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2011년 4월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0주년
홈커밍데이 〈당신과 함께한 뜨거운 20년〉.
폭염과 장맛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저 문장을 어렵지 않게 읊을 수 있다.
그만큼 실무자들, 그리고 상담소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소리고,
그것은 즉 준비도 열심히 했다는 말이 되겠다.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걸 해보면 어때?”
상담소의 회원, 그리운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중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넨 말이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되면
엄청 신나고 감동적이지 않을까?
마도 | 본 상담소 온라인사업팀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아니한가!
상근활동을 시작하기 전, 상담소 후원공연을 위한 기획단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공연 좌석의 배정을 위해 그룹별로 세심하게 나뉜 명단을 보며 여기는 참 중요한 사람도 많고 고마운 사람도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티켓은 (당시의 나로서는)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회의가 있다며 지하 모임터로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해 처음 간 한해보내기에서의 모습은 또 어찌나 따뜻했던지. 별 것 아닌 퀴즈에, 실수 투성이 회원 공연에 열광하며 호응하던 회원들. 이런 게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힘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정처 없이 방황하던 나로서는 간만의 훈훈함이라 눈물이 찔끔 났다면 과장이려나. 어쨌든 이런 기운에 힘입어 회원가입을 했고, 상근활동을 지원했다.
그래서, 상담소의 회원들과 ‘그때 그 사람’들은 항상 감사하고 궁금한 존재다. 20년 역사를 함께 써나간 분들이라는 것도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상담소와 한 번 인연을 맺은 모두가 그렇다. 아는 분이던 그렇지 않던 간에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았다. <상담소는 사랑을 싣고>는 그런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상담소는 사랑을 싣고〉니까, 맨 땅에 헤딩하는 게 제맛.
활동가들이 20년의 인맥과 연락처를 모두 꿰고 있을 리는 만무할 터. 천 명이 넘는 회원 분들에게 보고 싶은 분을 찾아드린다는 웹홍보물을 뿌리는 것이 시작이었다. 역시나 의뢰가 쇄도……할 리가 없었다. 기꺼이 의뢰해주신 건들은 상담소에서 바로 연락을 드릴 수 있는 분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TV는 사랑을 싣고>의 묘미는 ‘맨 땅에 헤딩하기’ 아닌가. 물어물어 찾아가는 것이 코너의 핵심인지라 따로 연결을 드렸다. 좀 더 어려워야 재미가 있으니까. (의뢰인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씨가 되어 진짜로 콱콱 헤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선배 활동가 분들께 보고 싶지만 ‘연락 안 되는’ 분들이 계시냐고 여쭤보면 있다, 있으시단다. 상담소 개소 당시 도움을 주셨던 분, 지킴이 나눔이 상담원 같은 자원 활동을 하셨던 분 등 많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찾을 수 있는 분이 이렇게나 많다니! 여기까진 쾌재를 외쳤다. 이제 찾을 수 있어! ……헛된 기대였다. 전화를 돌려 ‘ 님을 아시냐’면 대개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요즘 연락이 되시냐’는 질문에는 다들 아니라고 하셨다. 살살 검색하려던 인터넷은 온갖 단서를 집어넣어 닥치는 대로 클릭질하는 수준이 되었고, 모 사이트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진 비슷한 연령대의 이용자들에게 단체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만났냐고? 아니, 대부분이 쪽지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감동의 드라마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두 분, 딱 두 분만 찾을 수 있으면 되는데.
“○○님이 맞으신가요?!”
이런 저런 과정 끝에 90년대 초반 활동하시며 도움을 주신 윤장순 님과 상담자원활동가이셨던 강영순 님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인터넷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역시 신상도 털리는 무서운 세상……이라기보다는 현재 하고 계신 활동이 바로 검색된 덕분이었다. 워낙 오랜만이라 냉랭한 반응이 올까 걱정도 했지만 모두 반가워해주시며 당시의 추억을 전해주셨다. 자원활동가 시절의 나였더라도 이렇게 반가웠겠지.
공명 토리 활동가의 능청스러운 리포터 연기와 함께 “○○님이 맞으신가요?!”까지를 카메라로 담으면서 두 분을 찾아뵈었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정겨운 인사를 나누다보니 오랜 시간 좋은 추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계신 것을 알았다. 새삼 우리 상담소가 참 많은 분께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던 걸 보니, 나도 참 상근활동가가 다 됐다.
이렇게 촬영까지 마친 것이 행사 전날이다. 어쩌겠는가? 집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뚝딱뚝딱 영상을 만들고 기절한 것이 아마 해가 뜨고도 한참일 거다. 쪽잠을 자고 헐레벌떡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하이-퀄리티를 추구한 완벽 상봉의 무대
대망의 홈커밍데이. <상담소는 사랑을 싣고> 시간이 돌아왔다. 자칭 ‘차도남(차가운 도시의 영양실조남)’ 자원활동가 공작 님이 능력을 발휘해 만든, 기존 프로그램과 똑같은(!) 로고가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하이-퀄리티다. 의뢰인이 등장해 사연을 이야기하고, 방문 과정이 담긴 영상이 흐르고, 대망의 ‘보고 싶은 얼굴’의 등장! 빠라라~빠람~ 이 순간 모두의 머리를 가득 메우는 바로 그 음악이 행사장에 울려퍼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이-퀄리티다. 긴장감을 주기위해(!) 잠시의 시간 여유를 두고 행사장 뒤에서 뛰어나오시는 강영순 님. 의뢰인 어린 님과 와락 껴안으셨다. 무대에서 말씀을 나누시는 두 분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때, 어린 님이 말했다. “사실, 아까 밥 먹는 데서 만났는데도 눈물이 나네요” 좌중폭소. 사회자도 뒤집어진, 리얼리티 살아있는 생방송의 묘미랄까.
<상담소는 사랑을 싣고>의 기획부터 연출까지는 이렇게 끝났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홈커밍데이의 하이라이트 아니었는가? 잘난 척을 해본다. 사실, 홈커밍데이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좌충우돌이었고 집에 가고 싶다며 울부짖던 밤도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사심(?) 가득해서 매달린 활동도 드물지 싶다.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인데 그 중요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회원 님, 상담소의 활동을 함께하고 지켜봐주시는 분들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상담소를 어떤 곳으로 기억하게 될까. 모든 만남이 소중하고 조심스러워 진다. 20년 간 상담소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참, 이런 저런 이유로 사장된 재밌는 기획들도 있는데, 한해보내기 같은 행사를 통해서라도 언젠가 꼭 선보이고 싶다. 즐겁자고 맘 먹으면 더 재밌게 놀 수 있다. 상담소에도 이런 기운들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 여러분께서 응원을 보내주시면 더 신나게 해볼게요. 퀄리티는, 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 마도 | 본 상담소 온라인사업팀 도마 위에 오른 것을 뒤집겠다며 호기롭게 지었으나 지금은 그냥 ‘도마도’의 마도. 말캉하게 구르며 재밌는 것을 찾아 헤매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