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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피해 증명을 위해 산부인과 진단을 받아오라구요?
  • 본 상담소 소장 이미경
쟁점과 입장

8년전 피해 증명을 위해 산부인과 진단을 받아오라구요?

⊙ 본 상담소 소장 이미경

8년전, 6살, 7살 두 자매가 큰방 집주인에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두 어린이는 이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8년이 지난 어느날, 성폭력에 대한 TV 프로를 보던 딸이
무심코 “나도 저런 일이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아버지가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주 어렵게 고소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공소시효를 넘긴 사건이라며 불기소처리하였습니다.
형사소송이 좌절되자,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습니다.
다행히 1심에서 승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측에서 즉시 항소를 했고
8년전 강간사실을 입증하라며 피해생존자들의 산부인과 진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성폭력상담소 지원사례(2005~현재)

강간 피해의 경우 재판과정에서 산부인과 진료는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성폭력 피해로 인한 신체적 손상 부위의 치료와 성병 및 임신 등의 예방조치는 매우 필요하다. 또한 산부인과적 처치는 정액채취나 상대방의 치모 등의 법적 증거확보를 위한 확실한 방안 중의 하나이다. 더불어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안정을 얻기 위한 한 방법이기도 하다.1

위 사례의 경우에는 고소당시 7년의 공소시효(현재는 10년으로 연장됨)도 넘긴 사건으로 일반적인 산부인과 진료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사항을 확보하기란 거의 희박하다. 더욱이 어릴적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처녀막 유무로 강간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문헌연구들이 나오고있다. 특히 신체적 손상의 정도는 피해자의 연령이나, 피해기간, 가해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관련 연구2를 보면, “조직 손상은 -아주 심한 경우만 제외한다면- 빠르게 치유되고 종종 완전히 치유되기도 하기 때문에, 검사하는 시기는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동 성폭력은 종종 애무(fondling)나 여성 성기 구강 애무(cunnilingus), 남성 성기 구강 애무(fellatio)와 같은 것만 행하는데 이들은 모두 신체 검사에서 아무런 특이 소견도 남기질 않는다. 사실, 아동 성추행자는 종종 외음부(대음순과 소음순) 틈에만 삽입을 하는데 이것은 거의 외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강간은 외음부 사이로 (성기를) 삽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역시) 아무런 조직 손상이나 사정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단지,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피해 후 얼마나 빨리 병원에 갔느냐가 증거확보의 관건이 되고 있다. 앞에 인용한 논문에서는 “우선, 성기 외상의 증거와 같은 것들은 성기 삽입이 발생한 후 24시간 이내에 검사를 받느냐 이후에 검사를 받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즉, 전자의 경우 더 많이 발견된다. 특히 피해 아동이 이미 피해 사건 이후 외음부를 씻거나 소변/대변을 봤거나, 성폭행을 당한지 72시간 이상 지났다면, 정액이나 사정의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정자를 찾아내는 것도 얼마나 숙련된 검시자가 검사를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 8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산부인과 진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건강한 삶을 찾아가고자 분투하는 이들을 재판과정에서 가해자측에서 주장하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진료대에 서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벌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성폭력 2차피해이다. (더우기 이들은 지금 고등학교 1,2학년으로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이다.) 이 두 자매의 아버지는 “재판에 진다고 하더라도 내 딸들을 결코 산부인과 진료를 받게할 수 없다!”고 절규하며 딸들이 이로인해 혹여 더한 상처를 받지 않을까 크게 염려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상담소에서 지원했던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도 의붓아버지가 2년동안 딸을 강간한 사건에 대해 피고인은 강간사실을 부인하고 추행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사건 피해생존자의 산부인과 진료결과는 “특이소견 없음”이었다. 자칫 강간이 아니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뻔했던 이 사건은 다행히 피해자의 진술녹화 내용의 신빙성을 인정받아, 피고인은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판결문 참조, 사건번호: 2007고합74).

여기에서 강간성립 여부의 판단기준이 되는 처녀막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처녀막의 유무가 곧 여성의 순결여부의 잣대로 작용하곤 한다. 나아가 처녀막이 툭하면 터지는 창호지쯤으로 생각한다.3 하지만 처녀막은 창호지처럼 얇고 투명한 막이 아니라, 질 입구에 있는 근육조직이다.4 따라서, 순결이데올로기의 원천인 ‘처녀막’이라는 용어대신 ‘질주름’으로 바꿔서 사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질주름의 모양이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신축성도 개인차가 심하다. 이것이 ‘과학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강간은 처녀막 파열을 동반하는 것이고, 이는 곧 순결의 상실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폭력 피해생존자에게 요구하는 산부인과적 진단서, 특히 질주름(처녀막) 파열 유무에 무게를 둔 진단서는 얼마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오히려 강간피해 후 산부인과적인 “특이소견이 없음”으로 진단받은 피해생존자들은 강간피해를 입증할 수 없는 이 사실 자체를 오히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재생가능한지를 자랑스럽게 느껴야하는 상황인 것은 아닐까? 문제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는 연구도 활발하지 않고 전문가로 분류되는 산부인과 의사의 소견에만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해 좀 더 활발한 피해생존자의 경험 말하기(speak out)와, 상담 전문가의 의견개진, 산부인과적 연구들이 간학문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생존자의 산부인과적 상태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와 해석,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1 임용택(2004),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의 산부인과 의료적 지원”, 「어린이성폭력피해자 지원을 위한 토론 및 수사·재판 시민감시단 발족식」자료집,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92p.

2 Danielle Laraque, M.D. Amy Demattia, M.D. Christine Low, L.C.S.W(2006), “Forensic Child Abuse Evaluation : A Review”,? The Mount Sinai Journal of Medicine Vol. 73 No. 8? December, 1141p.

3 정경자(1991), “순결”, 『일그러진 성문화, 새로보는 성』, 한국성폭력상담소(엮음), 동아일보사, 50p.

4 또하나의문화(2005), 『우리 몸 우리자신』, 보스톤여성건강서공동체 지음, 또문몸살림터 엮어옮김, 2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