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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쉼터, 새로운 함께 살기를 찾아서
  • 수수 |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활동가

열림터는 24년 9월로 서른 살이 된다. 활동가들은 23년 내내 열림터의 30주년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 회의했다. 삼십이라는 숫자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할까? 그런 마음을 알아주듯 한 운영위원이 "30주년을 맞아 열림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같이 회의에 참여하던 다른 운영위원이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5와 0으로 끝나면 뭐든 해야 해요. 하고 싶은 말이 없어도 해야 해요." 그 대답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그렇다. 5와 0이란 숫자에는 뭔가 크나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 흘러간 세월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열림터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집이지만 집이 아닌 곳, 공동체이지만 공동체가 아닌 곳, 비밀이 아니지만 비밀인 곳

성폭력 피해자 쉼터라는 시스템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쉼터는 집이다. 이 집이 있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쉼터는 함께 사는 공간, 즉 공동체이다. 쉼터에서는 피해를 안고 나아가는 법을 함께 익힌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기에, 피해도 함께 다루면 조금 덜 무거울 수 있다. 나를 성추행 한 아버지를 벌주고 싶다는 얘기를 해도 누구도 패륜적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아버지가 너무나 싫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는 말을 해도 괜찮다. 쉼터에서는 그동안 숨겨왔던 성폭력이라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다. 사회가 침묵시키던 너와 나의 피해를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생존자이고, 이 공간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밀들은 잠들기 전 대화로, 문집으로, 즉흥연극으로, 자기방어훈련으로 터져 나온다. 원가정에서는 비난받았던 나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쉼터에서는 성폭력과 2차 피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쉼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쉼터는 집이 아니다. 모름지기 집이라면 내가 언제 떠나야 할지 불안하면 안 된다. 그러나 쉼터는 임시정거장일 뿐이다. 아무리 편하게 지내라고 해도 쉼터에 머무는 생활인들은 늘 불안하다. 쉼터는 공동체일 수 없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마음 맞는 너와 내가 같이 살기로 약속하고 모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피해와 저 피해를 입은 사람들, 요 경험과 그 경험을 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만났다. 쉼터에 정말 오고 싶지 않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온 경우도 많다. 친구를 만날 거라 잔뜩 기대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하나같이 안 맞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누구는 코를 골고, 누구는 자꾸 자다가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나랑 노래 취향이 정말 안 맞기도 한다. 뒷담화, 거짓말에도 민감해진다. 내가 싫어하는 향을 좋아하는 룸메이트, 자꾸만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는 옆 방 식구가 밉고 가끔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이기도 하다. 같이 살지만 쉼터의 사람들은 항상 사람 때문에 괴롭고 또 외롭다. 쉼터에서는 비밀이었던 성폭력을 마음껏 말해도 되지만, 쉼터는 비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 공간은 비밀쉼터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열림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은 '내가 쉼터에 있었던 시간'을 남들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을 토로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낙인, 가해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비밀은 답답한 일이다.

위에 열거한 쉼터의 의미와 한계는 누구보다 열림터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은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한다. A 생활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쉼터에 와서 다양한 음식도 먹어보고, 문화생활도 해봤어.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아.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잘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이런 규칙 때문에 내 삶이 통제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힘들어.' B 활동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열림터 생활인들과 함께 수다를 떨거나 서로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주의를 말하는 일은 정말 즐거워. 하지만 입소 기한이 끝나면 이 사람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 또 자기만의 규칙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열림터 규칙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 너무 고민돼.' 결국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고 만다. 지금의 쉼터 모델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사실에.

오래된 쉼터 모델을 넘어, 새로운 주거기반지원으로

사실 쉼터말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눈앞에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열림터 입소자 수는 점점 감소해왔다. 피해자들은 여러 이유로 쉼터 입소를 꺼린다. 야간 근무 때문에, 반려동물과 함께 입소할 수 없어서,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방을 써야 해서, 쉼터에 친구를 데려올 수 없어서. 입소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생활인들은 더 넓은 공간과 사생활을 누리고, 활동가들과의 집중적인 돌봄과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숫자가 곧 실적이 되는 현실에 이렇게 부족한 입소자 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가부 폐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선동하며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이미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예산을 삭감하는 중이다. 매해 시설평가 때마다 적은 입소인 수에 스스로 움츠러들면서, 열림터 활동가들도 '우리가 언젠가 문을 닫을 수 있겠구나...' 결연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을 닫더라도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닫을 것이고, 더 나은 방향을 열면서 닫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몇 년동안 대안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쉼터를 찾아다녔다. 생활인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쉼터,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되는 쉼터 등을 방문하면서 각각 실험의 성과와 아쉬운 점을 공유 받았다. 탈시설, 주거권 운동과 연대하기도 했다. '한국의 사회복지시설은 왜 다 공동생활을 전제로 할까?' '집을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 질문도 던져 보았다. 열림터가 1인 1실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느 토론회에서는 전국에 버려진 모텔을 수리하면 1인1실 거주시설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제안을 듣고 솔깃해하기도 했다. 심심하면 LH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다른 방식의 쉼터를 운영할 방안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열림터 활동가, 생활인, 또우리1들의 생각은 각각 다르다. 열림터가 쓸모없는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래된 쉼터 모델보다 더 나은 지원 방향이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지금 열림터는 쉼터가 아닌 주거를 기반으로 한 다른 지원 시스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양일지 모르지만.

쉼터가 최선이 아니라고 말하는 쉼터. 얼핏 모순적인 주장이지만 쉼터는 항상 모순적인 공간이었다. 서른 살을 맞은 쉼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막연하고 큰 질문이지만 사실 꼭 필요한 질문이다. 열림터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길을 찾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후원자 여러분, 언젠가 열림터가 새로운 벽돌기금 후원을 요청할지도 몰라요. 또 다른 집을 짓기 위해서요.

1 상담소와 열림터에서 쉼터에 머물렀던 전 생활인을 부르는 말. '또 만나요 우리'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