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올행정시스템과 정보인권
⊙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원격 행정의 등장
공공 서비스가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댈 수 있는 지리적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을 당시엔 신분을 속이는 것이 힘들었다. 담당자가 얼굴과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의 지리적 범위가 넓어지고 신원확인도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다른 사람의 신분을 흉내내는 정체성 절도(ID-theft)의 여지 역시 늘어났다. 따라서 민원 서비스의 원격화가 진행되면서 신원확인에 대한 강박이 함께 증가해 왔다. 본인임을 묻고 사진을 대조했던 정도에서 이제는 신체정보를 낱낱이 제공해야 하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지문을 날인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생활의 편리함을 위하여 신뢰성 있는 기관에 이 정도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또 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의 온라인 제공과 유통은 피치 못한 측면이 있다.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이 문제는 헌법상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권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제공할지에 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그 권리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생활의 편리함에 묻혀, 혹은 행정 효율화 논리에 밀려 자신의 원칙적인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혹 우리는 컴퓨터에서 요구하는대로 아무 생각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보인권의 문제의식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데 있어 한 가지 매우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전자정부 사업의 제 1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침해 결정이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NEIS에 대하여 폐기하라고 권고하자 큰 논란이 일었다. 당국은 결국 과오를 인정하고 시스템을 재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NEIS의 어떤 점을 인권침해라고 보았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NEIS 시스템의 가장 우선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수집의 정당성'이다. 기본권 제한을 법률로써만 허용하고 있는 헌법과 OECD나 UN의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감안했을 때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 수집이 가능한 경우는 당사자의 동의가 있거나 법률적 근거가 있을 때 뿐이다. 여기서 해당 개인정보 수집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막연해서는 안 되며 그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당시 NEIS는 "학교에서 수집한 학생관련 개인정보를 16개 시·도 교육청 서버에 집적관리"하겠다면서 그 법적 근거는 불분명했다.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법적 근거나 당사자의 동의가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 개인정보 보관과 이용은 애초의 수집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의 측면에서 볼 때 무제한적인 복제가 가능하고 유출도 손쉬운 전자적 방식의 개인정보 보관보다는 손으로 꼼꼼히 기록한 한 벌의 수기 보관이 더욱 안전할 것이다. 개인정보를 온라인으로 전송하거나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 것보다 해당 기관 내에서만 이용하는 것이 안전성이 높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안전성은 "해킹을 막는다"는 의미에서의 기술적 보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에 대한 부당한 접근을 통제하여 애초 약속한 목적 내로만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정보의 민감성과 수집 목적에 비추어 수기기록, 전자기록, 온라인으로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 정도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사·학생·학부모의 방대한 개인정보를 전자적으로 수집하여 중앙정부에 네트워크로 전송·집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행정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정보화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순수한 교육행정만을 위한 정보 외에 교육을 목적으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다른 행정정보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교무·학사, 보건 영역 등에 입력되는 정보는 한 개인의 장기간에 걸친 성장기록에 관한 것으로, 한 곳 또는 소수의 몇 군데에 집적되어 처리된다는 사실 자체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의 보건, 성적, 체벌 등 개인정보가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을 거론했다.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민감한 개인정보의 수집은 현행 법률로도 금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은 사상·신조 등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다른 법률에 수집대상 개인정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제4조)"라고 되어 있다.(제6조 차별 금지의 원칙)
새올행정시스템의 문제
새올행정시스템에서도 이상의 정보인권 원칙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새올행정시스템이 수집, 처리하는 각각의 개인정보 수집의 목적이 법률적으로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지, 각각의 개인정보에 대한 보관과 이용이 법률적으로 명시된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가장 기본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 현재 새올행정시스템과 연계되어 있는 상담과 복지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업무와 관련해서 법률적으로 그 수집 근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상담과 복지 관련 업무들은 그 내담자의 개인정보, 상담내용, 종사자 개인정보 등이 만약 유출될 경우 심대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취급되고 있다. 따라서 각 기관 및 감독 기관 내외에서 적절한 수준과 범위로 개인정보의 취급이 제한되고 있는지 세부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과 전송 및 이용은 최소화되거나 금지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완벽하게 다른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으며 얼굴을 보이지 않는 온라인에서는 그것이 더욱 용이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 중 하나이다.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곧 제정될 것으로 보이는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보호법안 또한 당사자 동의나 법률적 근거 없이 주민등록번호 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원칙은 지켜져야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담과 복지 시설 업무의 집중적인 전산화와 중앙의 관리 강화는 필연적으로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기술적 환경이 확대될수록 이에 대한 원칙과 인권의식이 절실하다. 그런데 정보인권을 보호해야 할 중앙 정부가 이에 대한 침해 논란으로 민간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무엇보다 여성 복지 분야는 성폭력 핫라인 상담과 거버넌스 확대 등의 차원에서 민간과 공조하고 일정부분 그에 의존해왔다. 정부가 정보화를 매개로 민간단체의 활동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겠다고 나선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 참가단체들에 대한 보조금 중단 등을 내세우며 민간단체 길들이기에 나선 가운데 새올행정시스템 및 국가복지정보 시스템 논란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편집자주 현장 상담소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질의에 대하여 여성부는 새올행정시스템 사용 중단을 행안부와 협의중이며, 업무 효율성 및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을 수정·보완하여 활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정보집적행위는 효율성 및 투명성 확보를 담보하지 못하며, 현장 활동의 자율성과 회계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회계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보급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현장 목소리에는 여전히 무응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