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만나다.
⊙ 페미니스트 가수/성문화운동 자문위원 지현
아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숙제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원고 청탁을 받고는 고민 했습니다. 마스터베이션을 노래하는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으로 글을 써야 할 것인가, 상담소에서 욕망찾기를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이자 진행자이며 성문화운동 자문위원인 지현으로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문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예비 페미니스트 문화연구자로서 원고를 완성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몸’ 하면 떠오르는 나의 장면들을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김 서린 거울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는 십대 소녀인 나, 차가워진 목욕물에서 즐겁고도 은밀한 놀이를 하는 다섯 살의 나,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몸에 대한 내 생각들은 첫 번째 글에서는, 변화하는 몸에 대한 장면들을 통해, 두 번째 글에서는 말하는 몸에 대한 장면들, 세 번째 글에서는 움직이는 몸에 대한 장면들을 통해 보일 것입니다.
이 장면들은 여성으로서의 특별한 경험일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나는 정말 여성인가? 하는 질문도 생겼습니다. 이성애 규범에서 슬쩍 비껴있고, 이성애적 세상에 살지 않으니(!) (가부장제 세상의) 이성애 구조가 이름 붙였던 여성이라는 존재가 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 안에 ‘남성’이라고 부를 만한 ‘남성성’을 가진 존재(예를 들면 가부장)도 별로 없고, 그러다보니 여성은 뭔가? 남성이라는 존재 없이 여성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궁금함도 들고, 몇 명의 가부장제 소속 이성애자 여성들(페미니스트라 하더라도)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나와는 좀 다른 인식과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같고. 아무튼 이런 복잡한 머리로 ‘여성으로서의 나의 몸’을 생각하려니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몸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지냈더랬습니다. 몸 자체보다는 몸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와 환경, 몸을 바라보고 있는 눈, 몸을 생각하는 머릿속 구조에 대해 추상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구성’이라는 단어와 ‘인식’, ‘소비’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리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단어들은 잘 와 닿지도, ‘몸’이라는 주제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몸이라던가, 욕망이라던가, 시선이라던가, 등등의 것들이 ‘원래’ 존재한 것들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라면,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몸에 관하여 갖게 되는 질문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기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여러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웠고,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그렇지만 동시에 머리 아픈) 질문 던지기와 내 안에 있는 장면들을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런 과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변화하는 몸. 첫 번째 장면.
1986년 즈음 어느 날. 목욕탕.
등장인물 - 중학생 소녀.
사춘기, 2차 성징이라고 불리는 변화가 내 몸에서 일어나던 시절에 나는 거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봉긋해진 가슴이 반갑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고, 싫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했던 성폭력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사촌들과 동네 친구들과 킬킬, 키득키득 거리면서 경험했던 엄마놀이나 사랑놀이를 떠오르게도 하였습니다. 아마 그래서 싫었나 봅니다. 나에게 혹은 너에게 털이나 젖가슴이 없을 때 했던 ‘그 놀이’들은 좀 은밀했지만, 죄책감을 만들거나, 스스로를 ‘더럽다’고 느끼게 하지는 않았는데, 왜 가슴이 커지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 놀이들이 떠올라 우울한 기분이, 죄책감이 들었던 걸까요. 혹시 친구네 서랍장 깊은 곳에서 발견했던 포르노 책에 나오는 언니들과 비슷한 몸이 될까봐, 그 포르노 책이 나에게 주었던 불쾌감과 두려움 때문에, 내가 그런 존재가 될까봐 그것이 걱정이었을까요? 그런 몸을 갖게 되면, 포르노 책 속에 보여지는 그런 관계, 그런 질서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슬펐던 것일까요?
# 변화하는 몸. 두 번째 장면.
1984년 즈음 어느 날. 거실.
등장인물 - 초등학생 소녀, 할머니, 엄마, 삼촌.
보들보들한 겨드랑이에서 단순한 땀 냄새가 아닌 새콤한 냄새가 섞이기 시작하면서, 투명한 솜털이 점점 복실해지는 5학년 때쯤 나는 그것을 신기해하였고, 내 자신을 대견해 하면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식구들에게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였습니다. (겨드랑이의 복실한 솜털을 가족들에게-엄마, 할머니, 삼촌들에게-자랑했는데 반응은 정말 꽝이었답니다. 뭘 그런걸 보여 주냐, 에잇! 에비! 등등. 어쩌면 그런 반응이 거울 속에 비치는 변화하는 몸을 바라보기 싫어하는 나의 태도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한 부족인 !쿵1의 소녀들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답니다. 사춘기를 겪는 자신의 몸을 낯설어 하지 않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하더군요. 모두 벗고 살기 때문일까요?
# 변화하는 몸. 세 번째 장면.
1986년 발렌타인데이. 변소.
등장인물 - 초등졸업반 소녀.
!쿵족의 여성들은 월경을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생리혈을 다리에 흘리고 다니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래도 다들 모른 척 한다는군요. (이 이야기는 1969년에서 1971년까지 !쿵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연구했던 마저리 쇼스탁의 책 ‘니사’2에 나오는 이야기이니, 지금의 그들의 모습과 삶은 많이 다르겠지요. 재미있는 책이에요.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발렌타인데이에 나는 생리를 시작했고, 그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은밀하게 자랑했고, 역시나 별로 환영받지는 못했습니다. 초경부터 극심한 생리통을 겪어야 했는데, 복통은 기본이고, 구토에 식은 땀, 설사까지 매달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때는 진통제가 사리돈 밖에 없었는데, 약이 하도 독해서 약을 먹으면 진통 효과는커녕 약 때문에 울렁거려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꼬박 꼬박 다가오는 생리기간이 너무 지겨웠고, 싫었고, 두려웠고, 내가 여자인 것이,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 자궁이 부담스럽고, 혐오스러웠습니다. 얼른 자궁 적출을 해야겠다고 매번 생각했답니다. 생리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늘 취침용 생리대를 하고 다녀야 했고, 툭 하면 피가 새는 통에 학교에서 바지를 빠는 일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취침용 생리대를 하고 다니니 당연히 엉덩이 사이로 생리대가 툭 불거져 나왔고, 그 생리대가 보일까 좌불안석, 늘 초조했습니다.
몸에 잘 맞지도 않는 진통제 사리돈으로 그나마 생리통을 진정시키려는 나에게 학교 선생들이 들려주는 얘기란 진통제는 중독성이 있으니 먹지마라, 생리통은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만. 초경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그런 증상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생리 즈음해서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고, 생리 전 날에는 꼭 누군가와 싸우고, 배란기를 전후로 우울하고, 한 달의 반 이상을 생리와 호르몬에 지배를 받는 듯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마저리 쇼스탁이 여성의 생리와 호르몬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쿵족을 다시 찾아 그 부족의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고 혈액을 검사하고, 생리혈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당시 미국의 여성들이 겪고 있다고 여겨졌던 생리전증후군 PMS(Pre Menstruation Syndrome)은 !쿵족의 여성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했던 여성들은 쇼스탁에게 거듭 ‘월경을 임신과 혼동하는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의아해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여성들은 !쿵족 여성들보다 환경호르몬에도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고, !쿵족과 비교해 월경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랐을 테지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문명화’되었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여러 여성혐오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혐오하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경증’적인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쿵족의 한 소녀와 내가 스스로의 몸을 보는 시선이 서로 달랐던 것처럼 말이지요.
목욕탕 거울 앞에서 거울보기가 싫어서, 그 몸이 싫어서 우울해 하고 있는 중학생 소녀를 떠올리니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왜 그때 나를 토닥여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나는 왜 그 속상함을, 그 두려움을, 그 우울함을 나누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속상합니다. 오늘은 잠깐 그 시절로 돌아가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