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성폭력 사건 피고인의 방어권 악용과 가려진 피해자의 권리
  • 도경 | 한국성폭력상담소 상근변호사
피고인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여 피해자를 새로운 위협에 내모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로서, 피해자의 지위가 재정립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봅니다.

지난 2월 8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의 공동주최로 시리즈 집담회 2차 <성폭력 피고인의 방어권 악용, 이대로 괜찮은가?>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리즈 집담회는 최근 성폭력 사건의 법적 해결 과정에서 나타나는 백래시를 다루기 위해 기획된 집담회로 총 2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요. 작년 12월에 진행되었던 1차 집담회에서는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진료기록 등을 제출해야 하고 나아가 정신감정 등 추가적인 감정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고, 이번 2차 집담회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2차 가해들과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발제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 활동가가 '성폭력 수사 재판 자료의 피고인 활용 전략, 실태와 문제점'을 주제로, 피고인들이 재판과정에서 입수한 피해자의 사적 자료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유출한 실제 사례들을 공유했습니다. 다음 발제로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 피해자 국선전담 변호사 조현주 변호사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피해자의 열람등사권 제한, 현실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형사절차에서의 피해자의 지위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관마다 상이한 피해자의 열람등사 신청 절차와 근거 규정을 일원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이어지는 토론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홍진영 교수의 '피고인의 성폭력 수사 재판 자료 활용의 법적 한계'를 주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피고인 방어권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악용과 남용에 대해 신중한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운을 떼면서도, 현행 법령이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개인정보에 대한 비공개 조치의 사유가 지나치게 좁은 점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피고인 측의 열람·복사 신청에 대해 법원은 서류 단위가 아닌 정보 단위로 판단할 것, 피해자 측에 제한 여부에 관한 진술 기회를 주는 절차 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어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이 '법적 권리로서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여권 보장,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범죄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피해자가 정작 형사사법절차에서 주체로 대우받지 못하는 점을 꼬집으며, 피해자를 형사사법절차 과정 및 결과의 이해관계자로서 마땅히 권리를 향유할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적 근거와 국제사회의 동향을 공유하고, "보호와 시혜" 수준에 머물러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제안하였습니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작년 말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조금은 익숙해진 개념일 듯합니다. 간첩 조작 사건 등 수많은 사법 피해자가 있었던 한국의 형사재판제도에서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 피고인의 방어권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하여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의 피고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유독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해결 과정에서, 성차별적 구조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결합한 피고인의 방어권이 스스로의 방어가 아닌 피해자를 향한 무기로 휘둘러지는 상황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를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언론 등에 공개하여 피해자를 공격하기도 하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과거의 의료기록들을 가지고 현재의 피해를 부정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피해자를 비난하고 신뢰도를 떨어트리려는 가해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명백히 '방어'의 영역을 넘어선 피해자를 향한 공격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심각한 2차 피해를 받게 됩니다. 토론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은 미비한 상태인데, 이번 집담회를 계기로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한편 성폭력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신체적 외상, 범죄사실이 드러나는 문서 등)가 존재하기 어려운 범죄 자체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이 주요한 증거가 되고, 때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에 따라 판결의 유/무죄 여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자는 자신을 향한 가해자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에게도 수사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어떤 주장들을 하는지 확인할 방법과 충분한 발언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성폭력 사건의 법적 해결 절차는 단순히 공정한 재판을 통해 피고인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뿐 아니라(물론 이마저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궁극적으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법적 해결 과정이 2차 피해를 생산해내는 절차가 아니라 주체적인 회복을 위한 과정이 되기 위해, 피해자는 누구보다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 재판절차에서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아야만 합니다.

패널분들이 자료집에 담아주신 알차고 훌륭한 논의를 토대로, 앞으로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 운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읽고 계신 여러분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