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나는 요즘, 사랑하는 공동체에서 잠시 떠나 독립하는 과정을 찾고 나아가고 있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나에게 세상은 성폭력으로 보이는 세상이기 때문에 다시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크다. 그래서 난 내 상처를 세상에 꺼내놓고 싶어졌다. 세상이 내 상처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면 나에게 세상도 조금 더 안전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두렵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의 난 내 기억을 정리하고, 내 삶을 정리해보려고 하고 있다.
한 수도 공동체에서 내 꿈을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 2년이 넘는 시간을 지냈다. 공동체와 함께 살면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나의 내면을 잘 만나고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공동체에 들어가기 전 사회에서 나는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으로 일을 했다. 많은 내담자를 만나면서 내 가정이 얼마나 병들어있는 것인지 만나서 상담도 하고 면담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했고, 괜찮아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도 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눈물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눈물이 나니까 실컷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마음은 무거워지고, 해소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아직도 충분히 울었다! 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계속 울었다. 책을 보고 난 후 잠시 일을 하고 있던 순간 기억이 밀려왔다. 어? 이건 나에게 있었던 기억인데, 동생이 왜 내 몸을 만지지? 왜 사촌오빠가 나오지? 이게 뭐지. 이게 뭐길래 이렇게 혼란스럽고 심장이 빠르게 뛰지?
함께 동반해주시는 분께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분께 들은 대답은 '근친상간'이었다. 아. 이게 근친상간이라고? 나는 그날 떠오르는 기억과 밀려오는 감정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인지 진짜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매일이 지옥같았다. 이런 지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 하느님은 배신자로 느껴졌다. 함께 살고있는 분들이 다 미워보였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조그만한 기억은 새로운 기억들을 계속 떠오르게 했고, 그 기억 속 가해자가 아빠라는 걸 알았다. 기억이 너무 힘들고, 가족이 너무 좋았던 나는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로 기억을 저 바닥까지 숨겨놨고 기억하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로 기억을 했던 것이다. 죽어도 아빠가 나에게 그렇게 했을 리는 없어, 라고 말하고 싶었던까. 어쨌든 기억을 찾는 과정을 돌아보면 아빠가 그랬다.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난 내 꿈을 위해서, 또 정말 더 큰 꿈을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이 삶이 그 기억과 상처로 인해 뭉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고 이게 도대체 왜 나한테 있었던 일이냐고 원망도 하고, 내가 너무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부정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나만 더 힘들어져서 누군가에게 계속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했다. 그리고 계속 표현을 하라고 옆에서 도와주셨다.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들,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하면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화를 내고, 울고, 가해자를 탓했다. 난 믿을 수가 없는데 나보다 더 믿어주셨다. 지옥 같은 시간에 자그마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을 보기 시작한 그 순간 많은 기억들을 만났다. 나아지려고 할 때마다 기억이 찾아와 나를 흔들었다. 참 많이 아팠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성폭력을 했다. 이 말을 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내 방에서, 거실에서, 부엌에서, 욕실에서. 기억 속 나는 인형같이 보였다. 아무 힘이 없고, 흐물흐물거리는 나는 그 순간마다 모든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안간힘은 성폭력이 끝난 이후에도 항상 내 삶에서 나를 살려주는 방법과 같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성폭력을 떠오를 땐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그 감각을 느끼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고, 미워지니 다시 누르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피하면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안다. 또 안간힘을 쓰면서 세상을 사니까. 나만 피곤하지. 그래서 나는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을 해보려고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분들이 함께 도와주셔서 느끼고 표현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그 시간을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함께 사는 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원가족처럼 보이긴 했지만. 더 관계를 잘 맺어보려고 애를 썼다. 참 많이 썼다.
친족성폭력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성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권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가족에 대해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권위로 밀렸고, 그 권위에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는 폭력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셨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어머니는 가정을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두 나르시시즘의 싸움으로 나와 동생은 늘 새우등 터지듯이 온갖 욕과 폭력과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성폭력까지. 나의 세상은 폭력이 전부였고. 폭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두 분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은 '옆집도 다 이러고 산다.'였으니까.
어린아이가 세뇌를 당하면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자녀들을 도구로 여기는 대상이 늘 옆에 있으면 벗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워서 그 가정 안에 고립되게 되고 부모들이 하는 행동을 합리화 하게 된다. 나는 참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살고, 늘 함께 있지 않으려고 했지만, 폭력을 합리화 했기 때문에 내 기억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신없이 1년을 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분명한 건 희미했던 것들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아주 작은 빛이었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고 느꼈다. 공동체와 함께 사는 것이 좋았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의 상처를 꺼내놓아도 안전했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함께 들어주시고 울어주셨다. 살면서 가족들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공동체에서 많이 받았다. 조금씩 그런 사랑을 느끼면서 그 가족들이 얼마나 이상하고 잘못했는가도 알았다. 나는 정말 학대의 중심에서 살았구나, 그것도 나에겐 참 큰 아픔이기도 했지만 내가 벗어났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 과정을 열심히 지나와 나는 나에게 좀 더 집중하고 나를 정면으로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공동체는 함께 사는 곳이다 보니 그것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혼자서 내 상처도 다시 보고, 세상에 나가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좀 더 나를 위해 살아보고 나면 공동체와 함께 사는 것이 더 기쁘고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아직도 성폭력으로 보였고, 남자가 무섭고, 길을 걸을 때마다 긴장이 되었고, 가끔은 숨을 쉬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고, 캄캄한 시간에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 이것이 나의 후유증이구나. 많은 것들이 나에게 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 화가 났고, 속상했고, 억울했다. 잘 지내고 싶었는데 늪과 같은 어둠이 다시 나에게로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의 나를 보면서 나는 다시 우울해져버렸다.
성폭력 때문에! 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많은 순간은 그놈의 성폭력이 지배했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가 많이 보였다. 공동체 바깥으로 나와서 가장 많이 만난 나는 그런 모습의 나였다. 가족도 뭣도 없는 난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공동체가 너무 그리웠고, 다시 함께 하고 싶었다. 나온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간다는 것은 참 염치가 없다고 느꼈다.
내 마음은 더 깊이 우울로 빠져버렸고, 나는 온갖 공포 속에 빠져있었다. 그 마음을 어쩔 줄을 몰라 혼자 버티려고 했다. 성폭력을 혼자서 감당했던 것처럼. 혼자서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면 나는 다시 성폭력으로 빠져들어간다. 빠져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오고 싶지 않았고 나는 다시 꽁꽁 숨으려 했다. 그렇게 도망가려고 할 때 공동체는 나를 다시 잡아주었다. 나와 함께 해줬고, 나는 다시 마음을 잡았다. 기억을 만나자. 기억을 정리하자. 그 기억과 마주하자.
기억을 마주하면서 그리고 성폭력으로 인해 흔들린 내 모습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아픔이었다.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도 그 집에서는 무서워서 말하지 못했고, 아프다고 말하면 나를 버릴까봐 겁이 나서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에서 수없이 아프다고 말하는데 그 아프다는 말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받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받아주기만을 바랐다. 다른 사람이 받아줄 수 있겠지만, 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아픈 것은 곪을 것이고 곪는 것이 터져버리면 내가 나를 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버리는 것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제멋대로 가지고 논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다.
쉽지 않은 여정일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상처를 상처로 보기가 어렵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성폭력은 그런 부분을 더 자극시킨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이 성폭력으로 지배되는 것은 더욱 싫다. 나는 나이고 상처는 상처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흠이 아니다. 상처를 다듬어 가는 시간 속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의 나는 용기가 있고, 힘이 있고, 누구보다 나를 믿고 나와 함께 하는 분들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다시 자신의 싹을 틔우려고 힘을 내고 있고, 나는 그 분들의 과정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그분들과 연대해서 이 과정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분들과 함께 이 과정을 나아가고 싶다. 나의 방식으로.
내가 확신에 차 있을 때 그 상처는 더러운 것이 아니고 나무의 나이테로 보인다. 더 큰 성장을 위한 나이테. 우리는 그 상처를 마주할 때, 더 큰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에 큰 소리를, 이 시간을 통해 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더 나은 내가 되리라 믿는다. 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