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8월 29일 신사역 한 펍에서는 온갖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깔깔 웃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환호성도 지르는 밤을 보냈습니다. 상담소의 후원의 밤 <페미와락>이 있었기 때문이죠. 당일 후원의 밤의 여러 장면들을 후기로 공유해보려 합니다.
10:00 – 13:00
오전 10시. 다년간 후원행사를 경험한 활동가, 처음인 활동가 모두 조금은 상기된 모습으로 하나둘 출근하여 상담소에 도착했습니다. 11시.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전체적인 일정과 각자가 맡은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짧은 회의 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데 몇몇 활동가들 손에 검은색 립스틱, 메니큐어, 아이라이너 같은,, 평소에 상담소에서 잘 보지 못하는 화장품들이 들려있습니다. 오늘의 컨셉이 ‘락’이니 락스타처럼 저희도 꾸며보려는 것이지요. 열림터의 조은희 원장님이 과감히 검은 립스틱(바르면 자주색)을 바르고 손톱을 검게 칠해봅니다. 저도 립스틱을 발라보았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색이 점점 선명하게 올라오는데 잘 안지워져서 당황스러웠습니다^^ 12시 도시락을 먹고 마지막 물품 점검을 하고 선발대가 출발했습니다.
14:00 – 17:00
(멋진 무대가 꾸며졌다)
(어서오세요)
당일 날씨는 최근 들어 가장 습하고 더웠던 것 같아요. 이런 날씨에 먼 거리인데 많이들 오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도착해서 의자와 책상을 배치하고 풍선을 매달고 매대를 진열하고 청소도 하고 활동가 밴드가 리허설도 하다보니 금방 오픈시간이 되었습니다. 페미와락 티셔츠와 스태프 목걸이와 무전기를 차주면 스태프 룩도 완성!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과 세팅을 점검 합니다.
17:00 – 20:00
(반갑게 맞이하기)
(일찍 자리가 차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주점에 들어선 첫 번째 후원자님은...! 열림터의 초대 원장님 조중신 선생님과 상담소와 활동가들을 애정해주시는 미소 선생님과 상담소의 정신적 지주 지리산! 점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자리가 빈틈없이 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저희 열림터의 자립홈 또같이가 위치한 동네이기도 한 은평구 페미니스트들도 많이 와주셨는데, 7시 은동이밴드(이하 선데이 타코)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이죠.
(오늘의 MC메탈킴)
(선데이 타코의 밴드 마스터님!)
(너무나 멋진 공연)
선데이 타코는 은평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파생된 밴드에요. 모여서 연습만 해왔다고, 이게 데뷔 무대라고 하셨는데 다시 떠올려봐도 어설픔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하와이안셔츠를 맞춰 입은 선데이 타코 신나는 연주와 맥주가 있던 무대 앞으로 다시 가고 싶어지네요.
매대에도 특별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화려한 목록은 다음과 같았는데요.
- <폭주하는 남성성>, 윤가은 감독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를 비롯한 각종 도서
- 반려견 용품
- 칠리클럽의 캔김치 3종
- 상아 활동가가 만든 구름이네 수제 레몬커드
- 카드지갑, 인센스 스틱 등 잡화
- 열림터 수비공팀의 수제 비즈팔찌와 제로웨이스트 수세미
- <페미와락> 굿즈: 스티커, 티셔츠
등등
(저를 포함한) 열림터 활동가들과 생활인들과 함께 만든 제로웨이스트 수세미와, 비즈팔찌도 걱정과 달리 꾸준히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벤트인 뽑기뽑기와 펀치펀치에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참여해주셨었어요. 영업왕 자원활동가 선경 님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테이블, 매대, 무대 모든 곳에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고 그런 동시에 대기자도 점점 많아져 야외 테라스석을 추가로 오픈했어요. 그런 가운데 어마어마한 두 번째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 – 21:00
(으아 너무 멋져 !!!!!!!!!!!)
(호응에 놀라는 1인 및 럼킥스에 반해버린 2인)
누가 봐도, 어떻게 봐도, 멀리서 봐도 락.스.타.인 럼킥스가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두 대의 기타와 드럼으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다니! 무려 11곡을 내리 달리셨는데 한곡 한곡 부를때마다 환호성은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저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춰서서 공연을 보았는데, 눈과 귀와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렸어요. 장애인이동권 보장하라 투쟁! 같이 외치기도 하고요
페미니스트와 락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것이었나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화난 마음을 대변해주는듯한 럼킥스의 <Don’t Touch My Head> 가사를 공유해볼게요.
“Dont touch my hair
Dont touch my head
네가 닿는 순간 알아챘어
내게 닿을 권리는 네게 없어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대 위의 나를 위한 거야.
길게 늘어놓는 변명 속엔
피해자를 위한 단어는 없지.
다시 만난다면 죽여버릴 거야.
뻔뻔한 너의 표정 속엔
조금의 죄의식도 없지
그저 관심받고 싶어 하는
구제 불능의 삶인 거야.
용서해줄 마음은 없어.
우연히 다시 보게 되면
너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거야.”
21:00- 22:30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경매 사회자 오매 / 상아)
(자원활동가 수림님, 참여자 분들에게 물건을 보여주고 있다)
(낙찰받은 물건을 받으러 뛰어나가는 중)
이어서 경매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하고 의미 있고(중요) 질좋은 물건들이 경매대에 올랐습니다. 오매와 상아 두 진행자의 입담과 올라가는 가격,, 누가 포기하고 누가 가져갈 것인가...
(치열했던 참기름! 최종 낙찰자 서혜진 변호사님)
(활동가를 격려하는 낙찰자님)
최고가로 낙찰된 물건은 페미니스트들이 사랑하는 영화 감독 윤가은 님의 필름카메라와, 열림터 원장님의 어머니가 가족들 먹으라고 농사지은 참깨로 직접 짜주신 참기름 2병! 좋은 물건들을 흔쾌히 내어주신 기증자분들, 경매에 참여해주신 후원자님들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 무대 순서가 진행되었습니다. 데뷔무대이자 은퇴무대 활동가 밴드 ‘백악기’였어요. 백악기는 '대충 100가지 악기를 다뤄보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모임을 만든 활동가는 '밴드 모임이 아닌 악기 연구회'라고 주장하며, 더 이상의 공연은 없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저의 동료들이지만 바쁜 와중에 언제 이렇게 연습을 했을까요.
(백악기를 소개하는 MC메탈킴)
(백악기 시작 전 논의 중)
(신난다 ~ 재미난다~ 감사한 여러분의 호응)
우리의 보컬리스트 산과 닻별 활동가가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는 ‘개구쟁이!’가 귀에 아른거립니다. 은퇴하지 말고 오래오래 연주해주시면 안될지~!
(늦은 시간까지 문전성시를 이룬 상시이벤트!)
그 사이 왔다가 되돌아간 분도 계시고, 사람이 많다보니 음식이 늦어져서 기다리신 분들도 있었어요. 먼 길 찾아오셨는데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미흡했던 부분들은 잘 평가하고 2년 뒤 후원행사 준비에 반영하자고 다짐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이 당일 후원의밤에 와주셨던 후원자님들께 전해들은 후기를 몇개 공유해봅니다. “북적북적하고 활기찬 에너지가 좋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후원행사에 오다니, 의리있는 여성들 모습에 감동받았다” “페미니스트들이 힘들게 지내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잘 떠들고 노는 거 보고 안심했다”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힘이 된다”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이러한 힘과 응원으로 상담소가 나아가겠구나 생각했다” 후원자, 상담소 회원, 자원활동가와 상근활동가, 반성폭력운동을 함께하는 동료들, 페미니스트들이 서로 힘을 주고 받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힘을 얻은 페미니스트 동료, 민달팽이 님께서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잠깐 보시죠!
신사펍에서 열린 페미와락에 갔다 온 후기!
펍에서 한다니 어떨까 무척 궁금했는데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엄청났다. 적당히 분위기 있게 어두우면서도 은은하게 밝은 조명들이 둥실 떠있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꽤 여유있게 보였다.
빈 테이블을 기다리는 동안 페미와락만의 여러 굿즈들도 구경했는데, 예쁘고 아기자기한 게 많았다. 그리고 밴드 공연을 감상하는 동안 차례가 돼서 테이블에 안내를 받아 착석을 했는데, 난 혼자 갔다 보니 마찬가지로 혼자 오신 여성분과 합석을 했는데(미리 양해를 구하셨는데 난 상관없었다)
처음 보는 분인데도 굉장히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과장 보태서 10년만에 만난 친구와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을 정도로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피자를 많이 시켰길래 우리도 소고기 피자와 로제 파스타, 그리고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곧 밴드 공연이 다시 재개되었는데, 딱 봐도 록밴드 같았다. 난 밴드 음악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반가웠다. 우선 머리스타일이 굉장히 독특하셨다. 나와 합석한 분의 소감으로는 기타를 매신 메인보컬분의 헤어스타일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나 또한 격하게 동의한 부분이었다. 무척 유니크한데도 찰떡으로 어울리셔서 솔직히 멋있었다. 반할 뻔했다. 노래 실력도 상당했고 관객 유도도 능숙하셔서 꽤 즐거웠다. 드럼 치시는 분도 소리가 굉장히 유들거리고 파워풀해서 듣기에 편안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고개 돌려가며 감상하고 박수도 열심히 쳐서 분위기가 몹시 좋았다.
한창 즐기다보니 음식이 서빙되었는데 우선 맥주부터 짠! 한 후에 한 입 들이켰는데 꽤 맛있는 흑맥주였다. 가끔 별로인 맥주들이 있는데 여기 건 맛있었다. 로제 파스타도 소스가 눅진하니 부담 없이 돌돌 말아 먹었고, 아 근데 소고기 피자가 진짜 이게 예술이었다.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을까? 농담 아니고 진짜로 큰일 날 뻔했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내 맞은 편의 합석하신 분과 눈을 마주치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엄청난 맛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심지어 피자의 끄트머리 부분은 퍼석한 밀가루 빵이 아니라 부드럽게 부서지는 페스츄리와 흡사한 모양새로 되어 있기까지 한데 이게 또 같이 나오는 머스타드 소스에 찍어서 먹어주면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먹는 게 가능한데다 기름질 수 있는 피자의 마무리를 가볍게 해주기까지 한다! 이건 분명히 신의 맛이 틀림없었다…
정신없이 먹으면서 즐기다보니 어느 덧 페미와락만의 기부 물품 경매 시간이 다가왔다는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브랜드 러닝화부터 시작해서 뭔가 귀해보이는 외국 식물 화분, 금빛으로 빛나는 펜촉 보관 트레이, 영화 감독님의 한정판 굿즈, 작가님이 그리셨다는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그림 액자 (정말 탐났다) 등 여러 개의 물품이 차례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
경매사 역할을 맡은 직원분이 최소가 몇 만원부터 시작합니다! 라고 하실 적마다 사람들의 손이 군데 군데에서 쑥 올라와서 몇 만원! 하시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그림 액자는 나도 혹해서 조금 참여해봤는데, 통 큰 지갑들 앞에서는 여력이 없었다. 합석하신 분도 러닝화 대전에 참여하셨었는데 마지막에 아쉽게 넘겨주게 되셨다. 흡사 타오르는 불길 같은 경매 대전이었다. 경매 물품 하나 하나 낙찰될 때마다 다들 한 마음으로 진심 어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거의 또 다른 공연인 셈이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함께 머물렀던 합석자분도 본인은 이런 곳에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도 함께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셨다. 나도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생생한 후기를 남겨주신 민달팽이 님 감사합니다!
(다시 활동가의 후기로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이번 후원행사의 목표 후원금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목표 후원금을 달성한 사실도 무척 기쁘지만, 이번 후원의 밤에 회원분들께 전화 연락하여 초대하면서 상담소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의 마음과 뜻을 더욱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어떤 바람, 뜻, 이유가 담긴 돈이 모여서 단체 활동과 운영의 기반이 되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익과 욕망에 돈을 쓰기는 너무나 쉽게 되어 있지만(게다가 고물가 시대에..) 후원은 생소하고 변화의 속도는 더딜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후원으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즐거운 시간이셨기를 바랍니다. 모아주신 힘으로 또 열심히 활동해가겠습니다.
- 이 글은 열림터 신아활동가가 작성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