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네 번째 이야기를 아래에서 함께해요!
도미야마 이치로의『전장의 기억』
⊙ 토닥이 토리
일상과 몸에 스며든 국가. 그리고 전쟁.
이번 가을 토닥 모임에서는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2002, 이산)’은 전쟁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폭력들을 우리의 일상으로 연결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저자는 전쟁뿐만이 아니라 우리와 관련 맺고 있는 모든 담론들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들 각자가 하는 실천이며, 매우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내가 전쟁과 폭력에 가깝게 살고 있다면, 우리가 군사적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저자는 전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전쟁을 볼 때, 그들의 의식이나 정체성보다 신체적 실천에 주목하자고 말합니다. 이는 전쟁에 동의하는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그 판단을 실천하는 개인의 행위성을 조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 국민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행위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정체성은 무의식적이고 일상화된 실천 속에서 상상되고 검증됩니다. 참전한다는 것은 이러한 상상과 검증 과정의 가장 선명한 예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장은 (적어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눈에 보이는 일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전쟁과 국가는 어떻게 상상되고 검증될까요.
존 쿳시의 소설 ‘철의 시대’에 등장하는 흑인 소년 베키는 학교에 가는 대신 백인집단에 대항하는 투쟁에 참여하기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베키의 어머니가 일하는 집의 주인인 커런 부인은 베키의 선택을 만류합니다. 커런 부인은 남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이 지배 남성들이 만든 잘못된 역사일 뿐인데, 베키가 그 속에 휩싸여 유년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인이자 지식인인 커런 부인의 이 말은 흑인 소년 베키에게 아무런 힘도 주지 못합니다. 1980년대 중반의 남아프리카는 인종분리주의정책에 근거한 흑인집단거주구역을 상대로 국가(백인 지도층)의 폭력이 난무하던 때입니다. 베키의 행동에 충고하는 커런 부인은 베키와 같은 집, 같은 지역, 같은 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알고 있는 지식과 상관없이) 베키를 비롯한 흑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가의 폭력을 해석하고 실천합니다.1
커런 부인은 결코 인종분리주의의 피해자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미야마 이치로의 말대로 ‘전장에 누워있는 시체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이 그 전쟁의 공모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커런 부인은 국가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자기 자신을 그 가능성에 대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국가를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텔레비전 속에서 총을 들고 마을을 지키는 다른 국가의 아이들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고등교육을 받도록 돕자는 고민만이 그 지역의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러한 상황을 발생시킨 전 지구적인 맥락에 우리 개개인도 포함되어 있음을 직면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베키와 총을 든 아이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그 국가의 경계 안에 살지만 ‘배제’됨으로써 포함되며 살아있되 죽어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2 커런 부인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죽은 후에도 충분히 애도 받지 못하는 베키와는 다른 사유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의미가 ‘상상’적이라는 것을 같은 국가에 살고 있는 베키와 커런 부인에게 그 국가를 증명해내는 신체적 실천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전쟁을 둘러싼 저마다의 행위와 기억들은 홍수처럼 유통되어 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