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만나서 친구가 되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엄마가 반대하셨지만, 평생 친구가 되기 위해서 고등학교가 인생에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설득했어요.
한때는 고사에 나오는 '종자기'* 같다고 생각했어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남편의 강간을 도우려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절친을 자처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차용증 없이도 돈을 빌리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했어요. 강간범(친구의 남편, 강간을 알고 나서는 강간범으로 불러요.)이 모르게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달라면 더 묻지 않고 회사에서 서류를 떼어가며,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빌려줬어요.
첫 번째 강간은 2012년 12월 첫째 토요일에 친구가 강간범 생일을 같이 축하하자며 초대했어요. 그때는 이미 강간범은 멀리하고 있었고, 친구도 한 달에 한 번 겨우 만나던 때였어요. 친구는 제 동생과 셋이 자신이 하는 다른 모임처럼 '계'라도 하자고 했어요.
동생과 함께 초대받아 친구의 집으로 갔어요. 제부가 송년 모임이 있어서 생일모임에는 못 왔지만, 회식이 끝나고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동생 집과 제 집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으니까요.
제부 전화가 왔을 때, 정확한 시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와 강간범이 술을 더 마시자고 잡았어요. 강간범이 택시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요. 제부가 술을 싫어했기 때문에 동생과 저는 그러자고 했어요. 연말이고, 생일이었으니까요. 술자리가 끝나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선물했던 벽시계를 봤어요. '3시구나' 하면서 친구의 집을 나왔어요.
강간범이 동생을 먼저 내려줬어요. 동생은 뭔가를 느낀 건지 워낙 집이 가까워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지만, "언니, 잠들지 마."라고 깜박 잠든 저를 깨우고 내렸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갔을 때 시계를 봤는데 3시 40분경이었어요. 10분 정도가 비었지만, 남편의 강간을 돕기 위해 친구가 술을 권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강간하기에 10분은 불가능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계획하고 생일 초대해서, 그랬을 리는 없다고, 그 정도로 쓰레기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 그 부부가 보여준 행태는 쓰레기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요. 친구가 결혼하고 10년 정도 남편 없이는 못 산다면서 강간범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죽으라는 말까지 했어요. 언제부터인가 그 말을 더이상 하지 않았지만요. 강간범이 성매매하는 걸 알고 같이 있는 술자리에서 화를 내기도 했지만, 강간범이 인상 한 번 쓰니까 친구의 분노는 금방 사라졌어요.
2차 성폭행이 있던 날에는 친구가 아침에 연락해서 강간범과 점심을 같이 먹어달라고 했어요. 점심을 먹은 후에는, 일주일 전에 친구가 제게 사 준 와인을 들먹이며, 제 집에 가서 술을 더 마시자고 했어요. 속으로 '치사하게 이러려고 와인을 사 준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집에 있는 나를 불러내서 세일하는 와인을 사 주겠다고 하더니, 같이 점심을 먹어달라고 하고요.
신고를 하고 나서는 혹시 나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친구가 강간범에게 "비싼 변호사 사서 유하 밟아줘"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믿어지지 않지만, 친구는 저를 짓밟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가해자의 범죄를 덮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성폭행 사건 재판은 강간범에게 불리한 판사와 검사를 피하며, 빠르게 상급법원으로 진행되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어요. 팔에 잡아끌어서 생긴 손가락 자국이 뚜렷한 사진이 있는데도요.
모든 걸 알고 있는 제 동생에게 물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냐고요. 제 동생이 "사람을 너무 믿었어."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어요. 강간범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친구까지 그럴 줄은 몰랐어요. 너무 화가 나기도 했고, 와인까지 사주며 성폭행을 도왔던 친구가 원망스러웠어요.
강간범들의 딸도 위험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간범이 사과한 카톡을 강간범들의 딸에게 카톡으로 보냈어요. 성폭력상담소 링크와 함께요.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상담소를 모르니까요.
이 모든 사실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더 있을 테니까요. 성폭행은 재범률이 높은 범죄이고, 부인이 도와서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재범은 더 쉬울 테니까요.
많은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너무나 많은 범죄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네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많아서 방송이 안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생각하지 않지만, 신고한 후에는 더 힘들어져서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어요. 강간범 부부를 대신 만나며 도와주었던 동생도 힘들어하는 게 보이고요. 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그래도 여전히 힘이 되는 가족이 있어서 버티고 있지만, 남은 삶은 잘 살고 싶어요. 피해자가 아니라, 그냥 온전한 저로요.
* 종자기(鍾子期): 중국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당시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백아(伯牙)의 친구로서,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다고 한다. 그가 죽자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이해하여 주는 이가 없음을 한탄하여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