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올해 2월 한국성폭력상담소 임시총회가 열렸습니다. 안건은 총 3가지였습니다.
(보고)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원 정보 유출, 전달에 대한 중간평가 및 설명(안)
(논의1) 반성폭력운동단체로서 상담소 운동의 원칙 및 실행방안 모색(안) 승인의 건
(논의2) 회원 처분의 건
기록에 따르면, 상담소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했던 것은 총 3차례였습니다. 첫 번째는 2002년 10월 11일 소장(이미경님), 부소장(장윤경님)을 선출하는 안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2008년 4월 8일 여악여락 3회 콘서트를 열며 모금을 하기 위해 정관에 기부금 인터넷 공개 의무를 명시하는 안건이었습니다.
그에 이어 2021년, 역사상 세 번째 임시총회 개최를 의결하게 된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2020년 7월, 상담소뿐 아니라 진보적 여성운동단체, 시민사회, 많은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며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성폭력이 제기됐습니다. 상담소는 2020년 7월 9일부터 현재까지 한국여성의전화와 공동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개 단체만이 아니라 이 사안의 정치적 특성을 고려하여 보다 영향력 있는 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피해자 지원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박 전 시장과 관련된 미투 사안이라는 점과 어느 단체가 어느 변호사를 언제 만난다는 점이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상임대표를 통해 현직 국회의원에게 전달되었고, 곧바로 서울시 젠더정책특별보좌관에게 전달되었으며, 젠더특보가 해당 내용을 박 전 시장에게 전달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두 피해자 지원단체는 피의자가 사망하고, 공소권이 없어지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범람하게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성폭력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규명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위와 같은 사실은 공개를 미뤄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0일 검찰 발표로 이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여성운동단체 관련인들이 피해자 지원 관련 정보를 피의자에게 전달한 사건은 여성운동의 현재를 진단하게 합니다. 사건 발생 후 진실규명을 통해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2021년 1월 정기총회를 계속 기다려왔습니다. 적어도, 다음 총회에서는 우리 단체도 해당 사안에 대해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담소는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단체로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총회에서 해당 사안을 다루도록 2020년부터 10차례 가까운 회의에 참여하며 제안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담소 총회에서도 다루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상담소 상근활동가들은 2021년 1월부터 수도 없이 많은 회의를 하며, 피해자 지원 관련 정보를 성폭력 문제제기 대상자이자 피의자에게 전달한 여성운동가와 여성운동 출신의 정치인, 관료에게도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논의했습니다. 현재는 정치인인데 여성운동단체에서 어떤 '공식적' 관계가 있냐는 질문이 있었지만, 시민들에게는 '여성운동'으로 연결된 책임을 공유한 세력일 것이므로 우리 안에서 '형식적', '공식적' 관계가 없다는 답변은 의미가 없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또한, 정관에는 제명 밖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데 제명이라는 방식이 책임 논의를 잘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제명 말고 다른 대안이 더 있어야 하며, 책임을 논의하기 전에 다양한 여성운동 구성원들(후원자, 회원, 활동가, 자문/전문위원, 임원, 대표 등)이 어떤 관계 및 직업윤리로 연결되거나 협업해야 하는지 명확한 인식과 가이드가 향후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상근활동가 회의에서는 피해자 지원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등 피해자를 위한 사건의 진실규명을 1순위 과제로 두면서 해당 사안의 공개를 미뤄왔는데, 그러한 판단이 옳았는지 내부토론이 날카롭게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중간평가를 문서로 작성하고 회원들에게 보고하고자 준비하며, 문구 하나하나를 두고 토론하는 시간이 연일 이어졌습니다. 관련된 보고 및 논의 안건들을 1월 29일 정기총회에서 다루고자 했지만, 해당 안건들이 12월에 이미 공고된 총회 안건제안에는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 총회를 공고하고 개최해야 한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논의를 함께 했던 이사회는 임시총회 개최를 의결했습니다.
그동안의 임시총회들과도 다르고, 그동안의 모든 총회와도 비할 수 없이 무겁고 아픈 안건이었습니다. 임시총회 공고를 보고 후원회원, 정회원들도 괴로운 마음이셨을 줄 압니다. 임시총회 개최 공고 이후 회원들에게 전체 연락을 드리고, 긴 통화를 하고, 구글 설문지를 통해 무기명 의견을 사전에 받고, 필요시 따로 만나서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함께 평가하고 논의하고 방향을 짚어가기 위해 '총회'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다뤄야 할 사안임을 말씀드리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임시총회는 3시간 동안 진행된, 긴장되고, 열띤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30초도 걸리지 않던 회의안건 채택과 결정에만 4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사건 평가와 중간보고를 하는 안건 1, 향후 상담소의 피해자 지원 방향을 수립·계획하는 안건 2, 회원 처분은 못 하게 된 상황을 공유하고 상담소 회원이라는 관계로서 관련 여성운동 출신가들의 책임 논의를 하고자 했던 안건 3. 여러 의견들이 묵직하게, 수많은 감정을 담아 발언되었습니다.
진보적 시민사회 출신의 남성 정치인이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되고, 곳곳에서 말하고 또 말하기 시작하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성평등한 일상의 변화가 왜 이렇게 무수한 돌부리에 계속 걸려 넘어지는지, 우리가 스스로 딛고 있던 땅이 갈라지는 모습을 목격하며 반성폭력 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보게 되는 2020년과 2021년이었습니다.
임시총회 이후 그 여파와 상흔으로 탈퇴하는 회원들도 계셨습니다. 그 또한 직면하고 논의하겠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했던 목적과 목표,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소명은 무엇일까요? 여성운동가, 성평등을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성폭력 사건을 피해자가 고발한 지 1년, 조직 내 문제해결과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든든히 지원하면서, 여성운동과 우리 조직 내부에도 남은 이 과제를 계속 고민하며 회원들과 함께 모색해가겠습니다.
임시총회의 자료와 의사록은 상담소 홈페이지 발간자료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