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5일 피해자는 친구들과 첫차 다닐 때까지 클럽에서 있기로 하고 같이 가방을 맡겼다. 이때 예상하는 이가 있을까? 가방을 두고 친구들과 연락도 끊긴 채 알 수 없는 지역에서 옷이 벗겨진 상태로 다음 날 눈을 뜨게 되는 상황. 기억과 통제가 자기를 이탈한 상태에서, 그 앞뒤에 일어난 성적 침해를 겪고,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태를 지난 후 피해자는 신고했다. 그리고 6년. 수사, 재판 과정에 규명과 처분을 구했던 피해자는 2023년 4월 27일 대한민국 법원 무죄 확정을 목도했다. "너무 억울해요" 대법원 앞에 선 피해자는 절규했다.

가해자는 주장한다. 클럽에서 성관계에 합의했고, 스킨십도 했다고. 피해자는 말한다. 클럽에서 친구를 찾아 이동하던 중 한 남성이 술을 마시자고 해서 한 잔을 마셨는데 그 후로 기억이 없다고. 피해자와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것은 누가 보증했을까? 가해자 친구들이다. 가해자와 함께 몸을 가누지 못하는 피해자를 끌고 차에 싣고, 차에서 모텔로 데려간 친구들 말이다. 가해자는 친구 A에게 전화로 말했다고 하는데, A에게 전화한 내역이 없다. A는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진술했지만, CCTV에는 그가 전화기로 통화하는 모습이 나온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것은 사실인가? 그것을 A가 들었다는 게 사실인가? 법원은 이를 규명하지 않고 가해자 주장을 인용한다.
피해자는 기억이 삭제된 시간에 가해자는 '합의'로 기억하는 언행을 피해자가 했다 치자. 그것은 합의인가? '합의'는 그런 상태에 명명되어도 되나.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있어 본 이들은 떠올려 보자. 혹은 잠에 빠져들어가는 누군가를 두고 놀던 자리를 떠올려 보자. 상대방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어떤 문장을 구사했다 해도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이어 하거나, 묻는 말에 엉뚱한 답을 하거나, 반대로 묻는 말에는 잘 답하지만,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면 "내일 기억 못 하겠군", "만취했네" 혹은 "잠꼬대구나" 판단한다. 그러나 많은 준강간 사건에서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패싱아웃', '블랙아웃'이라는 이름 붙여가며 행위자/가해자가 주장하는 "상대가 의사를 표명한 줄 '알았다'"(심신상실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고의성을 조각해 준다.
가해자로서는 피해자가 심신상실인 줄까지는 몰랐고 성관계에 합의하는 언행을 들었다고 치자. 그래서 스킨십도 했다고 치자. 그 후 친구에게 차 가져오라고 해서 태우는 장면을 보면 CCTV상 네 명의 남성이 고꾸라진 한 여성을 끌고 간다. 클럽 안에서는 심신상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 장면은 명백하다. 다음 날 눈 뜬 피해자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다. 가해자는 '술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택시 타고 이동하다가 왔다'고 한다. 피해자가 택시를 탔는지 자가용을 탔는지 기억 못 하는 상태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날의 CCTV를 피해자 측은 1심 재판이 끝난 이후에야 확인했다. 납치도 아니고 간음유인이라는 경찰의 혐의명을 검찰은 불기소했고, 법원은 재정신청도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거짓이 드러나는데도 거짓말 탐지기를 거부하는 가해자 주장을 받아들여 주었다. 가해자 측은 숙박업소 직원들에게 '사실확인서'라는 것을 받아왔는데, CCTV와도 전혀 다르게 적혀 있는 이 종이의 신빙성도 규명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녹음했다는 가해자의 말을 듣고도 초기에 이를 제출받아 확인하지 않고, 가해자가 멋대로 녹취록을 만들어와서 냈다가, 녹음파일이 사라졌다고 했다가, 통째로 녹음했다고 했다가, 기억이 잘못되고 실은 녹음을 껐다 켰다 했다고 말 바꾸는 식으로 결국 피해자가 자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눈 것처럼 주장을 펼치는데도 수사기관, 재판부는 이를 방치하고 인용한다. 2심에 이르러서야 녹음의 모두를, 침묵까지 표기하도록 요청해서 도착한 녹취록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피해자는 가해자의 물음에 30초 이상 침묵하거나 숨만 쉬는 등 아직 심신미약에서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었음을 알 수 있다.
검찰, 법원은 2017년 5월 5일 클럽에 들어간 이후 6일 숙박업소에서 나와 7일 신고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화간'으로 보는 렌즈를 장착한 것으로 보인다. 팔로 밀쳐내고 몸으로 저항하였지만, 강간을 당하려고 할 때, 성병이나 임신이라도 막기 위해 피해자가 '콘돔이라도 사용해라'고 했던 말은 그 증거로 포집된다. 카카오톡과 통화내역 등에 남긴 그 무수한 절박한 시간을 읽어내지 않은 채 '콘돔'이라는 단어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이탈되는지, 기망되는지, 피해자가 힘들게 제출한 모든 자료 속에서도 읽어내려고도 하지 않은 경찰, 검찰, 재판부는 남성중심적 강간 신화의 공범이고 보조자였다.
피해자 그리고 조력자인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오랜 시간 피해자를 대리한 피해자 변호사는 대법원 무죄 선고 이후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개최 토론회도 7월 4일 열렸다. 피해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릴레이 리포트에 생존자의 글을 썼다. 6년을 기다려 온 피해자의 글 한줄 한줄에는 지금 한국의 성폭력, 성적자기결정권, 성적 동의, 진술 신뢰성의 편향, 남성중심적 성문화와 수사 재판기관의 과제가 담겨있다.
누구도 타인의 신체를 허락 없이 수단화, 도구화할 순 없다.
폭행, 협박뿐 아니라 무력행사가 있건 없건,
적극적 동의가 없었다면 합의한 관계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그 동의는 효력이 없다.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제야 사회에 인식되기 시작했듯이
'동의 없는 강간' 또한 법과 사회에서 당연히 통용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결과에 순응할 수 없고, 순응하지도 않을 것이다.
피해로 인정받지 못한 그날의 일을 나는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까?
피해자라는 허울뿐인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할까?
혹시 성폭력의 판단기준이 '동의 없는 성적행위'였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까?
나는 아직도 그날 일어났던 일의 이름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