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성폭력 생존자의 긴급전화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던 지킴이
  • 보짱
그때 그 사람 | 1기 지킴이 정정기 회원 인터뷰

성폭력 생존자의 긴급전화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던 지킴이

이번호 나눔터 〈그때 그 사람〉에서는
24시간 성폭력 위기상담을 하던 지킴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성폭력은 발생 직후에 초기대응이 매우 중요하며,
사건 발생 직후에 즉각적으로 증거채취를 하고
고소 등 법적 절차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낮시간에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과 달리
밤 시간에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은 의료적·법적 지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4시간 성폭력 상담을 할 수 있는 성폭력위기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3년 성폭력 위기센터를 개소합니다.
성폭력 위기센터는 주간에는 상담원이 상담을 하고,
야간에는 야간 당직자와 지킴이라는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상담을 했습니다.
지킴이들은 주로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었는데
야간에 근무하면서 성폭력생존자와 병원·경찰을 연계하거나,
면접상담 전까지 1차적인 전화상담을 담당하였습니다.
1993년 성폭력 위기센터가 개소하여 2000년 해소하기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많은 훌륭한 지킴이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지킴이제도는 지금은 상담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서
초기 활동하신 몇몇 회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데,
1기 지킴이였던 정정기 회원을 모시고
그 당시 지킴이들의 활약상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interviewer _ 보짱

1기 지킴이 정정기 회원 인터뷰

Q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일은 『임원경제지』라는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시대 백과사전의 요리부분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Q 당시 어떻게 지킴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제 고향이 포항인데 남초현상이 심하고, 해병대도 주둔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입니다. 93년에 군대를 마치고 복학했는데, 학교에 지킴이를 모집한다는 벽보가 붙어있더라구요. 그게 왜 그렇게 인상깊게 들어왔는지 생각해보면, 성폭력이 만연한 동네에서 살다보니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남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지킴이를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모집한다는 것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킴이를 지원하러 왔는데, 면접을 보더라구요. 다른 지원자들도 많이 와있어서 면접 볼 때 많이 떨렸습니다. 면접 때도 최영애 선생님이 지킴이를 왜 지원했냐고 물어보셔서 같은 대답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4년 정도 지킴이로 활동했었습니다.

Q 지킴이로 야간 근무하실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사실 제가 밤새는 것은 힘들어해서, 지킴이로 근무할 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어떤 때는 밤을 꼬박 샜는데도 전화 한 통 못 받고 돌아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힘이 많이 빠지는데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닌지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밤이 없는데,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니까요.

지금 기억나는 전화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장난전화를 해서 분노에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 감당이 안되니까 옆사람에게 전화기를 넘기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그런 장난전화라도 받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 애들도 상담이나 교육이 필요하니까요.

Q 지킴이로 교육받은 내용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내용이 있나요?

A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생각나는 게 성폭력이 낯선 사람에 의해 많이 발생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아는 사람에 의해서 주로 발생한다는 내용이 놀라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들 중에 어린이가 많다는 것도 놀라웠구요. 당시에는 사회적인 이슈들이 많이 있어서 같이 시위도 나가고 법정참관도 했었는데, 의붓아버지에 의한 성폭력 때문에 남자친구가 가해자인 의붓아버지를 살해했던 사건이 기억에 많이 납니다.

지킴이 교육 현장 위기센터 지킴이 교육 현장

Q 지킴이로 활동한 것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A 지킴이로 활동했기 때문에 성폭력문제를 보다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죠. 그 전에는 성폭력이 만연한 지역문화 때문에 막연하게 문제의식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담소에서 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성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지킴이를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물론 대학도 넓지만, 출신대학을 벗어나서 서울 시내 전체에서 모인 대학생을 만나서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로도 매우 의미있었습니다. 제가 지킴이로 활동한 것을 알고 지금도 주위에서 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가끔 도움을 청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럴 때도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지킴이 경험담

이 경험담은 지킴이 활동일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994년 4월4일

상담원 선생님께서 저에게만 해주신 말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모두 기억합시다.
“성교육은 성지식 교육이 아니다. 인격 교육이다”
〈1기 양성철〉

1994년 7월15일

끊긴 전화 한통 외에 아무전화도 없었지만 상담일지를 묶고, 새로운 지킴이 두분을 만나고,
같은 지킴이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에 관한 얘기를 거리낌 없이 솔직히 말하고 싶은대로 얘기하고……
이것만으로 오늘 (어제부터) 근무의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코 허무한 날은 아니겠지요.
89년 계산으로 2분에 1건씩 일어난다는 강간, 그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밤을 보냈어요.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도 꺼려하는 이 사회의 아픔을 위해 보낸 밤은, 우리 인생에서 빛나게 남을 겁니다.
〈1기 조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