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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모성 규범과 돌봄노동 사이에서 - 핫이슈지의 「극한직업: 어린이집 교사」편을 보면 든 불편함에 대하여.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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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나는 이번 핫이슈지의 극한직업: 어린이집 교사편을 보며 불편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목이 쉬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교사. 학부모의 요구에 응하느라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보내고 하루 일과를 일일이 보고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상 학부모'는 너무도 당연하게 엄마로 상정된다.

 

물론 과도한 요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경쟁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이 여성, 특히 엄마에게 집중되고, 그 압박이 다시 또 다른 여성 노동자인 교사와 보육교사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함께 살피지 않는다면, 이를 단순히 '맘충'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하기에는 놓치게 되는 맥락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2. 본론

 

산업화 이후 사회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아이는 무엇보다 어머니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보는 존재라는 모성 규범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등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돌봄을 더 이상 한 사람의 책임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국가는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 공적 돌봄 체계를 확대해 왔다. 어린이집은 크게 늘어났고,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취업한 여성뿐 아니라 미취업 여성의 자녀들도 어린이집에서 돌봄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모성 규범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오늘날 좋은 엄마란 자녀의 욕구를 세심하게 살피고, 발달에 필요한 환경과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것을 놓치면 엄마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좋은 엄마'는 단지 자녀의 학업 성적뿐 아니라 교우관계, 외모, 자존감, 정서적 안정까지 아이의 삶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처럼 엄마가 자녀 교육에 과도하게 몰두하고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은 개인의 성향이라기보다, 가정에서 교육의 책임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에게 부여된, 사회적 구조와 맞닿아 있다. 학벌주의가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 잡은 상황에서 아이의 교육은 엄마의 성과로 평가되고, 엄마들 역시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교육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는 '유난스러운 엄마'라는 이미지로 쉽게 치환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모성을 손쉬운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 뿐, 정작 교육 불평등과 과도한 경쟁, 돌봄의 성별 분업 같은 사회적 문제는 그대로 남겨 둔다.

 

어린이집은 대표적인 여성화된 노동 현장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뿐 아니라 안전을 관리하고,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며, 일상적인 생활 돌봄과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여기에 학부모와의 소통, 민원 응대, 정서 관리까지 더해지면서 교사의 업무는 교육 노동을 넘어 고도의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언제나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 역시 업무의 일부가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동은 전문성을 갖춘 노동으로 인정받기보다 '원래 여성이 잘하는 일'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노동의 강도에 비해 사회적 권위는 낮고, 교육과 돌봄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까지 관리해야 하는 이중의 노동을 감당하게 된다. , 이들에게는 노동을 수행하는 것뿐 아니라 감정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업무로 요구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아이의 발달에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일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여성들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놓인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의 상당 부분은 이제 어린이집이 함께 수행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댄스, 스포츠, 음악, 요리, 도예 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며,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어머니에게 요구되던 교육과 돌봄의 역할 일부를 교사가 대신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귀속되고, 교사 역시 그 기대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결국 엄마와 어린이집 교사는 서로 대립하는 존재라기보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하고 있는 여성들이다. 엄마는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요구받고, 교사는 그 책임의 일부를 대신 수행하면서도 언제나 친절하고 헌신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돌봄과 교육을 둘러싼 불안과 부담은 여성들 사이를 오가며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의 노동 문제를 유난스러운 엄마맘충의 문제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엄마와 교사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왜 아이의 성장과 돌봄에 대한 책임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3. 나가지 못 하며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이상적인 모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무한한 희생과 사랑으로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존재로 숭배되었다. 그러나 숭배는 언제나 높은 기준을 전제한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 숭배는 가장 손쉽게 혐오로 뒤바뀐다.

 

'맘충'이라는 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이상화된 엄마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이기적이거나 유난스럽다고 판단되는 순간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결국 '위대한 어머니''맘충'은 서로 반대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동일한 모성 규범이 만들어 낸 두 얼굴이다.

 

활동가의 유치원 교사인 친구가 '진상 학부모'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교사인 친구가 겪는 어려움은 분명 실제하고, 그 고됨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왜 결국 '엄마'라는 존재에게만 귀결되어야 하는지, 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인지 싸우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할 재간이 없다.

 

내가 뒤늦게라도 핫이슈지의 극한직업: 어린이집 교사편에 대한 글을 쓴 것은, 활동가로서 이 풍자를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재미있다. 하이톤으로 어머니~~” 하며 학부모를 맞이하고, 벌레를 잡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남는 씁쓸함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다.

 

아직은 설익은 생각이고, 더 고민해야 할 지점도 많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이유는 그 씁쓸함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가지 못 하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4. 참고 문헌

 

정지연- 어린이집에서의 아동돌봄과 모성의 재구성 (2021)

박다솜- 모성 숭배와 모성 혐오의 악순환 이수지의 제이미맘캐릭터와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을 중심으로 (2025)

오형규- 어린이집 교사는 왜 진짜 극한직업이 되었나 개그맨 이수지의 진상 학부모 풍자··· ‘내 새끼 지상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 (2026)

이진선- 유급 노동으로서의 아이 돌봄 수행과 의미: 보육교사의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