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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2024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릴레이 ‘정치 에세이’ 여섯번째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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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정치 에세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선거를 앞두고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 속에서 길어올린 우리가 바라는 가치, 정책, 정치에 대한 글입니다.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의 존엄한 삶을 원해🐖

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콩깍지 프로젝트)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닙니다.”


국정농단 시위, 스포츠계 미투 운동에 나선 이들은 외친다. 지위와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양은 ‘개, 돼지’라고, 우리는 그런 ‘개, 돼지’가 아니라고.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동물화에 맞서면서 자신들이 인간임을 주장해야 하는 절박한 욕구가 있다. 실제로 그런 외침으로 인간다움에 한 발짝 가까운 사회를 이뤄냈다. 나는 여기에 더해 ‘개, 돼지’의 자리에 남겨진 동물에 대해 함께 성찰해볼 것을 권한다. 


일석이조. 하나의 돌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사자성어다. 적은 힘으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가성비가 좋다’와 같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매년 3월 3일은 삼삼데이이다. ‘3’월 ‘3’일엔 ‘삼’겹살 먹는 날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형 온·오프라인 쇼핑몰은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몰려들 인파에 대비해 평균 기준 3배 넘는 수량을 준비한다. 동물권행동 카라에 의하면 2003년 구제역과 살처분으로 경제적 손해를 본 축협에서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고자 이 ‘기념일’을 만들었다. 3월 3일은 세계야생동식물의 날이기도 하다. 삼삼데이라는 먹거리 소비를 장려하는 전국적인 이벤트에 야생동식물의 삶은 묻히고 지워진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사자성어와 기념일의 뒷편에 동물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인간의 언어가 간접적이고 알게 모르게 동물을 차별한다면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곳이 있다. 바로 축산업이다. 동물이 농장에 갇히게 되면서 동물을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퍼지고 지배와 폭력이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을 마트에 진열된 물건 정도로 취급한다. 오직 대량 생산만이 목적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분리되어 울어도, 마취없이 부리와 꼬리가 잘리고 거세되어 피가 철철 나도 그 고통을 오롯이 겪어야 한다. 병에 걸려도 치료해주지 않아 방치된 채 죽는다. 약물과 항생제로 버티는 다른 동물들은 동료의 사체와 분변에 노출되어 바이러스에 취약해진다. 비위생적인 환경때문에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에 걸려도 모두 살처분당한다. 그 중 몇 명만 감염되어도 인수공통감염병 예방과 방역을 이유로 남김없이 죽는다. 살아있는 동안 그들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람 손에 태어나고 사람 손에 죽는다. 



국내 최초 생추어리(동물이 가능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새벽이 생추어리’ⓒ새벽이생추어리

 

 

돼지와 소를 식탁 위의 고기로만 봤지, 살아있고 느끼는 존재로 만난 적이 있었던가 경각심이 들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는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이상 살아있지 않은 것이다. 동물은 살아있다. 숨을 쉬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느끼고, 발과 다리로 이동하고, 아프면 도망치고 싶고, 무서우면 덜덜 떠는 살아있는 존재다. 

 

그릇 속의 제육볶음, A++ 등급의 한우가 아닌 행복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는 구체적인 얼굴들이다. 폭력과 죽음을 가리우는 언어와 구조를 살펴보고 다르게 쌓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