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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당하지 않는 사랑의 나라
  • 공차 | 좋음을 잘 찾는 사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20년을 넘도록 사랑이란 무엇인지 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여러 날들의 기억은 삼십 대가 된 저를 아직도 혼란스럽게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벌써 13년을 생존 중인 친족성폭력 생존자이고, 스텔싱 2년차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지난주는 제 인생에서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간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 성희롱이나 폭력을 참 많이 참아왔는데,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공적으로 내고 법원으로부터 부당함을 인정받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작은 승리를 기념하고자, 저의 생존 일기를 써 보려고 합니다. 이 일기가 활동가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여러 사람에게 성폭력 생존자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다른 성폭력 생존자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저는 아이가 많은 집의 맏이이자, 유일한 딸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데다 두 분의 성격도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분의 싸움으로 접시가 깨지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날 만큼 조용할 날 없던 집안이 조금씩 정상이 된 건 제가 12살이 된 즈음입니다. 12살부터 15살 때까지 4년간 점진적으로 수위를 높여 가며 저를 성추행하는 동안, 저희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처럼 보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왜 4년이나 가만히 있었던 걸까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닌 데도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 '다 사랑해서 미리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이라는 아빠의 말, 나만 참으면 평화로울 것 같은 상황, 용기 내서 엄마에게 말해 보았지만 가슴 만져 본 것 정도는 장난이겠거니 하고 넘어간 일, 맨날 혼나기만 하다가 처음 받아 보는 관심, 지금 일어나는 이 일(성폭력)이 뭔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점…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될 테지만, 저는 아빠의 성폭력이 끝난 15살로부터 10년이 지난 25살 때에도 제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17살이 되던 해의 여름방학에, 드디어 4년간 제게 일어났던 일을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일이 사실인지 묻고도 일주일이나 아버지를 집에 그대로 두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사회 경력도 없는 사십 대 주부에, 체면 눈치도 많이 보고 겁도 많은 사람이라 아버지를 쫓아내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버지는 쫓겨났고, 저는 고소와 정신과 치료를 모두 받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다른 사람의 눈과 저의 앞날, 어린 동생들이 받을 충격을 이유로 한 반대 때문에 신고와 치료를 모두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후 10대 피해자인 저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의지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쫓아내 집안을 어렵게 만들고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 저를 싫어하는 동생들을 피해서 저는 20살이 되고부터 거의 내내 혼자 살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사실 피해 당시보다 더 힘든 시기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며 앞으로 연애나 결혼 등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된 고등학생 때이고, 하나는 스무 살에 대학교에서 처음 이성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안에서는 '나는 깨끗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내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 꺼림칙해 할 것이며, 이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비정상적인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었습니다. 이후 종종 사랑이라는 말에 '사랑해서 가르쳐 주려고 한다(만진다)'는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두 번의 시기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일어난 일을 알까 봐, 혹은 제가 어딘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모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늘 책만 보고, 친구도 사귀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끼리 편하게 하는 가족 이야기도, 명절 계획 이야기도, 왜 계속 돈을 벌어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저에게는 있는 그대로도 지어내서도 답하기 너무 어렵게 느껴졌기에, 가족이 없어서 의지할 친구가 더욱 간절했는데도 늘 거리를 두고 혼자 지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저를 이해하고,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많은 성폭력 사례집이나 심리상담, 치료 관련 책들을 스스로 읽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사이에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만, 이제는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친구도 조금 생겼고 학교도 졸업하고 여러 일에서 재능과 흥미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고시원에서 친구의 자취방, 누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자취방에서 테라스가 있는 지금의 원룸까지 집도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8살에 저는 또다시 성폭력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데이트폭력, 그중에서 동의 없이 피임도구를 제거하는 스텔싱으로 임신과 낙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저는 무척 똑똑한 편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대체 왜 저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훨씬 더 가벼운 일들까지 떠올려 보자면 왜 20살이 넘은 제게 어느 날 갑자기 외삼촌은 뽀뽀를 하고 싶다고 말한 걸까요. 엄마는 왜 그걸 얘기해도 그냥 술 취해서 실수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걸까요. 왜 20살이 갓 된 저에게 어느 날 갑자기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같이 바다 여행을 가자고 말한 걸까요. 왜 이런 일들이 여러 사람에게 반복되는 걸까요.

저는 이게 혹시 제 얼굴 때문인지, 저도 모르는 제 행동이나 말투나 표정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타겟이 될 만한) 점이 있는 건지, 옷차림 때문인지 정말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말 많은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얼굴이 너무 순해 보여서 그런가 싶던 때는 타투를 하고 세 보이는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투나 표정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옷차림도 노출이 거의 없도록 바꿔보기도 했지만 정말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건 저 때문이 아니니까요.

정말 많이 돌고 돌아서 드디어 이 모든 게 저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인 티가 나지 않도록, 평범하고 잘 자란 정상적인 사람(그게 뭔지 저도 모르겠지만)처럼 보이고자 아무 티도 날 일 없도록 성폭력 관련 담론을 피해 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아직도 성범죄자의 자식이자 성범죄자의 피해자라는 이중 낙인,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두렵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소송을 계기로 제가 아닌 다른 생존자분들의 판례, 이야기, 활동을 접하면서 제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 특히 공론화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되는 선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자책을 멈출 수 있는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은 사건 속의 생존자분들이 제 앞에 서 계시다면, 저는 그건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을 테니까요.

이 일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면, 누구의 탓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앞으로의 제 삶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친족 성폭력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어도 주민등록등본을 조회하지 못하게 제한할 수 있는 법이 생기고, 원치 않게 성폭력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고심 끝에 낙태를 선택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생계나 여러 이유로 생존자가 더 빨리 더 제대로 구제받기 어렵고, 자립하더라도 원가족의 가해자가 아닌 다른 가족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등 취약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이런 가족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기까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피하면서도 이해 받고 싶은 마음에 위험한 인간관계를 골라 수용하며 착취당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또 심리적인 고민, 불안으로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이어 나가는 데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성폭력 긴급 전화를 하더라도 데이트폭력이나 스텔싱 같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사건의 경우 반려를 당하기도 하며(제가 겪은 일로, 저는 상담 반려를 받고 사비로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기록도 제대로 남지 않는 병원에서, 가해자 남성의 동의를 구걸해 의료진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들어가며 낙태 시술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과거 몇 십 년 전에 비하면 느리게 나아지고 있지만, 이처럼 아직 턱없이 제도와 관심이 부족한 게 첫 번째 탓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 가해자의 탓입니다.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저의 친족성폭력 가해자는 '사랑해서', 저에게 뽀뽀하고 싶다던 외삼촌은 '네가 착하고 예뻐서', 스텔싱 가해자는 '설레서' 그랬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사랑을 말하거나 사랑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말이 제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따갑고 쓰라린 것은 이것이 사랑의 탈을 쓴 비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히 사랑이라는 귀한 표현으로 사랑 때문이라 자신도 어쩔 수 없었으니 죄가 없다는 말을 돌려 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걸 듣고 평생 사랑을 두려워하게 될 피해자의 마음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감히 저런 말을 진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20년을 넘도록 사랑이란 무엇인지 답을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 가짜라는 것은 아주 잘 압니다.

소송이 끝났고, 저는 이겼습니다. 가해자가 항소하지 않으면 이대로 판결이 확정되겠지요. 그러면 여러 신문사에 제 사건 판결문을 제보하고 싶습니다. 이런 일을 누군가 또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일 겪게 된다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가해자의 죄를 묻고, 피해를 보상받는 데 제가 남긴 선례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동의 없이 콘돔을 빼면 이만큼 처벌받는다는 걸 널리 알려서 범죄 예방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도움이 된 판례와 제도들도 누군가가 이런 마음으로 남겨 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희생당하지 않는 사랑의 나라에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포기한 생명에 대해 언제까지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 때처럼 마음속으로 작은 돌을 하나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