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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정하는 몸,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는 영화상영회 - 내가 임신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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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p/review
내가 결정하는 몸,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하는 영화상영회

내가 임신을 한다면?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현주

그새 봄이라며 다들 분주해하고 있었지만 3월에 폭설이 쏟아지고 4월에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꽃망울만 머금고 있던 기현상을 마주하고 있던 나날의 한복판에서 메일을 받게 되었다. ‘영화상영 공동기획 제안서’라는 첨부파일을 갖고 있던 그 메일 덕분에 나는 마음속으로만 기웃기웃했던 상담소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상담소에서 가졌던 두어 차례의 기획회의가 지나가는 동안 날씨는 급속도로 변해갔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나 싶었더니 이미 새잎이 돋아가며 무서운 속도로 나무들은 초록빛으로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기운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구나 하며 정신 차리기도 힘들던 나날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새 영화상영의 날이 다가왔다.
영화 상영 장면

첫날에는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을 상영했다. 어찌 보면 다분히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세 편의 이야기들이었다. 이 영화는 낙태를 결심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로, 낙태가 불법인 사회 속에서, 무기력하게 미안하다고만 되풀이하는 상대에게서,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울부짖으며 도망가는 친구 앞에서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1952년의 클레어와, 아침부터 밤까지 동점인 채로 1분 남은 스포츠 경기보다 더 긴박하고 시끄럽게 지내는 아이들을 상대하고 남편의 모든 출퇴근 과정을 챙기면서도 주립 대학에 입학해서 자신의 꿈을 다시 길러나가는 와중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974년의 바브라, 그리고 담당교수의 아이를 가졌으나 가정을 버리기 싫다는 말에 힘겹게 임신 중절을 결심하고 낙태 반대주의자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병원에서 시술을 받다가 시술하던 의사가 총기실해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1996년의 크리스틴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이야기의 반전에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으나 실제 미국에서 그렇게 낙태 반대론자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한국 현실과도 충분히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영화상영회 관객들

두 번째 날에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상영했다. 친구의 임신 중절을 도와주려는 와중에 원치 않는 일을 겪고, 부모님 생일 축하 파티에 와달라는 애인의 요구에 응했다가 불쾌한 이야기만 잔뜩 듣고, 친구가 임신중절시술로 사산한 아이를 대신 다른 곳에 두고 온 뒤 ‘다시는 우리 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라고 말했던 오틸리아의 하루―이틀간의 이야기. 전날 영화보다는 훨씬 덜 극적이지만 그렇기에 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영화 관람을 마치고 어떤 이는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상영회 후에 준비된 이야기의 시간에서 나의 몸과 삶에 대한 솔직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발표 이후로 한창 시끄러웠던 시간을 지나왔지만 정작 여성 주체들의 이야기를 할 자리는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 특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오히려 밀접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도 이야기 하는 것이 힘들어야 했는지, 이야기를 꺼낸다 하더라도 생명권의 이야기로만 환원되면서 끝나버리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를 가진 낙태라는 표현 자체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영화상영회 사회를 보면서 섣불리 낙태라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영화상영회를 마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끝날 문제가 아니며, 얼마나 이 사안에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지 말하고 싶다. 이 시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알게 모르게 밀접하게 닿아있는 이야기니만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침묵이라는 한 꺼풀 밑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만큼,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살아 있음을, 영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