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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이 난감한 어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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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생각

아이들의 ‘성’이 난감한 어른들에게

정정희 | 본 상담소 부설 쉼터 열림터 前 활동가

‘성교육’에 대한 정의는 교육전문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치된 견해는 ‘성’은 인간관계의 표현이며, 성교육은 성을 자연스럽고 풍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 성적인 욕구를 적절히 조정하는 자기조절력 즉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교육자로서의 어른들은 이런 목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아이들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오히려 ‘성’이라는 낱말이 교육 앞에 붙으면 어른들은 곤혹스러워 합니다. ‘성’에 새삼 ‘교육’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민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뭐 그런 걸 배우나, 나이 들면 절로 알게 되는 거지’ 하기도 하며,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성’이란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해 하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적당한(?) 나이가 될 때까지, 성에 대해 알아도 될 때까지 (물론 이 시기도 부모 마음대로)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성에 대한 대화 자체를 미루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성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어른들도 성교육을 언제쯤 시작해야 할지,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까지 해야 할지, 괜히 호기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런 우리의 망설임과 혼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자신의 ‘성’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적도 없고, 기초적인 성 정보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자라면서 성적인 문제나 성충동 때문에 겪었던 많은 혼란들을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갖게 된 성에 대한 갖가지 통념들과 행동들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 - 성의 상품화, 성의 폭력화, 현실과 동떨어진 성의 이미지화 등 - 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 사람의 성에 대한 태도, 성 의식, 성 가치관 등이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 또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어른들이 만들어낸 성의식과 행동들을 그대로 배우고 익히게 되겠지요. 더구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 속도도 빠르고 그에 따라 성적인 호기심이 커진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성상품의 내용도 다양하고 자극적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아이들의 접근을 통제하려 해도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가 ‘요즘 아이들은……’ 하는 아이들의 성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인 것입니다.

아이의 성적인 어떤 행동이 걱정스럽다면, 혹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큰 아이 때문에 불안한 생각이 든다면 아이의 행동 자체에 대한 문제를 찾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읽는 자신의 성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왜냐하면 성과 관련된 상황이나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성의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 가치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성 행동을 판단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부모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가진 성 통념들은 여러 방면에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에 대한 궁금증을 별스럽게 생각하거나 성적인 행동을 금지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자신의 몸의 느낌이나 감정의 표현을 자연스레 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남성의 성 욕구는 자연스런 일로 여기고 여성의 성 욕구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마음은 사춘기 남자아이의 자위에 대해서는 당연해 하며 방에 휴지통까지 놓아주는 반면 어린 딸의 자위는 때려서라도 못하게 하려 합니다. 폭력적인 성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사춘기에 그럴 수도 있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해하는 반면, 폭력의 대상이 되는, 약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맙니다. 미성년 남녀가 성관계로 임신을 하면 피임을 하지 않은 책임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남습니다. 임신을 하는 것은 여자이니 알아서 준비하라는 말이겠지요.

동성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동성 간 사랑을 다룬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에 옮는 것처럼 불안해 합니다. 성에 대해 적극적인 남성과 소극적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거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상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숭이라며 무조건 사랑을 강요하는 스토커를 만듭니다. 심지어 성폭력가해자가 술을 마셨을 땐 처벌을 감해주는 이유가 되지만, 성폭력피해자가 술을 마셨다면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린이성폭력이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0%에 이른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아는 사람이 우리 아이의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아이에게 그저 ‘낯선’, 나쁜 사람을 피하라고만 가르칩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성교육이 단순히 성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성교육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성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아이들과 ‘성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나(부모, 교사 등의 성교육자)의 성 태도, 성 행동 등 성에 대한 자신의 전반적인 생각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라 합니다. 성 교육자로서 자신의 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만 아이의 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성적인 질문이나 행동 또한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는 그 순간부터 이미 성교육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이가 딸이었으면 혹은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태어난 후 성별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 말과 행동, 자라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아이들은 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보고 듣고 익힙니다. 이렇게 의식하지 않고 부모가 보여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배우고 알게 되는 것이 성교육의 1단계라면 2단계는 바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부모가 백과사전이 될 필요는 없지요. 모범답안보다는 아이의 성적인 호기심을 이해해주고 성에 대한 질문에 귀 기울여주는 어른들의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 몸에 대한 이해와 사랑,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한 호기심과 배려, 내 몸과 타인의 몸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 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이 행복한 관계 맺기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아이와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시작입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성 이야기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수많은 성적인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괜찮다”와 같은 이런 마음 보다는, “아이가 곧 클 텐데 얼른 ‘훈련’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정희 사자(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이)라는 별칭의 반값을 하느라 제주 송당에 살고 있습니다. 용량이 부족해 나머지 반은 차츰 채우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