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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달려! - ‘페르세 폴리스’를읽고
  • 소모임 <여성주의 소설읽기> 회원 난이
소모임 생각

마르지, 달려!
「페르세 폴리스」를 읽고

‘소모임 생각’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모임들이 돌아가며 그간의 만남을 통해 길어낸 생각들을 풀어내는 꼭지입니다. 2009년 나눔터에서는「여성주의 소설읽기 소모임」에서 고정칼럼을 연재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아래에서 함께해요!

* 작가 : 마르잔 사트라피

⊙ 소모임 <여성주의 소설읽기> 회원 난이

화려한 포장 이면에는 엄혹한 현실이

‘페르세 폴리스’를 감싸고 있는 포장은 매우 화려하다. 빨강, 파랑 원색 바탕에 검정 액자테를 두른 표지는 어느 서가에 꽂히더라도 독자의 눈을 잡을 만하며, 책의 이름‘페르세 폴리스(주인공이 사는 이란의 기원인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는 우리 역사에서는 없었던 이국의 풍요를 떠오르게 한다. 뿐인가. 동명 애니메이션이 작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으로 언론의 관심을 제법 받았으니 원작인 책이 받고 있는 대접도 상당한 편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 우리가 펼친 페르세 폴리스의 현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매순간 시험함으로써 주인공 뿐 아니라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이자 주인공인 마르잔 사트라피(이하, 마르지)는 고국 이란에 머문 14년 동안 이란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타국의 독재자는 물론 자국의 군부와 종교적 근본주의자에 의해 수백만의 가족과 이웃이 희생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기꺼이 죽을 수는 없지만 또한 순응할 수 없는

주인공 어머니의 말처럼 수도 테헤란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는 과정에서 성장해야했던 어린 마르지는 그래서, 죽지는 않을 만큼 소극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명하곤 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가 금하는 펑크락을 듣고 히피 패션을 흉내 내며 마르크스를 읽고, 짧은 차도르로 화장한 얼굴을 드러내거나 파티하는 것. 다른 곳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청소년의 행동이 마르지와 그 친구들에게는 자유의지를 버릴 것인가 가질 것인가를 결정케 하는 버거운 실천강령이 되버린 것이다.

버거운 실천강령을 더욱 버겁게 하는 것, 그러나 진정 실천강령의 묘미를 살게 하는 것은 마르지가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자각한 사실이었다. 누군가 미리 내통하였는지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거의 모든 종교는 원칙적으로 여성을‘신성’의 세계를 파고드는‘유혹’으로 호명하고 있는 바, 이러한 종교가 근원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을 사는 마르지에게는‘달리기’도 매혹적인 궁둥이를 상상하게 하여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는 마르지를 멈추게 하려는 군인들에게“그럼 당신들이 내 궁둥이를 쳐다보지 않으면 될 거 아냐!”라고 한 일성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강령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마르지의 배반이 우리에게 남긴 것

나아가 우리 중 혹자는 이런 버거운 현실에서 마르지가 대안적 정치조직에 투신하여 혁명을 꾀하는 일원이 되거나 또는 여성 해방투사로 거듭나 이란여성의 삶의 굴레를 벗기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사실 혹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바램이었다. 마르지의 부모가 아낌없이 제공해준 물질적 지원, 즉 서구사회로의 유학의 기회 등이 마르지의 실천강령을 업그레이드하여 이란사회에 더 혁신적인 성과로 되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질주하는‘영웅’이지 바로 스스로의 자존심에 연민하고 위안하는‘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르세 폴리스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러한 기대를 일견 배반한다. 성장한 마르지는 가부장적 남성의 이상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자신의 모습에서‘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혼을 택한 후 새로운 꿈을 찾아 서구사회로의 망명길에 오른다. 세상에, 그녀의 이혼을 논하기 전에, 그녀가 이란을 떠날 수 없는 수많은 여성들을 뒤로한 채 이란을 떠났다!는 사실 약간은 놀랍기도 했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면, 과연 그녀의 달리기는 멈췄을까? 소설 모임원들과의 뜨거운 논의를 통해 나는 나름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가 달리기를 포기했다면 이‘페르세 폴리스’역시 이국의 이토록 평범한 나에게까지 이를 수 없었을 것임을. 자신의 영웅스럽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소소한 일상과 좌절, 이란 그리고 이란 여성의 현실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가 나름의 방식에 의한 또 다른 실천강령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파란만장한 역사의 질곡과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있어 이란에 그리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우리는 지금 어쩌고 있는 것일까. 전력질주가 아니라면 차라리 뒤로 걷겠다는 터무니없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웅이 되지 못하였다는 자책으로 마음을 미리 갈기갈기 찢어 사자들에게 던진 채 지킬 마음이 없음을 홀가분해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삶에서 서서히 호흡을 고르면서도 지치지 않고 달리는 선수의 가치도 인정한다면, 마르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새로운 주문은 탄생할 수 있다.“달리자, 나만의 호흡으로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끝까지, 지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