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대체 언제/어떻게 써먹는 건가요?
타리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사무국,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차별금지법, 차별, 차별을 금지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혁명적입니다. 법으로요. 억울한 일 당하면 십중팔구 재수 없다고 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인 사회, 험한 꼴 당했다고 고소하고 재판해봤자 나만 손해보는 사회, 가해자가 덩치 큰 놈 일수록 가망 없는 사회, 세상사는 게 뭐 돈 없고 빽 없으면 그렇고 그런 거지 라고 체념하는 사회에서 그런 억울하고 차별받은 일을 법으로 금지한다니요!
차별금지법은 헌법에 명시된 ‘평등’을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인권기본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못 배웠다고, 못 생겼다고, 부모가 이혼했다고, 비정규직이라고, 여성이라고, 장애인이라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성전환자라고 조롱당하고 욕먹고 맞아왔던 사람들의 절절하고 처절한 사연에 대해서 정말로 국가가, 법이 나서겠다는 겁니다. 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법의 목적은 바로 “이 법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예방하고 금지하며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실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입니다.
근데 이게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걸까요? 참여정부 때부터 차별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얘기가 간간히 오가고, 2007년 정권 말기 때 실제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지요. 그 이후에도 일하고자 하는 노인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니까 ‘연령차별금지법’이 생겼고, 인종차별금지법과 학력차별금지법에 대한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장애인이 정말 몇 년간 온 마음을 통해 투쟁한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건 말할 것도 없구요.
제가 차별금지 법제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했던 경험과, 2007년 참여정부가 누더기로 만든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면서부터입니다. 물론 일군의 인권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될 때부터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지적해왔지만요.
문제는 여전히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차별이 법으로 금지될 수 있다는 것,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되어 왔던 것이 법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진 후에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차별인지, 무엇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되는지,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합의가 없다면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정부가 가장 많은 책임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 그리고 일정한 기준 이상의 차별행위가 일어났을 때 처벌을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국제적인 인권 규범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제정되어 마땅한 차별금지법은 왜 맨날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격을 말하는 대통령의 안중에 없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열심히 차별에 대해서 말할 겁니다. 그것이 모두의 인권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몇가지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차별과 폭력으로 인정하고 법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관점으로 읽으면 결코 다른 범죄보다 가볍다고 여기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중에 “동성애는 죄를 짓는 것이다. 죄의 대가는 에이즈다. 절대 동성애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동성애를 해서는 안되며, 동성애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회개하고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합시다. 신앙의 의미와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목사의 이러한 설교는 누군가의 신앙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의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의해 당신은 위법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사님이 계속해서 그런 내용으로 설교를 한다면 모욕감을 느낀 사람은 차별의 피해자로서 인권위원회 진정이나 소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얼마전 강용석 (아직)국회의원은 국회의장배 토론대회를 마친 뒤 대학생들과의 저녁자리에서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라고 하여 아나운서 비하와 성희롱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 발언으로 재판을 받았고 아나운서집단에 대한 집단적 모욕을 했다는 죄가 인정되었지요. 강용석 의원은 특정한 아나운서에게 이러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아나운서를 싸잡아서 모욕했습니다. 집단적 모욕에 대한 죄가 인정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우리사회는 아직도 죄로 인정될만한 폭력을 물리적인 것으로만 한정하는 인식이 많았는데, 그래서 이 사건은 참으로 기념비적입니다.
얼마전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장에서 증인심문을 받고, 재판부의 모욕적인 질문에 자살을 하고야만 사건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물리적인 (성)폭력보다 존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욕적인 언사를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더욱 파괴되기도 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가진 특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담아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했을 때, 과연 우리는 그 폭력의 깊이와 강도를 제대로 가늠하고 있을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담아 불이익을 주거나 폭력을 가했을 때 더욱 가중하여 처벌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인권의 근간을 흔들고, 그 어떤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그동안 차별로 인식되지 못했던 다양한 차별이 드러나고, 이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토론하면서 반차별 감수성을 높여나갈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돈 없고 권력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억울한 차별을 당했을 때 체념하지 않고 문제제기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정말로 악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집단적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사회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거 솔직히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타리 언제나 무언가 벗어나고파 '탈'입니다. 참고로 저는 사진의 패션왕을 닮았다고 해서 패션왕은 아닙니다. 다만 향해갈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