하 강동심 활동)에 참여하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 하나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사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몰랐다면 모른다는 말로 외면할 수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된다면, 그리하여 번거롭고 힘든 일들에 뛰어들게 된다면 그건 절대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알게 된다면, 그 앎으로 인해 내가 움직일 힘을 얻게 된다면 마냥 덮어놓고 모르는 채로 있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되리라.
내가 강동심 활동에 참여한 경위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24년도 겨울부터 이어졌던 윤석열 정권 탄핵 집회를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그 겨울과 봄 그 광장에서 소위 말하는 ‘운동권’들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이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또다시 해가 바뀌어도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나 역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바다 건너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나 애인과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자들의 뉴스를 보며 세상이 말세라며 혀나 차고 마는 마음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알아버린 이상 외면할 수 없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2년에 가까워지는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알아가려 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니 나는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과의 활동이었음에도 에브리타임이나 학교 건물의 게시판이 아닌, 광장에서 만난 개인 연대자들끼리의 채팅방에서 강동심 홍보 포스터를 마주치게 된 것은 절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고.

(기획단 매주 뒷풀이 중 치즈님이 만들어 오신 떡볶이! 덕분에 멋진 포트럭 파티가 되었습니다.)
강동심 활동의 주된 내용은 그것이었다. 비동의 강간죄라는 의제를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을까. 사실 나에게 있어서 그 고민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남들보다 한 주 일찍 개강하는 일정 탓에 우울해져 있기 때문이었을 수도, 좋아하는 배우의 차기작 소식에 들떠 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런 시건방진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는 그저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성추행에 관련된 적도 없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여성학이나 사회학 같은 것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나는 어쩌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와는 하등 관련도 없는 일’로 황금 같은 방학 동안 (심지어 계절학기까지 수강했으므로 남들보다 절반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모임마다 왕복 5시간의 거리를 오갔던 것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약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알게 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움직여줄 사람들이 어디로 모이는지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2026년 919 기후정의행진에서 강동심 캠페인 부채를 빛의 속도로 나눠주신 치즈님)
지난해의 기후정의 행진에 처음 참여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도 아니었고 9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더운 날씨도 아니었다. 퀴어, 여성, 노동자, 국제사회의 여러 문제들. 기후 위기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서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되는 건가?’ 싶은 주제들을 내세운 부스들의 행렬과 발언자들의 발언이었다. 그 광경은 하나의 외침 같았다. 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외침, 나아가 기꺼이 움직이겠다는 외침.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기 앞서 그때를 떠올렸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로를, 자신이 모르고 있던 어떤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이 어디로 모이는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나에게 있어서 광장은 그런 곳이었다.
그저 모를 뿐이라면 평생 모른 채 살 수 있겠지만, 눈앞에 들이밀어진 사실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활동을 계획하며 내가 주장했던 의견은 사실 아주 단순한 나열이었을 뿐이다. 어떤 전략이나 프로그램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한, ‘우리에게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달할 기회뿐이었다. 그 사실이 전해지기만 한다면, 누군가 그 사실을 ‘알게 되기만’ 한다면 되었다. 안다는 것의 힘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에, 그 사실이 분명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믿기에 내릴 수 있던 판단이었다. 몰랐다는 사실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주지만 알게 된다면 그건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힘이 되어준다. 몇 달 전의 내가 그랬듯이 우리를 마주한 이들이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간죄 개정을 외치는 대학 내 페미니스트 액션 기획단, 강간죄 동의여부로 개정하자! 종이 부채의 모습)
연대 홍보가 빼곡하게 적힌 부채를 나눠주기로 한 날의 기후정의 행진은 집회의 의제를 대변하듯 뜨거운 볕 아래에서 진행되었고, 덕분인지 강간죄 개정 의제를 담은 부채는 말 그대로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제 발로 찾아와 부채를 인원수만큼 받아 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자 이미 부채를 받아 갔던 사람들과 마주치며 감사 인사를 전해 듣기도 했다. 집회 대오를 지나다닐 때마다 익숙한 디자인의 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부채를 받은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작은 글씨들을 전부 눈에 담고 있었다. 부채를 받아 간 사람들 중 누구도 내게 직접적으로 함께 움직이겠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앎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집회 참여자들에게 캠페인 종이 부채를 나눠주며 강간죄 개정의 필요를 설명하는 치즈 님의 모습)
활동의 마지막 모임을 준비하며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학기 중에 들어서면서 산처럼 쌓여가는 과제와 수업이 끝나고 난 뒤 부리나케 달려가야지 경기도 남부 끝자락의 학교에서 서울 중부의 상담소까지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까지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학과 축제를 준비하며 대본을 쓰면서 발표용 프레젠테이션까지 만드느라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남아있던 날도 있었다. 평일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에 올랐을 때는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 다음날 과제를 더 손보는 것이 내게 이득인 결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부채 디자인 시안을 제작할 때부터 ‘그래도 학교 일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염려가 이런 뜻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장장 3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달려온 이유는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주 잠시 움직였을 뿐인 활동으로 족히 몇백 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릴 수 있는지 알아버렸고, 나와 또래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으로 오는지 알아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알게 된 모든 것이 힘이 되어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시험이, 과제가,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음에도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게 만들었다. 알게 된다는 것의 힘이란 이렇게 끈질기고 강력하다.

(강동심 1기 캠페인 공유회 후 단체사진. 강한 힘이 생긴 모습들!)
활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장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만일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아무 문제없이 일상을 살아가며 학교에 다니고 내 일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힘이 생겼다. 내가 모르던 곳에서 일어나던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아주 강한 힘이 생겼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