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보호, 됐거든요!
⊙ 상담소 회원, 블로그하는 여성주의자 여름_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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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그녀들과 팔을 걸고 전경 방패 앞에 앉아 있었다. 번갈아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그 자리를 메우고서 다녀왔다.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막차 시간을 넘겼다. 내 옆에 그녀는 집에 전화를 했다. 오늘은 못들어가겠노라고. 12시쯤까지 있던 경찰은 어느새 빠졌다. 우리는 도로에 앉아 자유발언을 하고, 노래를 배우고, 구호를 외치고, 자고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5월 24일 촛불이 처음으로 거리를 점거하고 그 거리에서 밤을 지샌 날이다.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어느새 막차를 보내고 첫차를 기다렸다. 어느샌가 빠졌던 경찰이 4시쯤 다시 왔다. 방패를 앞세우고... 우리는 다시 팔을 걸고 앉았다. 처음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전경과 시위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다시 팔을 걸고 전경 방패 앞에 앉아있었다. 소리치고 뜯겨나가고 고립되고 밀고 주변에서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그 와중에 내가 제일 선명하게 들은 소리는 “여자분들은 뒤로 빠지세요”였다.
띠웅...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하나고 대안이고 우리가 승리했고.. 등등 언제나 ‘우리’라고 묶이며 서로 동질감을 형성하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분리된다. 물리적인 힘이 필요하거나 위험하다고 (어떤 사람들이)생각하는 순간에 먼저 청소년과 여성이 배제된다. 나는 전국민적인 참여자체가 자랑인 집회에서 어떤 소외와 배제를 접했고 그날 이후에는 더 두려운 단어와 만났다.
5월 24일 첫번째 밤샘집회 이후부터는 촛불집회는 계속해서 심야의 거리를 무대로 유쾌한 판을 이어가는 듯했다. 나와 몇몇 친구들은 간헐적이었더라도 매번 그 무리 안에 있었다. 그리고 각자 유쾌했던 이야기, 불쾌했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여자분들은 뒤로”였다. 어투에 맥락이 있는데, 절대 “여자들 나가, 꺼져”는 아니다, 매우 정중하면서 배려하는 말투, “뒤에 가서 계세요. 이 험난한 싸움판으로 부터 당신들을 지켜드릴게요.” 바로 ‘보호’다.
촛불집회에서 어떤 이들에 의한, 그리고 예비역들에 의해 거의 원칙화까지 되어버린 여성, 청소년 보호에 대해 여성주의 블로거들이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 글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무리가 당연히 존재했지만, ‘Daum 아고라’나 ‘이글루스’등에 글들이 링크되면서는 몇 백개의 악플을 감수해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논조는 거의 ‘나서서 지켜주고 있는데 고맙다고는 못할 망정 이게 뭐냐’는 식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오는 ‘늘 있던’, ‘늘 듣던’,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하, 여성에 대한 비하를 ‘또’ 들어야만 했다.
상황을 쭉 겪으면서 뭔가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언니들아 액션하자’라는 글을 썼다. 촛불은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길을 잃고 헤매는 무능한 권력으로 부터 ‘대한민국’을 구할지는 몰라도 ‘함께 집회에 참여해서 케발랄하게 투쟁하고 싶은’ 페미니스트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였다.
그래서 하게 된 액션이 ‘불타는 언니들1의 “됐거든요”’ 액션이었다. 일단 피켓에 ‘청소년·여성보호 됐거든요’, ‘전의경 제도 됐거든요’, ‘수도민영화 됐거든요’ 같은 메세지를 썼다. 메세지에서 알 수 있지만 우리도 촛불집회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또 넘어야할 '여성보호'라는 산이 있었다.
그리고 드러 누웠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 비폭력 평화행동의 일종인 ‘다이인(Die-in)’을 했다. 다이인을 검색해보면 이라크 전쟁같은 대량학살에 저항하여 집단으로 죽은 척을 하며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또 꽃을 올리며 추모하기도 하고 연주하기도 하고 분필로 낙서하며 메세지를 적기도 한다.
‘됐거든요’라는 메세지와도 다이인이 잘 맞았다. 여성들이 거리에 눕는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을 낳는다. 실제로 지나가면서 어떤 사람은 일어나라고 호통치고 어떤 사람은 같이 흐느끼기도 한다. ‘어쩌자고 이렇게 누워있냐’, ‘이러면 안된다’ 등 다양하다. 피켓들고 누워서 지나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여성이라는 몸을 가져서 보호대상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여성의 몸으로 누워있으니 운동이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씁쓸하기도 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억하면서 사람들은 넥타이부대를 이야기한다. 87년의 사진을 보면 넥타이부대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2008년 촛불집회를 기억하면서는 어떤 주체를 떠올리게 될까. 촛불소녀, 유모차 부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예비역 구도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기억해주는 것 말고 내가 기억해야할 것은 아마도 지켜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즐거웠던 길바닥에 드러누운 불타는 언니들.
1 ‘불타는 언니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알음알음 만나 일시적으로 기획되었으며 액션에 대한 구상은 모임 사람들이 함께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