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성명/논평] 강제추행 폭행협박 최협의설 폐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환영한다 :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판결에 부쳐
  • 2023-09-27
  • 1165

강제추행 폭행협박 최협의설 폐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환영한다 

: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판결에 부쳐



9월 21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사촌오빠에 의한 추행에 성폭력 특별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이송했다. 


그동안 강제추행 사건에서 무죄와 유죄를 판가름한 것은 ‘폭행 또는 협박’ 구성요건 판단기준이었다. 일부 판례와 재판 실무에서 ‘폭행 또는 협박’을 넓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지만, 판례와 학설은 여전히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를 유지해왔다.(대법원 2018도13877 상 ‘종래의 판례 법리’)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지금까지 70년 동안 변화되는 인식과 환경 속에서 성폭력 범죄 판단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은 그 의미를 계속 질문받아 왔다.



[참고] [역사적 판례 변천]


2005년 폭행협박 최협의 정도 완화  (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도3071 판결)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된다”


2002년 기습 추행 인정 (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2015.9.10. 선고 대법원 2015도6980 판결 등)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할 것.”


2017년 폭행협박이 간음 이전에 반드시 선행될 필요 없음(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6도16948, 2016전도156 판결)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과 간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나, 폭행·협박이 반드시 간음행위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기습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의 성기에 삽입하고, 피해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반항을 억압한 다음 간음행위를 계속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행위는, 비록 간음행위를 시작할 때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간음행위와 거의 동시 또는 그 직후에 피해자를 폭행하여 간음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강간죄를 구성한다.”


2019년 강제추행 판결에서 동의 번복과 예상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거부의 자유 (대법원 2019.6.13. 선고 2019도3341 판결)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는 피해자의 동의에 성립 여부가 달려있다고 언급하며) “피해자가 사전에 성매매에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여전히 그 동의를 번복할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예상하지 않았던 성적 접촉이나 성적 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할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 변경은 당연하다. 


대법원은 2023년 9월 21일 판례 법리를 변경하여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이 밝힌 판례 변경의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폭행과 협박에 대해 기존에 요구해온 ‘항거곤란’ 기준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보호법익과 부합하지 않는다.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해 일반적인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항거가 없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피해자에게 여전히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는 것이다. 


둘째.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이 폭행죄 또는 협박죄에서 정한 ‘폭행 또는 협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명히 정의되어야 법적 안정성 및 판결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강제추행죄에 대한 법원의 판례와 재판 실무가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변화되어 왔지만, 재판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기도 하고 종래의 판례 법리와 현재의 재판 사이의 불일치, 오해의 소지와 혼란이 있으므로 이를 방지해야 한다.


그동안 반성폭력 여성인권단체와 피해생존자, 법률가 및 법정책 연구자, 국제인권기구가 자료와 연구, 주장으로 변화해야한다고 요구해 온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가 대법원 판례로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례 변경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번 대법원 판례에 담긴 쟁점과 토론에 대해서도 의견을 더한다. 


대법관 안철상, 노태악, 천대엽, 오석준, 서경환의 보충의견에 등장한 태도와 견해에 명확히 우려를 표하며 비판한다. 이 다수보충의견은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엄격하게 제한한 종래의 해석론을 바꾼다면, 강제추행죄의 ‘추행’의 정도에 엄격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며, 신체부위에 대한 차등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의 신체를 분할하여 성적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로 나누는 것은 기계적이고 편협한 이해이며, 이는 가부장적인 편견과 성폭력을 사소하게 보는 시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보아 피해자의 성적수치심을 유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신체 부위는 어디인가? 추행의 정도가 매우 가벼운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이 기준은 엄격할 수 없는 기준이다.  불법촬영 대상인 신체 부위에 차등을 두고, 성희롱 대상인 신체 부위에 차등을 둔 그간의 판결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이미 변경되어 왔음을 주지해야 한다.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이 짚고 있는 지점은 판례 변경의 적실성과 필수불가결한 점, 반론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어 추후 재판 실무에서 꼭 참고되기를 강조한다. 이 보충의견은 “강간과 추행의 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본질이 피해자의 ‘동의 부재(결여)’에 있다는 점은 현행법상 범죄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입법상의 변화가 판례상 변화의 시급성과 당연함을 의미한다는 이 의견은 적확하다. 실제 법원에서는 ‘동의 부재(결여)’를 파악하고 판단해야 하는 현실적인 사건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성범죄를 규율하는 세계 주요 국가의 법률이나 판례법 등은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던 데에서 피해자의 ‘동의 부재(결여)’를 그 본질적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강간과 추행의 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본질이 피해자의 ‘동의 부재(결여)’에 있다는 점은 현행법상 범죄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판례 변경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다. 


2023년 9월 21일 대법원의 결정은 무수한 말하기와 기다림과 고통 이후 이뤄진 늦은 결정이다. 대법원의 강제추행죄 ‘폭행 또는 협박’ 판례 변경 이후인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본격적이고 공공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강간죄’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한 최협의설 역시 시급하게 폐기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송치, 기소, 판결, 무죄에 대한 항소와 상고를 통해 현실에 발 딛는 강간죄 ‘폭행 또는 협박’ 대법원 판례변경이 곧바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 형법 297조 강간죄 298조 강제추행죄 ‘폭행 또는 협박’ 구성요건은 변경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기본 요건으로 하고 ‘폭행 또는 협박’은 가중요건이 되어야 한다. 강간죄와 강제추행죄 법률의 변경은 세계적 변화이며 국제사회의 권고다.


2019년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이하 강간죄개정연대)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44개 성폭력상담소 강간상담 사례의 71.4%가 명시적 폭행 협박이 없었음을 밝혔다. 2022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119개 상담소 강간상담 4,765건에서 명시적 폭행 협박을 동반한 사례는 20.7%에 그쳤음을 다시 확인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 성추행 상황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던 경우는 10%가 되지 않으며 속임수 34.9%, 갑자기 26.6%, 강요 18.7%, 지위를 이용 16.2% 하였다는 성추행 수단과 방법의 현실이 드러냈다. 강간죄개정연대는 2023년 릴레이 의견서 및 피해 생존자 글을 통해 청소년, 이주, 장애, 성매매, 업무상 위력, 친족성폭력, 술과 약물, 배우자관계가 어떻게 성적 침해를 가능하게 하는지, 성폭력 신고 및 인정이 사각지대에 있는지 드러냈다. 


변화해야 할 이유인 피해생존자들이 겪는 현실의 목소리는 아직 너무 많다. 사법부와 입법부, 정부는 이제부터 서로의 역할을 가릴 것 없이, 현실에 맞는 대책과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뤄진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판결을 환영하며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2023년 9월 27일 한국성폭력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