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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애 前소장, 이미경 現소장 “상담소에서 활동한 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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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애 前소장 / 이미경 現소장
“상담소에서 활동한 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최영애 前소장, 이미경 現소장, 이윤상 부소장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

일시 : 2008년 11월 10일 오후6시 / 장소 : 최영애 선생님 자택 다락방
인터뷰 및 정리 : 이윤상(부소장)

“안녕하세요? 이렇게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뵈니, 상담소에서 셋이서 함께 일했던 1990년대 후반이 생각나요. 제가 부소장으로 활동을 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일하면서 10년 전을 얼마나 많이 회상했는지 모른답니다. 저는 그 때 참 신나고 즐거웠었어요. 부소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버거움은 확실히 10여 년 전의 자유를 많이 제한하긴 하더라고요. 상담소의 문을 열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상담소를 이끌었던 최영애 선생님, 그리고 2002년부터 소장역할의 긴 여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계신 이미경 선생님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된 건, 상담소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내년은 상담소가 새 대표도 뽑고 새롭게 출발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잖아요. 그래서 오늘 상담소 창립멤버이자 그동안 상담소에서 큰 역할을 하셨던 두 소장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윤상 우선, 상담소 활동을 돌아보면서 “참 잘했구나” 생각하시는 건 어떤 건가요?

최영애 가장 중요한 건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을 처음으로 수면 위로 끄집어내서 그것을 분석하고,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진단하여 세상에 대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죠. 상담소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끊임없이 내놓았기 때문이에요. 그 때는 상담통계를 분기별로 내고 언론보도를 했어요. 은폐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그 의미를 생산한 것이 미치는 영향을 실로 거대했지요. 그리고 노동 이슈 중심이던 여성운동계에 성ㆍ성폭력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던졌고, 또 이 이슈가 일반여성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어서 반성폭력운동이 대중운동으로 뿌리를 내리게 한 점도 아주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초기의 반응과 달리 반성폭력 운동을 진행해나가면서 여성운동계에서도 우리 이슈가 꼭 필요한 이슈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죠.

이미경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당시 여성운동단체들은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성폭력 문제를 전담하여 소위 여성운동의 세분화, 전문화를 시도한 것도 의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어린이성폭력, 데이트성폭력 등 주제로 내부세미나를 하면서 그 내용을 자료집으로 바로바로 엮어내어 교육하고 홍보한 것도 지금까지 우리 상담소가 주요하게 해 온 일이지요. 그러고보면 70년대부터 반(反)성폭력운동을 해온 외국 여성운동단체들의 경험과 자료들에 우리상담소가 참 많은 빚을 졌네요.

최영애 맞아요. 91년도에 상담소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서 개최된 전 세계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를 위한 특별한 훈련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때 거기 참석해서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많은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저는 그 때 배웠던 것들이 그 이후 상담소의 10년 활동에 참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상담소가 94년도에 24시간 운영하는 위기센터를 개소한 것도 그 때 얻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던 거죠. 그리고 또 하나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상담소가 정말 많은 자원활동가를 키워냈다는 거예요. 특히 여성단체가 남성자원활동가를 양성한 건 아마 상담소가 처음일 거예요. 그렇게 해서 상담소의 지지기반을 많이 확충할 수 있었지요. 돌아보면 우리사회에 큰 의미를 남긴 활동이 참 많아요.

이윤상 최영애 선생님이 초기 활동의 성과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미경 소장님은 2002년도부터 소장역할을 맡게 되셨잖아요. 상담소의 2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미경 2000년대 들어 우리 상담소는 초기 10년의 활동경험을 기반으로 여러 법/정책 활동과 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을 펼쳐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폭력관련 정부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성폭력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아 비판과 제언활동을 하면서, NGO가 어떤 시각과 전략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목도 생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2차 피해 문제제기, (성폭력 조장하는)대법원판례바꾸기운동, 공소시효 연장 및 배제를 위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아이디어도 사실 그동안의 상담소 역사에서 나온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생존자말하기대회, 작은말하기, 밤길 되찾기 시위(달빛시위), 춤테라피, 욕망찾기 프로그램, 여성주의 자기방어 등 여성을 피해자로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에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인 동시에, 힘을 갖고 있는 생존자(survivor)로 그려낸 것이죠.

여성동아대상 시상식에서 발언하는 최영애 소장

이윤상 최영애 선생님은 상담소에서 오래 일하신 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셨는데 어떤 점이 새로웠는지, 또 다른 조직과 비교되는 상담소만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최영애 상담소라는 엔지오 조직에서의 경험이 처음 인권위를 만드는 준비단장으로 일한데 굉장한 도움을 줬어요. 제가 살아있는 조직, 현장을 갖는 조직을 염두에 두면서 인권위 조직을 편재했고, 발로 뛰는 인권위, 감수성을 겸비한 사람들이 일하는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이 모든 것은 상담소 활동에서 얻은 교훈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제가 여러 단체에 계신 분들한테 듣는 이야기 중에는 좀 걱정되는 것도 있어요. 이것이 세대 간 문제일수도 있고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겠는데... 현재 활동하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사적영역의 중요성, ‘나’ 자신의 중요성이 커지고, 100% 공감하지 않으면 몸을 던져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를 저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돼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경향 자체보다는 ‘소통의 부재’가 더욱 염려되더라고요.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는 서로 다르다고들 하는데, 사실 이런 차이가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해야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소통이 정말 중요하죠. 소통의 장을 어떤 방식으로 열어야 하는가가 참 중요한 문제인데.. 어떤 이는 이런 말도 하더라고요. 과연 서로 진심으로 소통을 원하는가,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마음이 아프죠.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는 이미경 소장

이미경 이건 아주 현실적인 문제인데, 그렇다면 여러 세대가 똑같은 숫자로 일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그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 가치관과 견해가 다를 때 어떻게 여성주의 가치를 함께 세워가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할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죠. 나이와 상관없이, 또 상근활동가든, 회원이든, 자원활동가든 상관없이 서로 소외감 느끼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큰 과제인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겠지요. 예전에 호주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의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80세가 다 된 분이 회원의 한 사람으로 활동가인 당신의 손녀랑 함께 회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부러웠어요. 과연 저도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죠. 또한 지금의 우리 상담소가 그렇게 품이 넓은 그릇인가를 돌아보게 되고요.

최영애 상담소가 처음 시작할 때 여성주의 조직을 실현해보는 것도 큰 목적이었어요. 민주적인 조직, 평등한 조직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죠. 저는 운동의 방식이나 지향에 따라서 조직은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소규모 문화운동을 하는 조직과, 직급과 서로 다른 역할과 책임을 가진 조직은 서로 다른 형태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물론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나치게 형식적 평등에 얽매여 형식적이 평등이 평등의 전체인 양 착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책임과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관계를 맺는 방식은 필요하지 않나, 그리고 그런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윤상 상담소는 이제 20주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초기의 상담소 기획이 잘 펼쳐졌다고 생각하시는지, 앞으로 우리가 주력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최영애 상담소는 개소 때부터 이슈에 대한 전문성을 갖는 것을 주요 취지로 가지고 있었죠. 그 정신은 잘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인들의 평가를 들어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우리 상담소가 다라고 생각하는 틀 안에 갇혀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 전체, 아시아 등을 보면서 연대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자원을 엮어가는 활동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죠. 사회가 변화해 가면서 그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잖아요. 이주여성, 북한여성 등 우리가 새롭게 발굴하고 차고 나가야 하는 이슈가 많은데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을 너무 한정적으로 보지 않나 하는 염려가 있어요. 20주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라면 그런 정도의 역량과 안목이 있어야 하죠. 우리가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쌓아온 콘텐츠가 정말 많죠. 예를 들면 정말 극찬을 받고 있는 대법원판례바꾸기운동 같은 모델도 적극적으로 나누고 확장해야죠. 넓게 보고 크게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우리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활동만을 한다고 해도, 그게 전부인 줄 알고 하는 것과 큰 판에서 그려본 후에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미경 초기에는 먼저 상담소를 개소하고 이후 연구소, 쉼터, 교육장 등의 자매기관들을 만들어서 종합적인 반성폭력운동센터의 모습을 그렸었지요. 실제로 그동안 열림터, 부설연구소, 성평등교육센터, 21세기미디어센터, 하담 등을 차례로 열어서 활동하다가, 여러 논의들을 거치면서, 외양의 팽창보다는 내실을 기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지금의 상담소와 열림터만 남기는 선택을 했지요. 이러한 선택은 반성폭력운동이 제도화 과정을 겪으면서 운동의 자율성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몸체를 가볍게 하면서 깊이 고민하며 치열하게 운동해 가는 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동안 참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면서 그 과정은 의미가 있었지만 활용의 측면에서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노력이 부족했지요. 자칫 너희들만의 운동이냐는 비판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요.

이윤상 곧 상담소는 새로운 대표를 선출해야 하고, 또 현재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많이 교체될 예정이에요. 새롭게 구성될 드림팀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씀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참석자의 모습

이미경 상담소 초기에 비해 지금은 시대적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들로만은 전혀 신선하지 않지요. 여성운동의 상상력을 키우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성, 구체적인 실천력이 함께 따라주어야 하는 시대이죠. 그런 점에서 차기 활동가들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 어찌 보면 20주년이라는 역사가 부담일 수도 있고요. 과거와 새로운 과제 사이에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고,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겠지요. 어떤 결정을 할 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근활동가 중심의 조직운영이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면이 있지만, 이제는 회원의 참여와 지지가 더욱 필요한 시대잖아요. 특히 우리사회의 맥박이라 할 수 있는 NGO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의 재정독립이 큰 과제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이 우리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의식과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또 그동안 함께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참여가 계속될 거고요. 무엇보다 가슴 뛰는 열정을 가진 상담소의 새 드림팀은,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으로 반성폭력운동의 지형을 새롭게 펼쳐가리라고 기대합니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최영애 前소장

최영애 이미경 소장이 얘기한 것처럼 드림팀이 새로 꾸려져서 가는 상황은 굉장한 변화를 의미하죠. 많은 것이 경제효율성으로 판단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재정적인 문제, 인원 충원의 문제, 지지그룹 등에서 전체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힘겨운 상황이지만, 저는 상담소는 20년 동안 쌓은 전문성과 대중의 신뢰도가 있기에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는 차기소장이 자기 자신의 비전, 자기 자신의 장점을 잘 판단해서 주력 사업을 잘 만들고 밀고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 때 상담소도 더욱 강해질 거예요. 그리고 소장은 상근활동가와 함께 가지만 동시에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확신이 매우 중요하죠.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저도 인권위에서 일하면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귀찮다 생각지 말고 잘 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대적 변화를 잘 보면서 넓은 안목으로 새로운 과제를 잘 찾아나가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웃으며 앉아 있는 세 사람
“인터뷰를 마치고 전 상근활동가 정유석 님, 정진욱 님이 합세하여 10여 년 전의 상담소 이야기로 한참동안이나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나왔던 말 중에 모두가 입을 모아 되뇌였던 말이 정말 가슴에 진하게 남네요. “상담소에서 일했던 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