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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후기] 성평등 없이 기후정의 없다! 919 기후정의행진 후기
  • 2026-10-01
  • 84

성평등 없이 기후정의 없다! 


올해는 919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두 차례의 피켓 만들기 사전 워크숍을 진행했고, 그 피켓을 들고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워크숍의 이야기는 활동가가 전하고, 행진 당일의 장면은 자원활동가 세민님의 글로 전해보려 합니다.


세민님은 워크숍에 함께했지만, 행진 당일에는 행진단이 <한줌단> 분들과 함께 걸었으셨는데요.  상담소의 일원이기도 한 자원활동가 세민님이 이 행진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흥미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매번 갔다온 활동가의 글은 지루할 수 있으니 호호호...) 그 이야기를 세민님의 글로 나눕니다.    


상담소는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를 시작으로, 기후정의 행진이 이어져 온 2022년부터 지금까지 연대해오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서 누군가는 반성폭력운동과 기후위기가 어떤 상관인지 묻곤하는데요.

 

2023년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에서 ‘가부장제 자본주의’ 구조의 무분별한 착취가 기후위기를 이끌었으며, 주류 남성이 아닌 사람들과 비인간종을 소회하고 배제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압니다. 기후위기는 생태계의 위협이지만, 현실에서는 재난으로 나타난다는 것을요.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자원, 접근성, 사회문화적 규범은 집단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돌봄 책임, 의복 관습, 경제적 제약 등으로 인해 여성의 피해자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분석은 우리는 압니다. 또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염 속 온열질환,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노동자 사례 처럼 기후위기는 취약한 집단의 일상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재난을 예측하고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재난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기술 발전을 넘어 주거, 에너지, 의료, 돌봄 등 삶의 기본을 지탱하는 사회서비스 영역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 정부는 이번 기후정의행진의 슬로건은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입니다. 포스터엔 불타는 이미지에 3대메가프로젝트가 적혀있습니다.  AI 시대를 내세우며 환경을 파괴하며 자원을 사용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속도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산업 육성에 앞서 인권 침해와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여성과 시민사회 개입없이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은 문제 해결의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기술과 자본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맞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 묻고 구조적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반성폭력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은 맞닿아 있습니다.  



2025년 927 기후정의행진 당시 모습


피켓 만들기 사전 워크숍 

매년 기후정의 행진에 함여 할 때 마다 상담소는 우리의 우리의 마음을 담은 피켓을 손수 만들기도 했는데요. 행진 당일에 다른 분들이 손수 만든 수달 모자, 새 모자, 나무 옷 같을 걸 보면 멋있고 재밌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시선이 더 가기도 하고요. 사실 상담소의 의제로는 그런 것들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상담소 자원활동가 중 세민님이 <똑딱수선클럽> 이라는 모임을 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양한 것에 손바느질을 하는 활동인데요. 그래서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할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피켓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똑딱수선클럽과 함께하는 두 번의 워크숍에서, 버려질 뻔한 천과 재료로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요구를 담아보았습니다. 


먼저 활동가들에게 남는 천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는데, 몇몇 활동가가 상태가 아주 온전한 천을 가져다주셨어요. 천을 모으면서 '아, 이렇게 쓰이지 않는 천이 많구나' 하고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천


드디어! 피켓만들기 첫날이 되었어요. 드디어 피켓 만들기 첫날이 되었어요. 원래 바느질을 할 줄 아는 분, 실 꿰는 것부터 천천히 배우시는 분...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와주셨답니다.



세민 님이 가져와주신 다양한 컬러의 실




우리는 어떤 의제를 피켓에 담아볼까 고민했어요!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문구를 찾다가 '성평등 없이 기후정의 없다!'로 정했습니다. 상담소의 활동과도, 기후정의행진에 나가는 상담소와도 딱 맞는 슬로건입니다. 


한 명 한 명 어떤 글자를 맡을지 선택했습니다. 자음, 모음, 천을 이것저것 잘라 보며 글자도 맞춰 보았어요. 처음엔 이걸 다 바느질할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하다 보니 글자가 하나씩 단단히 고정되어 갈 때의 쾌감이 있었어요.



글자도 고르고, 천도 고르고... 


열심히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2회차에 걸친 워크숍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성평등 없이 기후정의 없다! (멍멍!)



917 당일 - 사전행사


사전행사에는 다양한 부스도 차려지고, 편하게 둘어볼 수 있는데요. '강간죄 개정을 외치는 대학 내 페미니스트 기획단'(aka 강동심)과 함께 종이 부채를 나눠드렸다고 합니다. 강동심 기획단 분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내용까지 만든 종이 부채였는데요, 준비한 수량이 단 300개뿐이라 다 나갈까 걱정했는데, 아직 날이 더워서인지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받아 가시고, 부채에 적힌 글들도 꼼꼼히 읽어주셨다고 합니다. 

기후정의 외치며 착취와 폭력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강간죄 개정도 알아보고, 더위도 날렸다! 


본행사 - 뜨거운 날 길 위의 친구들(자원활동가 세민)


몇 시간 전만 해도 말쑥하던 애들이 죄다 꼬질해졌다. 먼지가 들러붙은 옷, 땀으로 범벅된 얼굴, 바닥을 보이는 생수병 같은 걸 이고 지고 도로를 걸었다. 원래는 차들이 달리지만 오늘만큼은 인간의 길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기후정의행진 날이기 때문이다. 9월 19일 시청역 일대에서 열린 이번 기후정의행진 주제는 3대 메가 프로젝트 중단이다. 


해가 가장 높이 뜬 때, 서울광장에서 애들과 합류했다. 이 친구들로 말하자면 ‘한줌단’으로, 학내에서 환경과 인권을 외치는 몇 안 되는 동료들이다. 학교에서 우리의 존재감은 대체로 미미한데, 오늘 같은 날엔 함께 부스 돌며 한쪽 팔목에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도장 찍고 반대쪽 손목에 ‘Love Wins’ 스티커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든든하다.


이어진 본집회에선 잦아진 기후재난에 농사를 이어나가기 힘들어진 농민이, 폭염에도 작업중지권을 쉬이 보장받기 어려운 이주노동자가, 턱없이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실망한 청소년이 무대에 올랐다.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시행하면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해진다.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곳곳에 발전소를 지으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고, 재생에너지 전환은 요원해진다. 폭주를 멈추지 않는 사이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만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기본권을 가장 먼저 갉아먹을 것이다. 


몰랐던, 혹은 알았음에도 깊이 관심 갖지 않았던 이야기를 당사자의 입으로 듣게 된 순간에는 조금 부끄러워지고 여러 번 다짐하게 된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겠다고, 무언가를 얻기는커녕 계속 잃기만 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기후’라거나 ‘전환’이란 말은 관념이 아닌 누군가의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란 걸.


행진이 시작되자 모두가 챙겨 온 피켓이 잘 보이게끔 어깨죽지까지 들었다. 우리가 든 피켓에도 ‘같이 살자 기후정의’, ‘탈성장은 퇴보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사양’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걷다 보면 거점이 차례로 나왔다. 농민, 먹거리 기본권 거점에서는 농민들과 눈을 맞췄다. 생태적 전환 거점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활동가들과 인사했고, 집단학살 종식 거점에서는 전쟁 범죄자들에게 콩주머니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광장에선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바닥에 누웠다.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뻗은 팔과 목이 따끔거렸다. 희미한 배기음, 행인들의 웅성거림, 카메라 플래시. 그 모든 소리가 귓속으로 줄줄이 입장하는 동안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다이인이 끝나고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높이 솟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깃발이 보였다. 


보라색 깃발 아래 주황빛 현수막은 상담소에서 2주에 걸쳐 직접 만든 것이다. 문구는 ‘성평등 없이! 기후정의 없다’로, 느낌표까지 총 열두 글자다. 여섯 명이 각각 두 개씩 맡으니 꼭 맞았다. 천 무더기에서 마음에 드는 색을 찾고, 요리조리 배치하며 한 땀씩 꿰매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삐뚜름한 글자, 모음에 비해 자음이 지나치게 큰 글자,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촘촘히 바느질된 글자… 만든 이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엉성하게 이어진 글자들을 꽉 붙잡고 행진에서 우리는 전쟁과 개발, 죽음과 눈물에 관해, 그보다 더 많이 사랑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람의 곡 ‘뜨거운 날’에 나왔듯 “뜨거운 공장”을 필두로 가속화되는 “빠른 개발”을, 세계 곳곳의 “뜨거운 전쟁” 끝에 오는 “너무 많은 죽음”을 생각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며 끝날 기미 없는 비와 갈라지는 땅에 “집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다 보면 막막함이 해일처럼 밀려왔지만 고개를 들면 바로 옆에 앞에 뒤에 친구들이 있었다. 불타는 지구에서 뜨거운 미래를 예감하면서도 서로의 곁이 되고자 휴일을 반납하고 사서 고생하는 애들이 있었다. 목이 쉬어라 “사랑”과 “평화”를, “함께 사는 세상”을 외치는 사람들이 사방에 있었다. 


내게 사랑과 평화는 여전히 커다랗고 무거운 말이라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날만큼은 고뇌에 찬 친구들의 얼굴에서 이 단어들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행진 끝난 뒤의 만족스러운 뒤풀이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저녁 메뉴 정하는 피곤한 먹보들. 단식이 길어질수록 얼굴이 핼쑥해지는 소중한 한줌단. 몇 번이고 손 붙잡고 같이 걷자. 내년엔 미리 근처 맛집 알아볼게… ( ´∀`)


- 글을 나눠주신 세민 님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상담소 행진단도 피켓을 들고 멋지게 행진했습니다. 


멋진 깃발과 함께

멋진 피켓과 함께

다이인 퍼포먼스 중 ~ 


행진이 마무리 된 뒤 마무리 집회에 한국성폭력상담소 겔라 활동가의 마무리 발언이 있었습니다. 발언문 공유하며 후기 마치겠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집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연대해오고 있습니다. 


젠더폭력으로서의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 폭력, 착취이며 이러한 착취의 논리는 자연과 소수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역사 속에서 자연에 대한 착취는 늘 여성에 대한 착취를 동반해왔습니다. 과거, 산업혁명은 여성과 아동노동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엄청난 자원을 사용하는 AI산업을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제3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으로 폭력과 성착취 콘텐츠를 시청하고 분류하는 일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과 그 피해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경험됩니다. 실제로 돌봄 책임, 경제적 제약 등으로 인해 여성의 피해와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납니다. 성별에 따라서만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폭염과 한파 속에서 생명을 잃는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는 기후위기의 피해가 시민권도, 돈도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네팔의 대홍수는 우리와 관계 없는 일이 아닙니다. 산업을 육성한다며 탄소감축을 뒤로 미루고, 3대메가프로젝트를 외치는 한국정부와 우리가 이 재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기존의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최근 구글에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촬영물 삭제 요청서에 담긴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실수가 아니라,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다국적 빅테크 기업의 책임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에게는 콘텐츠와 데이터는 곧 사람들의 유입을 끌어당기는 자본입니다. 그것이 여성의 피해라 할지라도, 기업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자연을 파괴하고, 기술은 각종 차별과 폭력을 재생산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을 외면하며, AI가 곧 미래라고 말하는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세상을 망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우리는 성차별, 성폭력, 불평등의 문제가 곧 기후위기의 문제와 얽혀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기에, 앞으로도 모두의 평등과 존엄을 위해 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