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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들”과 젠더 테러리즘
  • 추지현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여성폭력(violence against women)과 남성성

2023년, 서현역, 신림역, 관악산 생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련의 "흉기 난동 사건"은 이를 모방해 여성들을 살해하겠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잇따른 협박글과 더불어 많은 여성의 분노와 공포를 야기했다. 기동대, 특공대, 장갑차 배치 등 물리적 감시를 강화해 범행 기회를 차단하려는, 이른바 범죄예방환경설계 (CPTED)라는 신자유주의적 범죄 예방론이 경찰의 대책으로 제시되자, 여성들은 그들의 자유로운 시·공간 접근이나 활동 반경을 제약하고 두려움을 소비하는 젠더 관계의 불평등, 그리고 이것을 비가시화하는 "흉기 난동 사건", "묻지마 범죄" 등의 명명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르는 사이"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극단적 폭력을 행사할 만큼 개인의 정신병리가 핵심이라는 반발 앞에서 젠더를 어떻게 문제화해야 할지 머뭇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들의 관계 혹은 성별만으로 사회적 관계이자 사회 구성의 원리로서 젠더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 가해자의 이념적 동기와 폭력 실행에 있어 젠더의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2023년 신림역 인근에서 남성 4명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1명을 사망케 한 조 선은 평소 자신보다 외모, 경제력 등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온 것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1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실현할 수단이나 사회적 인정이 부재한 상황, 즉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자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을 주장하기 위한 실천 위험과 금기 위반을 감수, 과시할 수 있는 폭력,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함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한 페미니스트들이 범죄를 남성성 수행의 산물로, 범죄를 행한다는 것이 곧 젠더 수행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젠더 불평등을 문제화해 온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2

2. 젠더를 구성하는 남성성"들"

남성성은 남성 집단 일반의 특성이 아니라 남성으로서 의미를 획득하는 구체적 실천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래윈 코넬은 위와 같은 고전적 페미니스트 범죄학의 연구들을 빌어 계급, 인종 등이 젠더와 교차하며 구성된 주변적 지위에서 나타나는 실천을 주변적 남성성으로 명명한 바 있다.3 이 주변부 남성성은 한편으로는 주변성과 피해자성을 근거로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거리를 두지만, 자신을 '감히' 무시할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통해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구축에 기여하기도 한다. 자신이 더 열등해지지 않기 위해 이성애, 시스젠더, 남성중심적 젠더 관계를 위반하거나 이에 저항하는 성소수자 남성들 혹은 여성들을 추방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코넬은 이때 배제되는 저항적 실천을 종속적 남성성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주변성은 스스로를 성평등 정책이나 페미니즘의 피해자로 위치 짓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4

그런데 마찬가지 삶의 조건들 속에서도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가부장제의 이득을 얻는 실천들이 존재한다. "흉기 난동 범죄"나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엄단을 요구하며 스스로를 정의 실현의 주체인 남성으로 의미화하되, 여성 피해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부도덕한" 여성 역시 응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표방하는 "사이버 렉카"의 활동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보호 주체로서의 남성, 보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방식의 젠더 지배를 영속화하며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구축한 질서로부터 경제적, 도덕적 이득을 얻는다. 코넬은 이렇게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남성성을 손질하며 가부장제의 배당금을 얻는 실천을 공모적 남성성으로 명명한 바 있는데,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그와 거리를 두는 주변부 남성성의 특성은 하이브리드 남성성으로서 별도로 명명되기도 한다.5

그런데 헤게모니는 완벽한 통제를 의미하지 않으며 그 형태 역시 이성애 규범을 교란시키지 않은 채 게이 남성의 직업적 성취를 지지할 정도로 사회 변동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 코넬은 〈남성성/들〉이라는 책의 2판에서, 전통적 성역할규범에 대한 강조보다 젠더중립적 외양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 역량을 강조하는 실천을 기업가적 남성성으로 명명하기도 했다.6 그 후로도 '남성성' 앞에 다양한 수식어들을 단 연구들이 많이 등장해 왔지만, 1993년 코넬의 위 책 첫 발간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논의를 소환하는 이유는 남성성'들'의 다양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사이의 관계, 즉 그것들이 동맹을 맺거나 지배 및 종속되는 관계나 여성성과 맺는 관계 속에서 젠더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주목하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기실 폭력과 범죄는 주변부 남성성의 결과물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국가를 보호하겠다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전쟁과 계엄을 추동하고, 편의적 법의 해석과 적용이 남성연대와 직무 가치로 표방되어 온 것은 범죄와 젠더 수행에 대한 앞선 연구들이 보여주듯 새롭지 않다. 남성다움의 문화적 이상을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군 복무나 열악한 노동 상황을 감수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가부장적 배당금을 나눠줄 듯 호소하는 실천들이 정작 이 남성들이 노동자로서, 병역거부자로서 제도적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거부한다. 이러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에는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정박시키거나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방식과 예산을 경제적 효율성 중심의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삭감하며 젠더를 탈각하는 것, 나아가 여성폭력의 원인을 범죄심리학의 지식이나 "젠더갈등" 프레임을 비판하며 일축하는 정치인, 지식인 등의 실천 역시 포함된다. 주변부 남성성으로서 폭력 행사가 결국 처벌되고 정작 주변화된 남성 집단 일반의 권위를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남성성"들"을 통해 지속되는 젠더 불평등으로부터 특권적 지위를 차지한다. 남성의 극단적 폭력을 주변부 남성성의 문제로 일축하기보다 이를 통해 이득을 얻고 또한 이를 지지하는 남성성 및 젠더가 구조화되는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이유다.

3. 남성성"들"과 여성폭력

2019년 캐나다 안보정보국(CSIS)은 여성혐오(misogyny) 동기를 테러리즘의 사유로 포괄하기 시작했다. 통상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에서 조직적, 집단적으로 특정 집단에 폭력을 가하거나 이를 수단으로 지배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이때 상정된 정치란 국가 안보로 국한되었고 여성이 표적이 되는 폭력을 다루는 데 체계적으로 실패해 왔기에 이를 문제화하기 위해 '성별 기반 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이 주창되었다.7 나아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개인, 커뮤니티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성에 대한 적대와 폭력이 합리화되고 조장되는 현실은 기존의 테러리즘이 상정하는 명시적이고 조직적인 폭력 선동 없이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능하다는 것, 바로 그 이유로 폭력 행사와 동기 사이의 직접적 인과 관계 규명이 어려운 상황 자체를 문제화하기 위해 '확률적 젠더 기반 폭력(stochastic gender-based violence)' 개념이 제안되기도 했다.8 그리고 202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경찰청은 17세의 한 남성이 낯선 여성을 살해한 사실과 관련해 가해자의 행위가 인셀9 운동에 영감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테러 활동에 의한 살인/미수로 혐의로 기소했다. 이는 캐나다에서 여성혐오 동기를 젠더 주도 폭력(Gender-driven Violence, GDV)으로 언급한 최초의 케이스로 평가된다.10 이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여성인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사이인지 여부가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한 개인의 미시적 삶에서 폭력의 동기와 맥락을 형성했는지, 그리고 법적 평가 기준인 가해자의 고의 입증을 넘어 그 동기 형성 과정에 놓인 혐오의 네트워크적 생산 과정을 테러로써 선언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현행 젠더 관계에 대한 남성들의 저항적 실천과 페미니즘 연대의 규모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이를 종속적 남성성으로 치부, 묵인하려 하고 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독려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참여가 젠더폭력 예방에 있어서도 효과가 있음을 보고하는 연구들은 지속 보고되고 있지만,11 지적, 제도적 권력을 가진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과학적 인과관계론, 협소한 범죄심리학 지식, "젠더갈등" 담론을 활용해 여성들의 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사소화하고 대학 내 페미니즘 연구 및 강좌의 지반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성들의 두려움을 자원 삼아 이를 영속화하는 미디어 생산, 피해자의 사후 구제를 위한 디지털 기술 개발과 AI 산업 확장을 병행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실천이 젠더에 눈 감고 종속적, 공모적 남성성을 활용하되 그들 삶의 조건 개선에 부응할 책무감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헤게모니란 자동적이지 않고 붕괴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제도 정치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에 당면한 상황은 지금 여기, 2024년 12월, "내란" 및 탄핵 정국을 통해 목도하고 있다. 이는 젠더 불평등의 해소를 통해 민주주의의 미래를 새롭게 해 온 반성폭력운동에 성별, 계층,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등을 넘어선 모든 이들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 2023.7.26., 이데일리, "신림 흉기난동범, 남들보다 키 작아 열등감 느껴", https://n.news.naver.com/article/018/0005537762?sid=102

2 Messerschmidt, J. W. (1997). Crime as structured action: Gender, race, class, and crime in the making. SAGE Publications, Inc.; Seidler, V. (2005). Transforming Masculinities: Men, Cultures, Bodies, Power, Sex and Love (1st ed.). Routledge.

3 Connell, R. W. (2005), Masculinities, 2nd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California.

4 Gosse, M., Halpin, M., & Maguire, F. (2024). Stochastic Gender-Based Violence: How Incels Justify and Encourage Sexualized Violence Against Women. Violence Against Women.

5 Bridges & Pascoe, (2014), Hybrid Masculinities New Directions in the Sociology of Men and Masculinities, Sociology Compass 8/3 (2014): 246–258, 10.

6 Messerschmidt, J. W. (1997). Crime as structured action: Gender, race, class, and crime in the making. SAGE Publications, Inc

7 Lockyer, D., Halpin, M., & Maguire, F. (2024). The Emergence of the Incel Community as a Misogyny-Motivated Terrorist Threat. Terrorism and Political Violence, 1–17

8 Gosse, Meghan et al., 2024, Stochastic Gender-Based Violence: How Incels Justify and Encourage Sexualized Violence Against Women

9 비자발적 독신 남성으로서 자신의 상황을 여성혐오로 귀인시키는 이들

10 2023.11.29., CBC, "Man who pleaded guilty in incel-inspired Toronto murder sentenced to life in prison", https://www.cbc.ca/news/canada/toronto/murder-toronto-spa-man-sentencing-1.7041917

11 Pérez-Martínez, V., Marcos-Marcos, J., Cerdán-Torregrosa, A., Briones-Vozmediano, E., Sanz-Barbero, B., Davó-Blanes, Mc., Daoud, N., Edwards, C., Salazar, M., La Parra-Casado, D., & Vives-Cases, C. (2023). Positive Masculinities and Gender-Based Violence Educational Interventions Among Young People: A Systematic Review. Trauma, Violence, & Abuse, 24(2), 468-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