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고등학교에서 반 아이들이 한 남학생의 가슴을 자꾸 만집니다.
이것도 성폭력인가요?
<From 홍당무쌤>
A 안녕하세요, 홍당무쌤. 보내주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 성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다양한 성적 행위와 성적 실천들을 벌입니다.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적절하게 개입하고 상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와서 가슴이 나오고 털이 생기는 2차 성징기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남자아이들은 서로의 성기를 크기를 비교해보거나, 오줌 멀리싸기 같은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합니다. 이는 비단 남자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여서, 여자아이들도 친구들과 가슴의 크기를 비교하거나 서로 만져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러한 성적 놀이를 통해서 성에 대해서 배워나가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적 놀이가 모두가 성폭력이라고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홍당무쌤이 아이들 간의 놀이에 어른이 나서서 야단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말씀해주신 사례에서 제가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이 아이와 아이 사이의 단순한 성적 놀이를 넘어서서 한 아이를 두고 반 학우 전체가 놀려대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놀이에서는 서로가 ‘싫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에서는 서로 간의 대등한 놀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일방적으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당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때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여전히 ‘놀이’일 수 있지만, 개인에게는 이미 ‘폭력’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이 하고 있는 놀이의 내용도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자처럼 가슴이 나왔다며 만져보는 것은 이 남학생을 ‘여자처럼 취급’함으로써 놀리며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 남학생이 또래 아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다움’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 ‘충분히 남자답지 못하고 계집애처럼 보이기 때문에’ -, 암묵적인 놀림과 비난, 배타적 시선을 보내는 것입니다. 군대나 경찰, 학교 등의 남성집단에서 소위 ‘남성다움’을 갖추지 못한 남성에 대해 다른 동료들은 따돌림, 구타, 성폭력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집단에서 배제합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반 아이들은 놀림당하는 아이가 뚱뚱해서 ‘남성다운 몸’을 가지지 못했다고 암묵적으로 비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여자 취급하는 것을 통해 ‘남성다워질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또래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남성다움’의 강요는 개인에게 매우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래집단에서 공유하고 있는 ‘남성다움’의 내용이라는 것은 종종 ‘남자다운 남자는 여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기가 커야 한다’거나,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으며 여성은 은근히 강간을 즐긴다’ 같은 왜곡된 성 지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입니다. ‘남성/여성’을 구분짓고 왜곡된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은 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성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맺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 경우는 단순히 아이들의 성적 놀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반 아이들의 행위가 중단될 수 있도록 홍당무쌤의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반 아이들에게 느닷없이 ‘이건 성폭력이야’라고 말한다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 이게 왜 문제적인 행동인지를 반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네가 그 친구 입장이라면 어떨 것 같니? 누가 네 가슴을 자꾸 만지면서 여자 가슴이라고 놀리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애?’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From 보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