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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북클럽 다불다불 <재앙의 지리학> - 기후위기는 왜 가속화 되는가 -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
  • 2026-10-30
  • 84



한국성폭력상담소 <재앙의 지리학> 후기

기후위기는 왜 가속화 되는가 -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


북한산 아래, 서울 끄트머리에 산다. 어지간해서는 동네 밖으로 출타하지 않는다. 여기는 조용하고, 공기가 깨끗하며, 산과 물과 새가 있다. 물론 도시의 끄트머리 답게 버스 차고지와 경전철 차고지, 쓰레기 수거 차량 차고지도 같이 있다. 


한편 이 도탄에 빠진 세계를 해석하고 조금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골몰하는 자리는 대체로 서울 도심에 있다. 골몰하고 해석에 동참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하게 있지만, 도심 또한 내게는 도탄이라는 이유로 낑낑대며 도망다녔다. 따라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여는 독서모임에 참여한 건 개인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여의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과, 페밋말을 하면서 환경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밋말과 멀어진 동안 내 자신에게 느꼈던 언어의 얄팍함을 독서모임 참여자들이 채워줄거라 기대했다. 


함께 읽은 책의 제목은 <재앙의 지리학>이다. 원제는 <탄소 식민주의>다. 번역 제목이 기후위기라는 재앙이 시작되는 장소(와 이 시작점의 지리적 이동, 탈취, 소모 등등)를 가리킨다면, 원제는 그것을 가능케하는 전지구적 외주화 시스템 자체를 가리킨다. 원인을 좀 더 명료하고 냉정하게 지시한다는 점에서 번역 제목보다는 원제가 더 정확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메시지는 간결하다. 탄소를 발생시키는 장소가 자본의 목적에 따라 더 가난한 국가로, 더 가난한 계층으로 이동한다. 이에 수반되는 위험부터 기후위기라는 대가까지 전가하는 시스템이 문제이다. 시스템을 바꾸어야만 기후위기라는 난제를 헤쳐나갈 수 있다. 결국 이 책을 읽은 후 독서모임 참여자의 생각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첫번째는 절망편이다. 체제를 어떻게 전환해. 두번째는 희망편이다. 체제를 전환하면 되는구나! 


책은 저자가 필드워크를 했던 캄보디아의 벽돌공장에서 시작한다. 벽돌공장에서는 패스트패션 산업이 뱉어낸 옷가지들이 땔감으로 쓰인다. 타는 옷가지들은 탄소는 물론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지구상의 또 어딘가에서는 옷가지들을 태워서 두부를 만든다지.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려 이 땔감이 만들어진 국가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봉제공장으로 잠시 이동해보자. 


전쟁터에서 갓 돌아온 병사처럼

주검을 담은 건 콘크리트와 철골 더미

주검을 덮는 건 흙먼지와 돌가루

함께 묻힌 깁다 만 성조기 패치

산 자의 머리에 얹혀 있던 색색 천들

말없이 돌에 눌려있다


- 김해자 「합장」 중에서


김해자 시인의 「합장」은 2013년 붕괴한 라나플라자 봉제공장의 현장 사진(촬영: 타슬리마 아크흐레트)을 보고 쓰였다. 붕괴 사고 전날 이미 조짐을 보이는 건물에 노동자들은 들어가기를 거부했으나, 폭행을 당하며 강제로 밀어넣어졌다. 김해자 시인은 해설한다.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수백 대 미싱이 한꺼번에 돌아가자 지붕과 기둥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다.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이중 철제문, 좁은 계단과 원단으로 막힌 출구… 그들은 무너지는 바벨탑 안에서 도망나올 수 없었다.”

김해자, 「합장」, 『집에 가』, 삶창, 2015, 65쪽.


독서모임의 이야기는 가난한 식민지에서 탄소식민주의의 가해국 일원으로 ‘성장’한 한국사회로 돌아왔다. 낮에는 미싱일을 일하고 밤에 공부하던 친구들, 집안을 살리려고 혹은 오빠나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대려고 도시의 봉제공장으로 나간 친구들. 인간을 땅에서 축출하고 자본주의 공업화의 기계로 배치해 온 인클로저의 역사는 가난한 국가, 더 가난한 국가에서 재현된다. 한 지역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에 대한 수탈을 동반한다. 가난한 국가가 가난에 머물러 있는 원인을, 그 국가에서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부유한 국가의 깨끗한 환경을 부러워 해서만은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유한 국가가 깨끗할 수 있는 건 오염을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도심의 경계 지역 보이지 않는 곳에 쓰레기 수거차 차고지가 있고, 쓰레기는 더 먼 지역을 이동해서 그곳에 버려지는 것처럼.


깨기 어려운 신화가 있다. 저개발국이 개발을 마치면 중진국이 되고,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이 된다는 단계론 말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독재정권을 몰아낸 한국인으로서 이 단계론은 타당해보인다. 한국은 일종의 ‘인간승리’ 같은 걸 이루었다. 그러나 개발을 통해 성장이 담보된다는 관점은 허상에 불과하다. 전 지구가 서로를 모세혈관까지 착취하며 돌아가는 하나의 구조라는 걸 깨달으면, 한국인으로서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성장에 대한 믿음은 생존자 편향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땅이 갈리고 옷이 태워져 벽돌의 형상으로 우리 발 밑에 누워있다. 자연을 파괴한 인간이 한가롭게 야생을 찾아다니는 동안, 텐트 폴과 트레킹 폴의 소재가 되는 알루미늄 제련 공장은 국경을 넘었다. 우리는 이 좌표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저자는 그것을 똑똑히 보기를 청한다.


그래서 진짜 원인을 보았다면, 알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글로벌 공급망이 감춘 착취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채로 이 ‘무너지는 바벨탑’(김해자)에 기여한다. 이제는 지자체 예산으로도 주최되는 ‘플로깅’ 행사, 심지어 플로깅 전용 가방 굿즈까지. 우리는 그게 체제에 얼마나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지를 이야기 나눴다. 개인의 선량한 실천은 분명 의미있다. 멈출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개인의 실천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분위기는, 더 정확하게 나아가야 할 운동의 방향을 왜곡한다. 쓰레기 줍기에 자족하게 만든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은 분명 선량한 행위이지만, 그것으로는 영구 동토층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대형 화물선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서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않는, 온갖 선량하고 무해한 언설과 캠페인이 생각나지 않는가? “성별 갈라치기 하면서 싸우지 말아요, 조화롭게 사이좋게 지내요.” 따위의.


메가프로젝트 이야기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련된 상담 노동자의 상담을 사서 챗봇을 학습시킨다. 학습이 어느 수준에 오르면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밀려날 것이다. 이는 모든 숙련 노동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의 숙련노동을 모두 학습한 인공지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가. 세탁기의 발명으로 손빨래에 소요되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만큼 위생을 유지하기 위해 또다른 가사 노동을 하게 되었고 여분의 시간을 다른 노동에 투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은 더 바빠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학습 장치로서의 쓰임이 다 한 순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탄소 식민주의는 국가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 안에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서비스 노동시장의 노동자는 그간 쌓아온 시간과 그 시간만큼의 숙련성을 탈취당한다. 홍천에 양수발전소가 생긴다면, 땅과 잣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삶이 잠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이미 경험했다. 섬진강 댐으로 집과 생계가 수몰된 사람들은 계화도로 집단 이주 됐다. 간척 농지 주변에 남은 갯벌에서 여성들은 맨손 노동을 했다. 이 갯벌은 우리가 익히 아는 새만금이 됐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유랑 님의 말처럼 서울이 아닌 곳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국가와 자본이 자연과 인간의 삶에 가한 이주와 추방의 역사를 페미니스트 정의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폭력을 사유해온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공명할 수 있을까. 세민 님은 ‘가진 게 이야기밖에 없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과학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해서 하찮게 여겨지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중요하게 들을 수 있을까. 이것은 반성폭력 활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하는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가진 게 이야기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문가주의, 이를테면 법률과 과학의 언어로 말쑥하게 정돈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이 등장해 이것을 새롭게 명명해주더라도, 잔여는 늘 남는다. 페미니스트 정의란 이 남겨진 자리에 머물며/ 현장에서 길어올린 진실과 부대끼며/ 나의 위치성을 자각하며/ 모순을 견디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식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할 것인가. 이 고민을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할 수 있길 바라며 남겨둔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김도미님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