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젠더폭력과 참사, 부재한 인식과 정치적 책임
7월 대학 캠퍼스 안에서 한 대학생이 건물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단순 추락사가 아니라 같은 학교 또래 학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밀쳐져 추락하여 사망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젠더폭력 피해자 예방 및 지원을 주 업무로 하는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이 사건을 두고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프레임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 이건 학생 안전의 문제고 성폭력이지 여성폭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출석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정하겠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교육부와 해당 학교가 내놓은 대책은 CCTV 증설과 특정 단과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회성 성폭력 예방교육 뿐1이었다. 피해자 유가족은 사건 이후 학교 쪽에서 따로 연락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9월 여느 날과 같은 평일 저녁,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지하철 역무 노동자가 흉기에 찔렸다. 피해자는 화장실 내 설치되어있던 비상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는 피해자를 3년 가까이 스토킹한 입사 동기였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혐오범죄로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남성과 여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출석하여 "피해자가 여가부의 다양한 1366이나 그런 걸 통해서 다양한 상담, 주거나 법률지원을 받고 자기 자신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자신에 대해서 보호하는 조치를 훨씬 더 강화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피해자가 잘못해서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발언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여성가족부는 "피해자가 자신을 더 보호했다면이 아니라 사건 초기에 여가부 지원을 더 받았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10월 마지막째 주 토요일, 핼러윈을 기념하는 날.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제되어 전년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이태원으로 몰렸다. 지자체와 경찰은 많은 시민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안전 조치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경찰은 광화문 집회·시위 대응과 대통령실 경호 경비에 집중했다. 안전조치 없는 거리에서 결국 158명의 목숨이 사라졌다(이후 참사 생존자 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여론에 윤석열 대통령은 '염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
대학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고 사망한 사건에 대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초기에 학생 안전 문제이고 성폭력이지 여성폭력은 아니라고 말했다. 신당역 여성노동자 사망사건을 두고는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잇달아 발생한 젠더폭력이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에게 발생한 참담하고 비극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인식, 그저 성폭력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으로 젠더폭력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다해진다는 메시지가 여성 정책의 총괄, 조정역할을 지닌 전담부처 장관을 통해 발설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 주요 정책 공약처럼 제시해왔다.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이 실용적인 관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말로 이어졌다. 성평등, 성차별, 젠더폭력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 책임이 물어지는 방식으로, 실용적인 서비스 차원의 문제로 위치지어졌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5명 전원이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며 당론 성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으로 발의되었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설치하고, 여성노동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이다. 여성정책의 총괄·조정 역할의 실종, 인간이 아니라 인구에 집중하는 사회,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는 더 불안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다
10.29 참사 이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지고 이상민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은 57%에 달했고, 시민 10명 7명은 참사의 책임이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정부에 있고, 그 중 대통령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 그러나 10.29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은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 용산경찰서장,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 용산구청장과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의 구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특별수사본부는 소방당국에 대한 구속영장도 검토 중이다. 정부의 정치적 책임이 부재한 자리에 소방,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의 과실에 따른 법적 책임만이 남은 꼴이다.
아이리스 메리언 영은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에서 '우리에게는 시민으로서 정치제도를 감시하고 그 제도 안에서 구조적 부정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집단적 책임이 있고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구조적 부정의와 관련된 정치적 책임은 영향력이 있고 특권을 가진 행위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도록 국가와 국제기구에 압력을 넣는 것이어야 하고, 구조적 부정의를 줄이거나 제거할 책임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서 져야 한다'고도 했다.3

끊이지 않는 젠더폭력과 시민의 삶, 안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에게 정치적 책임을 기대하기보다, 공유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는 시민들이 구조적 부정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많은 집단적 행동을 실천하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자. 성차별 해소를 위한 독립부처 마련이라는 국제사회 흐름과 성평등을 위해 우리사회가 쌓아온 역사적 성과가 후퇴되지 않도록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저지하는 행동에 함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1 인하대 성폭력 피해자 유족 첫 인터뷰 "우린 진심 어린 사과 못받아", 한겨레21, 박다해기자, 2022. 12. 22일자
2 '정치적 책임' 실종...위험에 방치된 나라, 경향신문, 박송이 기자, 2022.11.12.일자
3 10월 6일 한국여성학회는 여성살인사건에 대한 미온적 대응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기획에 이르기까지 성평등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했고, 12월 27일 진행된 〈여성가족부폐지에 반대하는 시민살롱: 지워도 지워도 안지워지지〉에서 예술사회학자 이라영님은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의 언어를 지적하며 '정치적 책임의 회복'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