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리을 미음 받침의 앎 활동가예요! 2023년 2월부터 1년간 안식년을 다녀온 후, 2024년 2월부터 여성주의상담팀으로 복귀했습니다. 2017년에 입사한 이후 늘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로서 여러 가지 활동 후기를 썼는데,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로서 첫인사말을 쓰려니 감회가 새롭네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오랜 기간 근무한 활동가가 충분한 쉼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도록 '안식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현행 규정으로는 만 6년 이상 근무한 자가 신청하여 안식년 1년을 사용할 수 있고, 신청자가 여러 명인 때에는 순차적으로 사용을 조정해요. 안식년 기간의 급여는 6개월간 월 본봉액 전액을 받고 나머지 6개월은 무급으로 하는 것과 12개월간 균등하게 월 본봉액의 반액을 받는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안식년에 관한 규정 자체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마련되어 있었지만, 예전에는 안식년 기간의 급여가 3개월간 월 본봉액의 반액에 불과했고 나머지 기간은 무급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안식년을 사용하는 활동가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2020년에 안식년을 실효성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현행처럼 규정을 바꾸었고, 그 이후로는 제가 최초로 안식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첫 선례인 만큼, 안식년을 정말 잘 보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어요. 안식년을 앞두고 먼저 활동가들에게 '버킷리스트' 공책을 돌려 제가 1년간 뭘 하면 좋겠는지 적어달라고 했는데요, '신나게 모든 시간을 즐기기!'부터 '새로운 취미 1개 만들기(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 '혼자 여행 떠나기' 등 다양한 추천을 받았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안식년 동안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면서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주로 뭘 했는지 떠올려 보니, 운동과 여행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부분 정리가 됩니다.

먼저 운동 얘기부터 해볼게요. 안식년을 맞아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폴댄스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일하는 동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시작하지 못했거든요. 폴댄스를 배우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나중에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에 다니면서 PT도 병행했습니다. 이 두 가지 운동은 제 일상에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안식년을 마치고 복직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그 밖에도 에어리얼 실크, 훌라, 양궁, 볼링, 클라이밍, 웨이크보드, 패들보드, 서핑 등 해보고 싶은 운동 종목이 생기면 마음껏 체험해 보았답니다. 하루하루 재미있고 성취감도 있었어요. 회원 여러분들도 관심 있는 운동이 생기면 뭐든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찾아보면 체험 강좌가 많더라고요!

여행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혼자 3박4일로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완주하기도 했고, 때마침 환갑을 맞은 어머니와 대만 여행을 가기도 했고, 친구와 강릉에 놀러 가 바다 수영도 하고 수평선이 보이는 인피니티풀(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밤늦도록 둥둥 떠 있기도 했습니다. 봄에는 진해군항제에서 벚꽃을, 여름에는 강과 바다를, 가을에는 밤 산지인 공주와 사과 산지인 예산에서 시장 먹거리를, 겨울에는 각각 제주와 강원에 있는 지인 집에서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는 벽난로를 보면서 사계절을 만끽했어요.
무엇보다 안식년을 기회로 미국 할머니 댁에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작년 연말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찾아뵙고 한 달 넘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저처럼 안식년 내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 6개월 급여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하하). 상담소에 후원회원이 늘어나고 경제적 부담이 줄어서 제가 다음 안식년을 보낼 때는 12개월 급여를 다 받을 수 있기를 한번 기원해 봅니다.
앞서 인사드렸듯이 저는 여성주의상담팀으로 복귀했습니다. 성문화운동팀과 여성주의상담팀은 주된 업무가 아예 달라서 모든 걸 새로 배우는 느낌이었어요. 농담 삼아 '안식년 동안 성폭력이 뭔지, 여성주의 상담이 뭔지 다 까먹었다'라고 호소했지만, '그럴 리 없어. 앎은 잘할 거야'라고 믿어 주는 동료들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다시 열고 싶다'라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막상 상담·지원 업무를 병행하면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준비하려니 너무 정신없고 바빴어요. 그러면서도 성폭력 생존자들을 만나고, 저마다 다른 생존자들이 서로 공감하고 용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가슴 벅차고 힘이 났습니다. 아, 이제 정말 활동가의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비로소 실감이 들었어요.

저에게 안식년은 단순히 쉬는 데 그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독기가 빠졌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 대신에 생긴 여유가 상담·지원 업무에는 제법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안식년을 보낼 동료들은 또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서 돌아올지 기대됩니다.
여윳돈을 미리 모아두라는 조언과 함께, 이만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