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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얼굴 - 정경자 “여성주의 상담의 힘은 성폭력 생존자로부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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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

한국성폭력상담소
앙·코·르 발기인

이번 호 나눔터 <보고 싶은 얼굴> 코너에서는 지난 4월 1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앙코르 발기인대회>의 무대에 올라 대표로 발언해주신 세 분의 앙코르 발기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앙코르 발기인분들과 상담소의 특별한 인연, 그리고 스무살 생일을 맞은 상담소에게 전하는 애정어린 메시지를 들어 보실까요?

interviewer _ 보짱

정경자님 인터뷰 사진
첫 번째 얼굴 | 정경자
정경자님은 현재 호주 시드니 UTS 대학의 Politics and Advocacy 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경자님은 상담소 초기 총무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정경자님은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초 발기인이자,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앙코르 발기인으로 가입하신 진정한 앙코르 발기인이기도 합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6월의 어느날, 정경자님의 사람좋은 온화한 미소만큼 다정다감한 상담소와의 특별한 인연을 듣고 왔습니다.

“여성주의 상담의 힘은
성폭력 생존자로부터 나옵니다”

interviewer _ 보짱

Q 상담소랑 20년째 인연을 맺고 계신데, 처음에 어떻게 상담소를 만나게 되셨나요?

A 상담소는 저한테 한국에 들를 때마다 찾게되는 친정같은 곳입니다. 상담소에서는 91년부터 94년까지 4년동안 일했습니다. 당시에 피임광고에 대한 섹슈얼리티 분석으로 여성학과 석사 논문을 쓰고, 신문에 나타난 성폭력 기사를 분석하는 연구를 도와주는 조교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영애 선배가 성폭력상담소를 개소한다고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저는 그전에는 잡지사에서 일했고 운동의 경험이 많지는 않았는데, 같이 여성운동을 하자고 제안을 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상담소에서 일하는 동안 너무 너무 재미있었죠. 당시에는 어디든 노동운동이나 맑스주의적 분위기가 강했고 운동의 엄숙주의가 있었는데, 상담소는 그런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상담소에 있으면 내가 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상근자와 상담원,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사이가 좋고 너무 잘해주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Q 상담소 초창기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당시에는 상담 뿐만 아니라 연구, 출판, 미디어 홍보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했어요. 1달에 한번씩 연구보고서를 발간할 정도였으니까요. 워낙 성폭력에 대해서 연구가 많지 않다 보니, 우리가 상담통계를 분석해서 ‘아동성폭력에서 친족성폭력이 얼마다’하고 발표하면, 다들 그런가보다 했던 시절이었죠. 그 당시의 상담소는 미디어와 매우 친밀한 조직이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각종 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이 상담소로 몰려와서 안 그래도 좁은데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그때는 상담소가 마치 기자들 대기실처럼 되어 버렸죠. 하도 자주 만나니까 나중에는 여성부 기자들하고는 상당히 친해졌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상담소가 언론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강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당시에 너무 돈이 없어서 사무집기를 거의 살 수가 없었거든요. 상담소 초기에 복사기며, 팩스며 이런 거 다 앞사무실에서 얻은 거예요. 마주보는 앞 사무실에서 이사를 갔나, 문을 닫았나 아무튼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상담소가 좋은 일 한다며 복사기며 팩스며 다 주고 갔어요. 자원활동가 중에는 집에 어머니한테 말해서 냉장고를 얻어온 사람도 있었답니다.

Q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한 지 20년이나 되었는데요, 20년이나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상담소가 개소한 지 20년이나 지났다니 믿기지 않네요. 정말 금방 세월이 흘러가버렸어요. 상담소가 상담을 하는 현장에 있다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피해생존자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을 통해서 운동의 목표를 만들게 되었죠. 워낙 가해자 처벌이 안된다고 하니 법을 만들어서 가해자를 처벌해야겠구나, 의료적 지원을 못 받고 고통받는 피해생존자가 많으니 의료서비스를 요구해야겠구나 …… 그 과정에서 피해생존자와 함께 국가에 성폭력 관련 정책들을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나갔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거야말로 상담소가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상담의 힘은 피해생존자로부터 나옵니다. 호주에서도 몇 개 안되는 여성주의적 강간위기센터가 살아남은 이유는 피해생존자들 때문입니다. 호주는 제도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대부분의 상담소는 국가 지원을 받아서 원스톱센터처럼 병원 안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주의 상담소를 찾아오는 피해생존자들은 “여성주의 상담소를 찾아 갔더니 그 상담내용이 너무나 달랐고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상담소를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이 호주에서 여성주의 상담소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여성주의 상담을 한다는 것은 단지 상담의 전문성이나 스킬을 키우는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담기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이 그럴 시간이 없죠. 누가 더 상담기법을 많이 알고 있나, 누가 더 전문적인 훈련을 많이 받았는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당연히 상담의 권위가 전문교육을 받은 박사나 연구자들에게 가거나, 사회복지기관이나 국가로 포섭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주의 상담은 관점의 문제이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제가 전화상담할 때는 내담자와 친구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제가 알고 있는 여성학 책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여성주의 상담의 원칙은 정말 쉽고 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피해생존자의 말을 믿어주고 신뢰하는 것, 피해생존자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 피해생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피해생존자의 의사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Q 스무살 생일을 맞은 상담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상담소는 한국과 같은 보수적인 사회에서 ‘성폭력’이라는 의제로 여성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담소뿐만 아니라 쉼터도 만들고, 연구 및 출판사업도 함께 하고 있죠. 이런 형태의 활동방식은 다른 나라에서도 매우 보기 힘든 모델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상담소를 기반한 한국 여성운동의 모델을 제시했고, 지금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리딩그룹입니다. 상담소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성운동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상담소에서 예전처럼 많은 연구활동을 벌였으면 좋겠네요. 사실 학자들은 여성운동의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라서 깊이 알지는 못해요. 일부 다른 학자들은 호주의 여성운동이 아직도 건재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단지 존재한다고 해서 건재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상담소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던 저는 폭발적인 여성운동의 힘을 보았고, 여성운동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여전히 현장의 최전선에 있고 여성운동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활동가들이 너무 바쁘니 혼자서 연구보고서를 다 작성할 수는 없겠지만 자문위원이나 주위 사람들을 적극 활용해서 많은 연구물을 만들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