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한국성폭력상담소에는 새 사람이 셋이나 들어왔답니다. 늘 바쁜 성문화운동팀의 인력 충원으로 함께하게 된 동은, 신설된 회원홍보팀에서 활동가로서 첫발을 디딘 산, 그리고 상담소의 살림살이를 꼼꼼하고 든든하게 챙겨줄 해. 세 사람이 둘러앉아, 동료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타코와 반미 샌드위치로 간단한 저녁상을 차리고, 활동가들의 질문이 적힌 쪽지를 한자리에 모아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열어보았습니다.
Q. 활동가란 무엇일까요?
산_ 란 글씨 같은데(웃음) 아, 다른 쪽지에도. '상담소는 모든 구성원을 활동가로 부릅니다. 각자 생각하시는 활동가의 자질, 태도 한 가지씩 뽑는다면 무엇일까요'.
해_ 제가 쓴 거 자진신고 할게요(웃음) 저도 비슷하게, '활동가라는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라고 질문했어요.
동은_ 그쵸, 활동가를 접하게 된 각자의 경험이 활동가란 무엇인지 정의하는 거랑 연결될 것 같아요.
산_ 으음 전 그냥 멋있어서…(웃음) 직함이 갖는 멋…?
동은_ 아, 액티비스트?(웃음)
산_ 전에 다른 기관에서 공익활동가 프로그램을 이수할 때, 거기서 활동가라고 불리는 분들을 처음 봤어요. 그때 그냥 오오~ 활동가~ 약간 이렇게(웃음) 저는 별로 막 크게, '활동가는 나한테 이런 거니까 그런 사람이 되겠어!'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하고 싶었어요.
해_ 저도 몰랐어요, 이 세계를. 그냥 뭐랄까, 밖에 나와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참 많고 넘치는구나. 그렇지만 나는 아니라고 되게 멀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러다가 지역에서 지내는 동안, 제 안에 어떤 것들을 자꾸 꿈틀거리게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활동가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웃음) 그냥 거길 떠나는 선택을 했거든요. 왜냐면 활동가가 하는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보이니까, 처우나 그런 걸 떠나서 그냥 마음을 많이 써야 하잖아요. 근데 잘 안되거나 했을 때 느끼는 패배감이나 좌절감을 더 크게 느낄 것 같다는 저만의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모집 공고 하나를 보여줬어요, (상담소에서) 호랑이처럼 활동할 활동가를 찾는다고. 그래서 (이력서를) 넣었는데 덜컥 된 거예요.
산_ 해한테 공감하는 게, 저는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서 동물권 단체를 생각한 적도 있는데요. 막상 그 분야에서 일하면 제가 맨날 울 것 같은 거예요. 못 견딜 것 같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 보면, (활동가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맞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동은_ '활동가가 무엇일까' 이게… 지금은 뭔가가 문제라는 걸 드러내는 사람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게 문제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문제의식을 공식적으로 모아서 어떻게 잘 드러낼까 고민하는 사람.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사실 어려워요.
해_ 이건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웃음)
Q.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산_ 저는 어렸을 때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명확히 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몰라서 그냥 웃고 넘기는 일이 많았어요. 무의식으로는 무례한 혐오 발언이라고 자각하는데 의식적으로 몰랐던 거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고심하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그 말이 왜 혐오 표현으로 다가왔는지. 그때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논리를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전에는 흘려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캐치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느끼는 것 같아요. 별로 거창하지는 않아요.
동은_ 전 '나 페미니스트야' 하고 자각하게 된 계기가 없는 것 같아요. 학교 세미나 들을 때 같이 공부하면서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고, 같이 사부작사부작 모여서 뭐가 문제야 얘기하고, 그런 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러면 '너 페미니스트야?' 이렇게 물어보는데, 그게 약간 공격하는 말이잖아요. 그 말에 더 쉽게 '어!'할 수 있게 된 거?
해_ 이게 시기별로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학교를 다녔던 때에는 전혀, 이런 감각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 상태로 지내왔던 시간이 길었다보니까, 나중에 이런저런 사건이 생겼을 때 이게 문제라는 걸 인지하는 게 늦었어요. 저는 이민경 작가님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라는 책을 18~19년도에 보았는데, 그동안 제가 느꼈던 답답함이 다 쓰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눈이 뜨인 순간들이 기억나는데, 동은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동은_ 확실히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공적으로 얘기되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가, 이제 막 다시 얘기되는 시기에 학교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Q. 1년, 5년,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해_ 학자금 대출을 다 턴다(웃음) 가까운 1~2년 내의 목표는 이렇고, 5년까지는 아직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조금 기대해보자면, 한 5년 정도 됐을 때에는 개인적으로 묵혀뒀던 경험들을 해소하고 털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마음 수선을 열심히 해보면 나름 단단한, 활동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살짝은 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10년은 굉장히 먼 미래라서 그려지지가 않아요.
산_ 저는 활동가가 되는 게 몇 년간의 목표였기 때문에, 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지금 이 상태라면 1년 후에도, 5년,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일할 것 같고. 그 시간 동안 제가 어떤 경험을 해서 어떤 인생을 설계할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요. 커리어 측면이 아니고 개인의 모습 정도로 물어보시는 거라면… 그냥 좀 더 당차지지 않을까요. 당차고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해_ 맞아요, 무뎌지는 것 말고 당차지고 싶은 거예요.
Q. 앞으로 상담소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나요?
해_ 초년생의 경우에는 힘이 들어가서 잘 해내고 싶고, 기대를 하게 되잖아요. 근데 사실 내가 그때그때 부딪혀 나가면서 경험하는 거고, 내가 품은 기대에 사람들이 꼭 들어맞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전 기대하기보단, 서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잘 맞춰 지내보면 좋겠어요. 다른 회사에 비해 서로 훨씬 존중하는 모습이 되게 좋은데 잘 유지되면 좋을 것 같아요.
산_ 저도 희망 사항이라고 얘기하면, 이제 3개월 막 넘겨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담소의 이 구성원과 분위기가 엄청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 구성이 평생 갈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 들고나고, 분위기와 규칙도 따라서 달라질 테고. 그래서 그냥,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희망 사항을 물어본다면 지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정도?
동은_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생각해봤는데, 현 정권을 상담소와 함께 보내게 되어서 다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공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주했다면 더 막막하고 불안했을 텐데, 앞으로의 시간을 서로 잘 돌보고 또 단단해지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상담소에 출근한 첫날을 떠올리며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분량상 함께 나눈 모든 이야기를 싣지는 못했지만, 솔직하게 마주 앉아 서로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요. 성폭력 없는 세상을 향한 상담소의 여정에 합류한 세 사람을 응원해 주세요!
1 성문화운동팀 소속 6년차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