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계에 은폐된“스포츠 성폭력”
⊙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위원 이명선
프롤로그 ; 오래전의 기억, 그리고 현재에 만난 과거의 기억들
벌써 30년쯤 전이다. 내 고등학생 시절에“그 아이들”은 우리와 달랐다. 그렇게 느꼈다. 교실 제일 뒷자리는 학교 운동부였던 그 아이들의 지정석이었지만 그 아이들의 자리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가끔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은 그냥 책상위에 머리를 엎드린 채 자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천천히 일어나거나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었다. 그러나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보는 그 아이들은 또 다른 존재로 기억된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운동장 트랙을 수도 없이 왕복하는 그 아이들, 체육관이 터져나가라 지르는 고함과 기합소리, 남자 체육선생님들이 지독한 욕설과 함께 테니스 라켓으로 그“여자”아이들의 배를 쿡쿡 내 지르던 장면들... 내게 그 아이들은 나와 학교라는 같은 공간 안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프로젝트로 학생선수의 인권실태에 참여하면서1 요즘 난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30년이 흘렀지만,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그 아이들은 여전히 그 공간 안에 그렇게 그대로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30년 전에 내가 앉았던 그 낡은 책상과 걸상, 칠판들이 그대로 걸려있는 교실에 다시 온 느낌이라고 할까...
“스포츠 성폭력”, 스포츠계의 익숙한 관행?
2007년 우리은행 여자프로농구팀 감독의 여성선수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면서 소위“스포츠 성폭력”과 이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스포츠 성폭력”이란 용어상으로 다소 애매하고 부정확한 표현이기는 하나 흔히 스포츠와 관련된 공간적, 문화적, 관계적 영역에서 발생되는 성폭력 일반을 통용한다. 스포츠계의 폭력이나 잘못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스포츠 관계자들은 스포츠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나 성추행, 성희롱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스포츠계에서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오랜 관행이자 익숙한 폭력이라고 고백한다.2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스포츠 성폭력과 관련해 최근 수행된 황정임 외(2007)의 연구를 보면 현재 직장운동부에서 여성운동선수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16.1%로 보고하고 있고, 학생운동부 시절의 성폭력 경험비율은 37.5%로 나타난다.3 또한 초등학교 남녀 운동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조광민 외(2006)의 조사는 14.9%가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한다.4 다른 성폭력 형태가 그렇듯이 실제 성폭력 발생율이 보고 수치를 상회할 것을 감안할 때, 스포츠계의 성폭력 실태 역시 많은 경우 대부분 비가시화되고 있으며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문제 : 장난이거나 친밀함이거나
무엇보다 스포츠계의 성폭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요인은 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인식부족이다. 특히 폐쇄적인 관계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오직 운동을 하는 선후배나 동료, 지도자만이 주요한 대인관계인 운동선수 십대들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이해나 인지는 일반 십대보다도 부족하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과정에서 만난 운동선수들에게 성폭력 경험을 묻는 경우 대부분“그런 건 없다”는 게 일차적 반응이다. 그러나 좀 더 이야기가 깊어지면“성폭력은 없다. 난 경험해 보지 않았다. 물론 선배나 코치들이 연습할 때 몸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슬쩍 터치하거나 하는 일은 흔하다”라고 대답하거나“선배가 후배의 성기를 손으로 막 잡아 뜯고 반복적으로 그래서 반성문을 쓰고 한일은 있지만... 성폭력은 없다”라고 말한다. 성폭력을 강간과 같은 극단적 행위만으로 생각하거나“그 정도의 일은 성폭력이기 보다 장난”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순이다.
더구나 거의 일상생활을 같이 하는 관계 속에서 감독이나 코치와 운동선수 혹은 선후배나 동료 간의 관계는 가족관계와 같은 친밀감이나 결속감을 요구할 뿐 아니라, 운동 자체가 몸과 몸을 부딪치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에 훈련과정에서 일어나는 신체접촉이 단순히“자세의 교정”이나 훈련의 일환인지 혹은 성희롱이나 성폭력인지 경계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감독이 옆에 앉으라고 하거나 몸을 만지는 등의 성희롱을 해도“감독이 이뻐라 이뻐라 하는건데”라고 생각하고 말거나 선수에게 성폭행을 가한 감독이“딸 같아서...”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한다.
드러낼 수 없는 성폭력 : 불평등한 위계와 성별 구조
실제로 성폭력이라고 인지하는 경우에도 절대적 위계관계와 권력관계에 기반한 감독과 선수,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저항하거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은행 성폭력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감독은 선수들이 알몸으로 있는 방에도 불쑥 들어가고, 선수들에게‘뽀뽀’를 요구하고, 면담을 한다면서 감독의 방으로 개인적으로 불러들이지만, 선수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동료들에게“들어가서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면 방문을 두드려 달라”는 눈물겨운 저항을 모색할 뿐이다. 무엇보다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가 학교진학이나 취업 여부, 그리고 직업선수로 취업 이후에는 선수선발권이나 연봉 등을 결정하는 주요권력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운동을 그만 두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것 혹은 직장을 잃는 등 그야말로 미래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는 스포츠계의 불평등한 성별권력이 여성 선수들의 삶을 성폭력에 노출시키고 또 저항을 무력화하거나 결과를 은폐시키는 핵심적 요소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특히“지도자/남성 대 선수/여성”으로 대표되는 불평등한 성별 권력구조는 단순히 위계나 권력뿐 아니라 성별 구조가 결합되어 성폭력을 발생, 유지시키는 전형적 구조이기도 하다. 즉 훈련과 일상에서 절대적 권한과 권력을 갖는 지도자와 그에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운동선수의 관계는 그 자체가 위계적이다. 여기에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성별권력이 추가되는 관계에서 성폭력 발생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 반면 피해자의 저항은 더욱 무기력해지거나 은폐될 가능성이 높다.
성폭력을 조장하는 남성적, 위계적, 폐쇄적 문화
스포츠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여성운동선수들이 활약하고 있고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현실과 무관하게 위계와 서열, 육체적 힘(때로는 폭력), 집단적 연대나 폐쇄적 문화 등을 속성으로 하는“남성문화”의 지배를 받는 가장 대표적 영역 중의 하나이다. 특히 소위“국가주도의 엘리트 체육 정책”을 기본으로 발전해온 한국 체육계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스포츠 스타를 만들어 낸 게 사실이지만, 이러한 압축적 성장은 한국 체육계 특유의 남성적이고 경쟁적인 훈련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즉 가혹하리 만치 엄격하게 통제되는 훈련과정, 지도자와 선수 간 혹은 선배와 후배간의 절대적 위계에 기반한 지배와 복종, 훈련에 수반되는 체벌과 폭력 등은 최고의 기량과 목표달성을 위해서라면 감내해야 할 훈련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이러한 훈련 문화는 외부 집단이나 관계와 분리된 채,“그들만의 공간”속에서“그들만의 문화”로 형성되는 폐쇄적 특징을 갖는다.
이와 같은 남성적, 위계적, 폐쇄적 훈련 문화는 남성선수보다 여성선수들에게 더 어려운 정체성 갈등과 적응문제를 야기한다.5 뿐만 아니라 위계적, 폐쇄적인 집단 문화는 성폭력의 발생이나 은폐를 구조화하는 주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가령 체육계에 관행화된 기숙사나 합숙훈련과 같은 집단문화는 이성뿐 아니라 동성 간의 성폭력을 더 손쉽게 발생시키거나 은폐하는 구조로 작동한다.6 더구나 집단 내 연대나 결속감이 강조되는 문화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노출시키고 도움을 받기가 더욱 어렵다.
성폭력과 폭력, 연속선위에 있는 인권침해
마지막으로, 스포츠 성폭력의 중요한 특징은 스포츠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스포츠계 전반의 폭력 문화 혹은 폭력 허용문화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스포츠계에서 체벌이나 기합,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만연된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학적, 체계적 훈련 시스템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제 운동선수들을 둘러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 즉 운동선수, 지도자, 학부모들은 직접적으로 운동선수의“몸”을 훈육하고 훈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선수들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게 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즉 지도자들은 학생선수들을 손쉽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강압과 폭력을 이용하고 이를“어쩔 수 없는”혹은“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방식으로 지속한다. 이처럼 폭력을 통한 훈육과 통제를 허용하는 문화, 폭력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성폭력은 더욱 쉽게 허용되거나 발생된다. 가령 폭력의 극단적 형태로서 성폭력은 지도자가 선수를 통제하거나 선배가 후배를 길들이는 한 방식으로, 심지어 훈련의 한 형태로 오용되거나 피해자에 의해 수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폭력과 성폭력은 혼재되거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가령 후배가 선배의 빨래나 청소를 제대로 안한다고 구타하는 과정에서 후배의 개인적 행실을 문제 삼아“걸레 같은 년”이라는 성적인 욕설을 하는 사례, 혹은 단체기합의 일환으로 옷을 발가벗겨 세워놓는 일 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결국 폭력을 허용하는 문화 속에서 성폭력 또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나 인권침해의 양태로 나타난다.
대안은 있는가?
스포츠 성폭력은“스포츠계”라는 일정한 폐쇄성을 갖고 있는 특정한 공간적 문화적 관계적 영역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거나 쉽게 은폐된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과연 존재하는가? 물론 하나의, 그리고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정책적 수준에서 여러 가지 제언이 가능하다.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일상구조 즉 합숙소나 합숙훈련체제를 개선하고, 피해자 긴급 지원체계와 상담체계를 마련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법적 처벌을 강화하고, 여성 지도자 양성 및 배치를 위한 할당제를 도입하고, 선수 및 지도자에 대한 정기적 성폭력 예방 교육 등 등 등. 그러나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은 생명력이 없는 정책이나 대안은 그저 제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정책제언은 말 그대로 제언에 머물 수 있다. 정책이 구조의 변화라면 정책을 집행하는 담당자들의 진정성, 스포츠계 관련인들의 변화의지와 지속적 노력, 그리고 선수 자신들의 의식화는 그 구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실질적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에필로그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30년 전의 교실에 다시 온것 같은 절망감과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조사를 통해 현장에서 만난 10대 운동선수들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생명력이 넘쳤다. 성폭력 예방교육에 참가한 감독과 코치들은 자신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불신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불편해보였지만, 대안을 찾아보려는 진지함 또한 같이 갖고 있었다. 스포츠계의 선배로서 교육자로서 참가한 전문가들, 그리고 정책담당자들은 변화를 위한 열정으로 무더운 한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하나의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서, 비록 여전히 여러 가지 미비함과 아쉬움은 있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이들의 몸짓에서 또 다른 시작을 본다. 변화의 씨를 심는.
1 이 연구는 국가인권위원회의에서 진행하는“스포츠 분야 인권향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행되는“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이며 2008년 5월-10월 중에 진행중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인용하는 사례들은 이 실태조사 과정에서 접하게 된 사실이나 인터뷰 사례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2 정희준,“여성을 위협하는 체육계의 구조적 폭력과 그 익숙한 관행, 그리고 대안”
3 황정임.선보영.허현미(2007),“프로스포츠팀과 직장운동부의 여성선수 권익실태조사”, 문화관광부 연구영역 보고서
4 조광민 외(2006),“학생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초등학교를 중심으로”2006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
5 서구의 연구들은 여성운동선수들이 남성적인 스포츠 문화 속에서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과 운동선수로서의 정체성간에 갈등을 느낄 뿐 아니라, 남성적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남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발달시킬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보고한다.
6 조성민 외(2006)의 연구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발생상황이나 원인에 대해서는 좀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