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지원

(한국성폭력상담소 단호한시선 2020.08.26.)
통제에서 보장으로, 「형법」 제27장 ‘낙태죄’ 폐지의 의미와 향후 과제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 제1차 권고를 환영하며
지난 8월 21일,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이하 ‘양평위’)는 「형법」 제27장 ‘낙태죄’ 폐지를 통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법무부에 권고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개정시한(2020년 12월 31일)을 앞두고 법무부는 「형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양평위는 ▶처벌에서 권리 보장으로 법·정책 패러다임 전환, ▶「형법」 제27장(낙태의 죄) 폐지, ▶성과 재생산·건강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법무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제시했다.
처벌에서 권리 보장으로 법·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처벌과 사회적 낙인찍기를 넘어서 ‘여성이 평등·건강·안전·행복하게 임신·임신중단·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형법」 제27장 ‘낙태죄’는 국가가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지됐다. 어떤 형태로든 임신중지를 규제하고 특정 사유 또는 주수에만 허용하는 현행 법체계를 유지한다면, 판단은 국가가 하고 책임은 여성이 지도록 억압해온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판단은 여성이 하고 보장은 국가가 하는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때다.
「형법」 제27장 ‘낙태죄’ 폐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으로 특정된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제270조 제1항(업무상동의낙태죄)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라고 선고했는데,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그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이 위헌이라면 「형법」 제27장의 다른 조항(동의낙태죄, 의사 제외 업무상동의낙태죄)도 위헌이라고 보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 단, 양평위는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임신중지를 하게 하거나 이를 통해 여성을 상해에 이르게 하는 ‘부동의 낙태죄’는 보완하여 제25장(상해와 폭행의 죄)에 두도록 권고했다.
또한, 양평위는 「형법」 개정안과 관련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서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적극 반영’해야 하며,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고 정확한 임신 주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획일적으로 일정한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형벌을 면제하거나 부과하는 것은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나 타당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임신 주수를 오차 없이 명확하게 판별하는 방법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임신 주수를 언급할 때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한 임신주수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리주기는 다르거나 불규칙적일 수 있고,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과 성관계를 한 날, 수정이 이뤄진 날 사이에는 오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초음파 진단도 의사의 판단에 의존해 임신 주수를 ‘추정’할 뿐 형사처벌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증명’하지는 못한다. 양평위는 ‘많은 선진국에서 임신의 주수를 구분하는 것은 처벌을 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주수에 따른 적절한 사회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양평위는 법무부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의 관계부처 및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하여 성과 재생산·건강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이 대책에는 성교육·인권교육 등 실시, 정보제공·의료지원·사회복지시설 이용 등 사회서비스 확충, 성평등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등이 기본 내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고안에서도 드러나듯이 임신중지 비범죄화는 최종 과제가 아니다. 성과 재생산·건강권을 보장하려면 더 많은 논의와 법·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개정시한까지 앞으로 약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통제에서 보장으로 법·정책 패러다임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낙태죄’ 폐지 이후 유산유도제는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의료인 교육·훈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 접근성과 실천율을 확대할 방안이 있는가? 임신중지가 불필요하게 지연되지 않으려면 어떤 사회적·경제적·의료적 변화가 필요한가?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려면 어떤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홍보해야 하는가? 이주민이나 장애인을 위한 통·번역 서비스는 준비 중인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처벌을 통해 임신중지를 통제하겠다는 탁상공론을 멈추고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통제에서_보장으로 #낙태죄_전면폐지 #판단은_여성이_보장은_국가가
2020년 8월 26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참조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련 논평 “임신중지는 죄가 아니다! 법무부는 형법 제27장 '낙태죄' 폐지 확정하라!”
http://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2&page=1&f_cate=&idx=5615&board_md=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