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전야 2
⊙ 水
내 몸은 긴장하고 솜털들까지 모조리 곧추섰다. 열쇠가 꽂히고,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밝은 복도의 불빛을 등에 진 그 사람이 검은 비닐봉투에 무언가를 들고 왔다. 나는 아까 맞던 자리에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은 숨도 멈추고 있어야했다. 성폭력을 당하는 것도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오늘처럼 맞은 날은 맞는 것만 생각해도 오줌이 나오고,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맞다가 피부에 감각이 없어지는 순간들, 신경을 잘못 건드렸는지 전기가 찌릿하게 오는 때, 급소를 맞았는지 숨이 순간 멈추는 시간들은 눈물도 나지 않는다. 견디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맞는 것도 기술적으로 맞아야 했다. 내 인생 아주 어릴 적부터 온 몸이 기억하는 장면들이 있다. 요강을 씻어다 놓지 않았다고, 내 배에 타고 앉아 요강의 오줌을 먹이던 친할머니,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조그만 수수빗자루 뒷꽁무니를 내 입에 틀어막고 부지깽이로 온 몸을 때리던, 그래서 입술 곳곳에 잔잔한 가시가 박혔던 날의 기억. 또 한 번은 맞다 지쳐 마루 밑으로 숨어든 나를 기다란 대나무로 쿡쿡 찔러대던 친할머니. 지금 이 사람은 그 여자의 아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맞을 때 어떤 기분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닮았다.
스위트룸에 들어선 그에게서는 음식냄새가 났다. 저녁을 먹고 온 모양이다. 딸한테 그 짓거리 하려다 뜻대로 안 되니까 죽도록 패고, 힘이 빠져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저런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입으로 음식이 넘어가는구나.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못 느끼는구나 생각하니 겁이 났다. 밥까지 먹고, 힘을 내서 더 때릴까봐, 앞으로 또 나를 어떻게 할까 싶어서. 이 호텔에서 보낼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얼른 날이 밝고, 시험장에라도 가서 이 사람과 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내가 너 내일 시험 보게 할줄 알아, 대학? 꿈도 꾸지마, 내가 너 시험장에 안 보내. 대학가면 또 얼마나 나를 무시할거야. 은혜도 모르고, 내가 어릴 때 너 친할머니가 남 줬을 때 그냥 둘 걸, 그랬으면 그 집 아들들한테 당하면서 걸레같이 살았을 텐데, 내가 이거 봐 이거, 손목까지 그어가며 혈서 써서 너를 데리고 왔는데 그 은혜도 모르는 년, 내가 니 이름을 왜 은혜를 아는 여자가 되라고 지었는데, 부모 은혜를 알란 말이야.”
저 말은 지금까지 수백 번은 더 들은 것 같다. 늘 저 소리다. 그러면서 팔목에 면도칼로 그은 흔적을 보인다. 사실 저 정도로는 죽지도 않겠다. 저 정도 그어서 쇼한 건가 싶다. 늘 저 이야기를 했다.
내가 1, 2살 때였다.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친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아빠란 사람에게서 각각의 시점으로 기억하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모든 기억을 모아서 정리하면 이렇다.
엄마가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나와 오빠를 친할머니에게 돌봐달라고 맡겼다. 어느 날 엄마가 친할머니네 가봤더니 오빠만 있고,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니 할머니는 잘 키워줄 집에 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하도 기가 막혀서 어디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답해주지 않았고, 아빠한테 말해서 겨우 아빠가 할머니를 닦달하여 알아냈다. 나는 아들들이 다 장성한 잘 사는 집에 보내져 이미 한 달 정도 있었던 상태였다. 엄마와 아빠는 친할머니가 부모들에게 묻지도 않고 그랬으니 제발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입양했던 아주머니는 정말 친할머니 맞느냐면서 괘씸해서 못 내주겠다고 했단다. 친할머니라고도 안 했고 그냥 애를 키워달라고 맡겼다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 등에 업혀있던 나는 엄마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주머니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한다. 엄마가 손을 내밀었는데 살며시 고개를 돌려버리며 엄마를 서운하게 했나보다. 얼마나 어린 나이였으면 한 달 간에 엄마를 못 알아봤나 싶다. 나를 입양했던 아주머니는 친할머니 때문에 화를 내면서 한 달 동안 키운 값이라도 달라고 당시로는 꽤 큰돈인 3만원을 요구했다. 아빠란 사람은 돈도 없고 하여 손목을 그어 혈서를 쓰고 제발 딸아이를 돌려달라 했다는 것이다.
쳇,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그냥 거기다 두지. 거기서 자랐으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했었다. 그냥 부잣집에서 그들을 엄마, 아빠로 믿고, 오빠들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고. 지가 딸한테 이런 짓을 하니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도 다 지저분한 짓거리들에 관한 것들뿐이다. 부잣집에서 그냥 자랐으면 지금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더 좋았을지 모른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오늘도 또 저걸 우려먹는군. 지 말로는 손목을 그으니 피가 천정까지 튀고, 정말 이제 죽는구나, 했다는데 그렇게 어렵게 데려왔으면 잘 키우던지, 이게 뭐냐고! 이렇게 나쁜 짓 하려고 데려왔느냔 말이다.
저 사람은 아까부터 계속 그 소리를 계속 하고 있다. 지는 저녁 먹고 들어와서 배부르니까 저렇게 떠들어대겠지. 나는 듣고 있을 힘도 없다.
내일이 수능시험인데 이게 무슨 쌩난리란 말인가. 꿈같기도 하다. 머리카락을 너무 잡고 흔들어 머리가죽이 벗겨져 나간 것 같고, 몸은 어디 한군데 성한 곳 없이 얼얼하고,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얼굴은 필사적으로 막아서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입술을 맞았는지 한참 맞은 권투선수들처럼 퉁퉁 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잠잘 생각도 안하고 계속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면서, 아무 생각도 못하게 하고 밥도 안 주면서 괴롭힌다. 사실 배고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지만 밥 먹고 싶다는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또 ‘이게 정신 못 차리고, 그러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니가 나한테 밥을 달래?’ 라고 할까봐 그냥 참았다. 너같이 나쁜 놈도 힘 빠지게 때리고 밥이 넘어가는데 죄없이 맞기만 한 내가 밥을 못 넘길 이유는 또 뭐냐? 때리면 그냥 맞고, 욕하면 그냥 있었다. 나도 대들 때가 있지만 지금은 혹시라도 기절해서 내일 시험조차 못 보게 될까봐 참고 참았다.
밥을 주고, 잠잘 곳을 제공하고, 나를 잘 키워야하는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 밑에 딸을 깔고 지가 하고 싶은 대로 그 짓거리 하려는데 못한다고 이러다니. 밤은 점점 깊어가고, 맞은 몸은 여기 저기 부어오른다. 배도 고프고, 졸립기도 하다. 그래도 몸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언제 또 때릴지 몰라 겁에 질린 정신은 배고픈 욕구나 잠자고 싶은 욕구들을 적당히 눌러주었다. 침대에 앉아있던 그 사람은 어느 새 누워 잠을 잔다.
조용했다. 나 혼자만의 세상에 또 있게 되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소리와 불빛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와 그 사람이 깨지 않게 숨죽여 울거나, 숨 쉬는 나의 작은 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여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다르다. 내일이 고등학교 생활 3년을 정리하고, 수능시험을 보는 날인데, 밤새 두들겨 맞고, 욕만 먹은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을까? 아빠란 사람이 수능시험 보기 전날을 무슨 밀월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호텔의 스위트룸을 잡아두고, 신혼 기분 내듯 벌거벗고 같이 샤워하자고 하고, 땀나게 그 짓을 하려다 뜻대로 안 된다고 이럴 수 있느냔 말이다. 왜 이렇게 재수가 없나, 지금 자빠져 자고 있는 저 새끼 성기를 확 잘라 버리고 싶다. 마음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매를 맞다 보면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은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과 달리 몸이 잔뜩 겁을 집어 먹는다. 그때부터 입을 시작으로 온 몸이 꽁꽁 얼어붙고,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다. 코까지 골며 자는 그 사람은 나를 때리고, 욕하다 정말 지친 것 같다. 그렇게 맞은 나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지쳤다. 그러나 또 언제 그가 깨어나 시작될지 모를 매질과 더러운 짓거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사람이 뒤척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졸던 잠을 깼다. 절대로 밝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하늘이 푸르스름해 진다. 새벽이 되고, 움직이는 차들의 불빛이 더 자주 지나간다. 드디어 수능시험 날 아침이 되었다. 그 사람이 어제 이야기한대로 수능시험을 못 보게 할까봐 걱정이다. 반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와 같은 시험장으로 배정받았던 친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했을까? 어떤 수험생이 나처럼 밤새 맞고, 쫄쫄 굶고 있을까? 어제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날이 더 밝자 그 사람이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내가 너 시험 보러 가게 해줄 것 같아? 내가 마음이 약해서 또 그렇게 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 웃기지마, 이번에는 절대 안 돼, 대학은 무슨 대학이야, 집에서 썩어봐라”
조용히 입술에 힘을 주어하는 욕이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비굴하지만 더 이상 맞지 않고, 시험을 보러 가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있어야 했다.
“시험? 웃기지도 마, 너 대학 보내면 니가 또 얼마나 나를 무시할거야, 니가 어제 나를 얼마나 경멸했는지 알기나 해? 이제까지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너 같은 건 대학도 가지 마”
시험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은 조급했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저 인간은 내가 잘못했다고 하며 제발 수능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고 더 가만히 있고 싶었다. 시간이 계속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즐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무표정하게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참다못한 그가 다급했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 비닐 봉투에 든 것을 내 발 앞에 툭 떨어뜨린다. 봉지 안에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찐만두가 있었다.
“시험 보러는 안 갈 건데, 나갈 준비해, 그거 먹고”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이 먹으라고 하면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하나 꺼내 입에 넣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 사람에게 들키면 또 맞을 수 있어, 고개를 들어 눈물을 도로 눈 속에 억지로 넣었다. 그 사람은 그랬다. 괴롭히고, 때리고, 욕해놓고 울지도 못하게 했다. 울면 더 때리고, 또 팼다. 그것이 두려웠다. 차가운 만두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삼켜지지 않는다. 우물거리며 그 사람을 따라 나섰다. 호텔로비를 나와서 택시를 탔다.
“○○ 고등학교요”
그는 수능시험장소를 댔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택시 아저씨가 백미러로 나를 수상한 눈치로 흘낏 쳐다본다. 입술은 맞아서 불어터졌지, 40대 정도의 남자와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탔지 이상하게 여길 만하다.
‘오늘이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죠, 지금 수능시험장을 향하는 학생들과 함께 계신 부모님들께서는 어깨도 토닥여 주시고, 너무 긴장하지 않고 시험 잘 보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그때의 라디오 방송 멘트.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진행자의 멘트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불쌍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차창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울고 있는 걸 들키면 갑자기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할까봐 걱정되었다.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시험장 앞까지 왔다. 택시 아저씨와 그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방금 전 스위트룸에서의 억양과 어투, 사용하는 단어가 확 달라져 있었다. 정상적인 아.빠.같.이. 굴고 있었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교복을 입은 내 또래의 아이들, 오늘만은 어떤 성질을 부려도 다 받아주겠다는 표정의 부모님들과 함께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또 눈물이 났다. 시험장 교문 앞에는 우리 담임선생님이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담임선생님을 보더니 너무도 멀쩡한 아빠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좀 긴장했는지, 피곤해 보이죠”
어느 새 나를 쥐어패고, 집어들고 던지던 그 손이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아, 정말 가증스럽다. 이건 다른 아이들이 느끼고 있는 시험으로 인한 긴장이나 피곤함이 아니라구, 이 새끼야, 니가 정말 몰라? 니가 어제부터 방금 전까지 나한테 어떻게 했어? 그런 말이 터진 입이라고 그냥 나오니? 계속해서 속으론 욕을 하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담임선생님께서는
“OO야, 긴장하지말고, 시험 잘 봐라”라고 말씀하시며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예의상 하는 말을 원래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거기서 입을 열면 갑자기 울면서 아무 말이나 툭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과 아빠인 척 하는 그 사람한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등을 보이고, 시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험번호에 따라 들어선 시험장에 같은 반 친구가 여럿 보인다. 나는 맞아서 부어터진 입술을 최대한 악물고 내 자리에 앉았다. 시험지를 나눠받고,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모두들 3년 동안 공부한 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랬다. 나는 시험장에 무사히 들어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그 사람과 떨어져있을 수 있어 좋았다. 아무튼 나는 시험을 보려고 노력했다. 몸이 여기 저기 쑤시고,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많이 뽑혀 뒤통수가 얼얼했다. 집중을 하려해도 잘 되지 않고, 자꾸 어제 그 사람이 나한테 했던 짓들과 말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참고 참으며 시험지를 붙들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서 시험지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시험지를 적시도록 계속 떨어졌다. 그래도 답안지를 꼼꼼하게 채워나갔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도록 서글프면 소리도 못 내고 우는 것 같다. 가슴 한 가운데 뜨거운 기운이 계속 올라오고, 눈물과 콧물이 쉬지 않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한쪽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 가만히 눌러주었다. ‘그래 00야, 많이 아프지, 그래, 아프지’ 나는 간신히 나를 위로하며 시험을 봤다. 쉬는 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내 책상으로 몰려와 위로를 했다.
“00야, 나도 진짜 어려워, 울지 마, 다 비슷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걸. 근데 진짜 시험 어렵지?”
아니, 니들은 몰라, 내가 왜 우는지, 시험 때문이라고? 내가 어제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이야기해줄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가슴을 확 풀어헤치고 미친년처럼 펑펑 울고 싶었다. 다 말하고 싶었다. 이 교실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죽겠다고, 이러다 더 이상 못 견디고 미치든지, 죽이고, 죽어버릴 것 같다고, 아니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졸지에 시험이 어려워 울고 있는 재수없는(?) 여고생이 되고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고등학교 3년 내내 보충수업도 자율학습도 참여하지 못한 건 아빠란 인간이 나를 아픈 엄마 병간호라는 구실을 들어 집에 잡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친구들은 내 속 사정도 모르고 오해했었다.
“너는 좋겠다. 아빠가 매일 차로 데리러 학교 앞에 와있고, 집에 일찍 가서는 과외 받니? 애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우리는 이게 뭐야, 매일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지겨워 죽겠어”
나는 그래서 항상 왕따였다. 아니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도 할 말이 없는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너는 속을 알 수 없다’, ‘왜 말을 안 하냐’, ‘왜 너는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느냐’고 불평을 했다. 자기들도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가기 싫은데, 학교에서 먹고, 자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없는 학교에서. 내 사정은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이야기한다고 내가 이해를 받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혼자 답답하게 벙어리가 되어 쉬는 시간에도 책만 보는 새침한 내가 되어왔다. 말을 거의 하지 않아 벙어리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입 밖으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은 속으로 더 많이 말하며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그때 말없고, 조용히 있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말을 하고, 욕을 하고, 싸움을 했다. 미칠 것 같은 날은 종이에 그놈에게 하고 싶은 욕을 마구 휘갈겨 쓴 후 찢어버리기도 했다. 또 하나님한테도 많이 말했다. 여기서 나를 좀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제발 이 지옥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그렇게 해줄걸 그냥 믿겠다고. 지난 8년 동안 괴롭힌 것도 모자라 오늘같이 중요한 날 사람을 밤새도록 패다니, 나는 계속해서 ‘니들은 절대로 이해 못해, 말할 수도 없어, 나만 왜 이런 고통을 당하며 사는 걸까?’ 맘속으로 소리치고, 소리없이 눈물만 계속 흘렸다. 시험 시간 내내 울었다.
사실 벌써부터 시험장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 또 그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그 지옥 같은 집으로 가야겠지. 어제 밤에 뜻대로 안 된 것 때문에 화가 났으니 오늘 밤은 보복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괴롭힐 수 있는 한 최대한 괴롭게 내 속이 찢어지게 파먹겠지 생각하니 몸이 오그라든다. 시험 시간 내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다른 친구들은 시험이 끝났다고 소리를 지르고, 친구들과 오늘은 놀러간다며 한껏 들뜬 분위기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일 때, 나는 온 몸의 관절들이 위에서 잡아당기는 줄로 조정되는 생명없는 인형 같았다. 그 사람에게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갈 곳도 없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시험장 앞에 와서 여느 부모들과 같은 양 서있을 그 사람에게 가야하니 말이다.
시험장 밖으로 나오니 정말 그 사람은 다른 부모들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교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왔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하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어제 했던 말을 반복했고, 시험 봤어도 대학은 안 보낼 거라는 협박을 했다.
“내가 너 대학 보내나 봐, 너 집에서 썩힐 거야, 니가 대학까지 가면 나를 얼마나 무시하겠냐? 집에서 살림하면서 내 애나 낳고 그렇게 살아”
아~ 귀가 멀어버렸으면. 이렇게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들 때가 있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까지만 떠오른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아쉽게? 그날은 전혀 기억이 없다.
■ 水의 한마디
그날의 기억이 더 이상 나지 않아서 글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몇 달 동안 떠올려보려고 했었다. 그런데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까만 도화지처럼 아니면 하얀 도화지처럼 어떤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게 다행스러운 건지 아쉬운 건지도 잘 모르겠다. 힘든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아프고 힘든 기억이면 전혀 떠오르지 않을까 싶으니 화도 났다. 또렷하게 기억해서 글로 쓰고, 그걸로 더 미워하고, 더 욕해주고 싶기도 한데. 또 여기다 써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해주고, 더 미워할 수도 있는 건데 싶기도 해 아쉬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나도 참 독한 년이다' 싶다. 갑자기 생존자 말하기 대회 때 들었던 문구가 생각난다.
"질긴년 독한 년, 그래 우리 살아있다!"
■ P.S
원고마감을 넘긴지 한참 되었다. "질긴 년, 독한 년"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서 보내려했으나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양심에 걸렸다.
난 사실 요즘 많이 힘들다. 질기고 독하게 살아서 지금 살아남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질기지도 않고, 독하지도 않게 살아도 되는 삶을 살아봤으면 좋겠다 싶은 요즘이다. 걸핏하면 눈물이 나고,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이 의미는 있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는 게 더 나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개같은 아빠밖에 살아있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고, 돌아가신 엄마를 하늘나라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지금. 남자친구 쪽 부모님이 나의 상황을 다 아시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반대가 심한 것을 견디는 게 힘든 요즘. 정말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쓰는 글을 응원해주는 남자친구와 친구들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내게 계속해서 글을 쓸 마음을 주신다는 사실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죽고 싶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하나님, 왜 저에게는 이런 개같은 아빠를 주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강간을 당하게 하셨나요?"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밤이다. 이 글이, 내 삶이, 내가 살아내고, 견뎌낸 고통의 시간이 의미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당신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