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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아닌, '친밀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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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상담자가 아닌, ‘친밀한 그녀?’

⊙ 여성주의상담팀 이어진

상담자와 내담자가 존재하는 상담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난 이후, 상담이 종료되고 나면 그 이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상담에서는 서로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고, 어떠한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고민해 오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일정 부분 합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둘은 그 관계에 익숙해 있다. 또한 상담과정에서는 되도록 사적인 만남을 지양하라는 권고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상담시간 이외의 자리에서 서로를 탐색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상담시간동안 정들고, 서로 괜찮은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상담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서로의 관계 자체를 끊기는 쉽지 않다. 서로 또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한편 너무도 당연하게 말이다.

고즈넉한 상담방에서 서로를 보다가, 색다른 곳에서, 색다른 음식을 먹으며 서로를 만나는 그 설레임은 참 좋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아닌 또 다른 관계를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아주 나쁘지 않은 상담자로 나를 생각해주어 고맙고, 무엇보다 다시 만나고 싶은 내담자로 남아주어 감사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호칭을 새로이 생각해 내고, 휴대폰의 이름도 바꿔 쓴다. 덜 공식적이고, 덜 무거운 명칭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관계에 대한 설렘과 여러 시도는 바뀌는 명칭만큼, 변화하고자 하는 서로의 욕구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게, 만나는 장면이 달라졌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욕구가 한 번에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알아가면서, 나는 어떻게 서로에게 천천히 편해질 수 있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나는 상담에서 늘 이야기하는 동등함, 편함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 때는 요구를 할 수 있고 도움을 받으려고 했고 서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담원과 내담자의 관계가 꼭 그런건 아니지만 (상담이 끝나고 난 지금은) 가까워져서 오히려 동등해져서 편하다.??
[수애]

그녀보다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더라도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그녀의 입에서 대책을 끌어낼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좀 감정적이 되어도 덜 민망하고, 미안한 짓을 했어도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 뿐이고, 사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내 잘못에 대한 공식적인 책임을 염두 하지 않아도 되고, 만날 때마다 그녀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나에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보다)친밀해졌다. 그러면서 지금도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궁금하다. 또 한편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결 하려 해서 좋아졌다. 하지만 연락이 끊어지게 될까봐 불안감이 드는 것 같다.??
[수애]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내가 좋아하는 그녀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사실 내담자와 상담자로 만난 이들의 관계지층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의 호감만으로 충만된 얇은 얼음층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상담자와 내담자 이후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는 서로에 대한 더 큰 책임감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 책임감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처음부터 쌓아가는 것이 출발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지난겨울 정말 춥던 날 까칠한 그녀 수애와 만났다. 나는 평소처럼 자기주장을 분명히 말하지 않고, 애기처럼 징징거리면서 투정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냈다. 펄펄 날면서 나를 공격할 줄 알았던 그녀는 조용했다. 그리고는 그냥 조용히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나는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또 얼마간이 지나 그녀가 연락이 오기까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났고, 서로 어떠한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지 대략의 감을 잡은 듯 했다. 상담자였던 내가, 내담자였던 그녀가, 서로에게 친밀한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재정의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갑작스레 호칭을 바꾸기보다,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갑작스레 말을 놓기보다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지를 물었다. 앞으로 천천히 더 친해지자고 말이다. 그래서 오래오래 서로에게 친밀한 사람이 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위해 우리는 최소한의 애정을 표현하고, 나누기로 했다. 서로의 존재감을 까먹지 않고, 관계의 층위가 탄탄해 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