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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지원, 제도의 안과 밖에서
  • 본 상담소 사무국장 김민혜정
기획특집 _ 반성폭력 운동의 제도화를 둘러싼 입장들

피해생존자 지원,
제도의 안과 밖에서

⊙ 본 상담소 사무국장 김민혜정

창가에 앉은 사람의 옆모습

“상담소가 왜 이리 작아요?”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소에 들어선 분들은 묻는다. 주택가 안쪽에 자리잡은 벽돌 집, 외관상 무슨 무슨 지원센터의 모양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라 놀랐다는 평이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꾸며진 상담실에 자리를 잡고 상담소 소개 안내지를 건네드리면 곧 “아, 상담소는 국가기관이 아니었군요” 고개를 끄덕인다. “상담료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도 많다. 모든 상담과 사건지원은 무상이라고 답변드리며 상담소 운영은 기본적으로 월 정기회원의 후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변하는데, 이러한 상담소에 대한 관심은 상담지원이 지속되면서 더해가는 경우가 많다. 상담실 주변에 걸린 달빛시위며 생존자말하기대회, 자기방어훈련 캠프 포스터를 주의 깊게 보며 이런 캠페인에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월 정기 후원인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다른 피해생존자를 도울 수 있는 길은 없는지……. 내담자로 시작하여 점차 다양한 위치와 정체성으로 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한 운동에 함께하게 되는 감동적인 현장이라 할까.

상담소는 이렇게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상담지원을 지난 18년 동안 반성폭력 운동단체로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NGO로서 해오고 있다. 반성폭력 운동단체로서의 상담소는 그동안 연간 3,000여회 안팎의 상담지원을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성폭력의 실태와 원인을 연구하고,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며 사회적인 법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제언, 모니터링, 입법과 법개정 운동을 한다. 현재 전국에는 NGO인 성폭력상담소 200여개가 운영중이다.

상담지원을 통해 상담소, 반성폭력 운동단체들은 성폭력에 대한 전 사회적인 대책, 문화적인 변화를 촉구해왔다. 그 결과로 성폭력을 처벌하고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특별법이 1994년 제정되었고 피해생존자에 대한 의료지원, 법률구조 서비스가 국가의 재원으로 운영중이다. 성폭력 피해생존자 지원, 상담을 하는 상담소에 2~3인의 인건비에 해당되는 운영비 6,000만원을 연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이 특별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국의 상담소 중 80여 곳만이 운영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으며 우리 상담소와 같이 10명 이상의 인력이 활동하고 있는 곳은 자체 후원금과 기금마련을 통하지 않으면 운영될 수 없는 구조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상담지원이 전반적인 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그 진정한 의미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할 때, 이 두 가지 영역을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연구, 교육, 캠페인, 정책 제언의 활동은 성폭력상담소의 핵심적인 활동임에도 사실상 국가의 지원 없이 가동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마련을 요구한 결과로 정책의 입안, 재원 마련, 지원체계의 관리 책임을 맡게 된 관련 부처는 최근 많은 문제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새올행정시스템과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상담지원 현황에 대해 효율적으로 통계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 보급을 현장상담소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바, 이에 여성부는 중앙서버를 통해 온라인으로 관리하는 통계시스템, 이름하여 새올행정시스템을 제시하였다. 내담자의 많은 신상 정보를 요구하고 정보 입력자인 개별 상담원의 아이디를 구청 담당자가 관리하는 방식의 이 전국 전산망 시스템은 정보인권, 보안 등에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수차례의 문제제기 끝에 새올행정시스템은 보류하고 국가복지정보시스템만 사용하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우리가 제기한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전국 많은 상담소에서는 지자체의 압력을 받아 이미 시행중이기도 하여 이것이 전국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하는 이가 많다.

구청의 ‘지도점검’도 고질적인 문제다. 지도점검은 구청 관리 담당 공무원이 전권을 행사하며 상담소의 제반 사업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지적, 점검할 수 있는 절차인데, 여기에서 무엇을 지적하고 시정조치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상호 이해나 법적인 근거가 불분명하여 매번 갈등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상담소 운영 업무와 인력 관리의 제반 내용을 공무원법에 준하여 시행할 것을 요구하여, 상담소가 열악한 상황에서 보완해온 활동가 복리후생 체계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별칭을 사용하는 문화까지 이 지도점검 앞에서는 일소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시정하지 않는다면 경고조치 되는데, 지적사항의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제기했던 2년 전의 지도점검에서 상담소는 결국 1회 경고를 받았다. 특히 그해는 우리 상담소가 대통령 표창을 받은 해이기도 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담당 공무원의 고압적인 자세와 성폭력 상담소에 대한 몰이해는 거론하기도 힘든 기본 구도로 이미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적인 흐름에 대한 여성부의 입장은 어떠할까. 여성인권 분야에서 현장에서의 필요를 민감하게 조사하고 내실있는 지원체계를 연구, 개선해야 할 여성부는 성폭력 상담소들의 목소리를 점차 배제하고 있는 분위기다. 작년 말 전국 성폭력상담소 피해자보호시설협의체의 가을워크샵에 인사차 방문한 여성부 담당 행정관은 “우리의 손발이신 여러분”이라고 좌중을 호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여성부가 상담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현장 단체들의 문제제기로부터 정책의 개선 방향을 찾거나 거버넌스를 통한 내실있는 지원체계 마련을 도모하기보다는 시끄러운 NGO 단체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더욱 드러내고 있는 현황이다. 성폭력 상담 업무의 직영화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향이다. 여성부는 전국 3군데였던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추가 개설하였는데, 이에 대한 운영주체를 ‘병원’으로 한정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 센터의 상근소장이 비상근 의료인으로 무리하게 교체되기도 하였다. 그나마 비의료 영역 출신이 센터장을 맡았던 기존 방식에서 더 한정하여 성폭력 피해생존자 지원의 전문성, 파트너십을 의료기관으로 정리한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성폭력에 대한 법적, 사회적 문제화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성폭력 피해를 개인의 문제로 초첨화함으로써 피해생존자를 지나치게 병리화하여 ‘치료’한다는 그간의 우려에도 역시 귀 기울이지 않은 결론이다. ‘여성인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내다보고 사회의 변화를 계획해가는 정부부처가 맞나 싶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보이고 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NGO에 대한 대대적인 배제 흐름을 보았을 때, 대안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하는 우려가 든다. 무조건적인 재갈 물리기는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행정 지배의 욕망을 극단화한 모습으로 보인다. 성폭력 피해생존자 지원은 정부의 정치적인 입장과 관계없이 사회적인 안전망의 하나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지원도 비정치적, 탈정치적일 수 없다는 것을 요즘의 흐름은 느끼게 한다. 정부의 성폭력 지원 정책이 피해생존자를 조용한 시혜자로 만들고 반성폭력 운동단체를 행정 서비스의 수족으로 만들고자 할 때, 우리 상담소는 무엇이 형식적 탁상 복지이고 무엇이 변화를 일으키는 ‘함께 가는’ 움직임일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조용한’ 성폭력 꺼내 말하기란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