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운동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도서 <폭주하는 남성성> 출간기념 : 온라인 북클럽 다불다불 7월 홍보물
오픈 채팅방 형식의 디자인에 "든든한 페미동료들과 다정하고 불온하게 함께 읽자!"라고 쓰여있다.
지난 8월 3주간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도서 <폭주하는 남성성>을 함께 읽는 북클럽이 운영되었습니다. <폭주하는 남성성> 단행본 기획팀과 출판사 동녘의 밤톨 편집자님, 45명의 북클럽 참여자들이 이 밀도 높은 책을 천천히 함께 읽었습니다.
지역 도서관에 도서 비치를 서로 독려하는 소소한 실천부터, 폭주 기관차 같은 표지를 일상에서 1인 시위로 활용하는 기개, 육퇴 후 혹은 출퇴근길에서 읽은 감상을 나눈 순간들이 저에게도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혼자보다는 같이 읽고 싶어서”
기대보다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북클럽! 다양한 분들이 다양한 이유로 <폭주하는 남성성> 북클럽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남겨주셨어요.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 여성을 죽여서 ‘화풀이’하는 남성들, 여성의 고통을 팔아 돈을 버는 남성들 슬로건이 인상 깊었었는데 단행본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혼자 읽으면서 힘들기보다는 같이 읽고 싶어서”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자”
“지금 최고의 관심사가 극우여서” “자신의 지인/혈육이 ‘4찍’이 되어 이해해 보고자” “계엄령 이후 광장의 민주주의와 2030 남성의 극우화 논쟁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싶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책이라서” “최신 페미니즘 담론을 업뎃하고자”
“현실에 고개만 흔들기보다는 주변과 사회를 바꿔나가고 싶어서”
천천히 촘촘히 함께 읽기
현생에 치여 매주 일정 분량의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더하여 참여자들은 질문, 나눔, 추천 등 품을 내어 올리는 글에서 엄청난 성실인의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 긋고 따라오는 생각을 나누고, 연결된 기사나 책, 영상 등을 추천하며 서로 영업하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거나 조금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은 질문하며 함께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3주 동안 풍성한 대화의 내용 중 일부만을 옮겨보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극우가 일상의 문제이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눈 앞에 마주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는 늘 어렵고 고민되는 문제이지요.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지인이 극우적 세계관과 가깝다면, 나는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이런 현실적 고민이 대화 속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주변화된 남성성에 일부분 동감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과 폭력의 연결고리가 필연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것에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요?
“폭력적이고 때로는 범죄와 연결되는 행위를 하는 남성들이 사실 남성성을 대표하거나 헤게모니적 지위를 차지하지는 않아 왔고 오히려 ‘나는 그런 남자는 아니야’라고 선을 긋는 방식으로, 많은 남성이 이들을 알리바이처럼 활용”하는 현실, “남성문화가 지긋지긋한 면이 있기 때문에 분명 이탈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새로운 남성 무리를 만들기보다는 점점이 존재하고, 남성성에는 좋은 것들은 이탈하고 나쁜 것만 남아 있는 상황”에 대한 권김현영 선생님의 진단을 함께 나누었어요.
연결하여 추지현 선생님의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에 기반한 폭력성을 과시하는 것이 폭력의 직접적 인과는 아니지만, 그것의 우호적 맥락을 형성한다’고 하는 분석에 밑줄을 그으며 같이 고민을 이어 나갔습니다.
북클럽이 지속되는 기간에 잇따른 친밀한 관계 내의 여성살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상황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이야기도 진행되었어요.
우선 어떻게 명명하고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페미사이드 등 여성 대상 범죄들을 어떻게 명명하는게 좋을지, 성차별/불평등의 존재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여성혐오 범죄’라는 명명을 가져가야할지.” 그러나 친밀한 관계의 경우 ‘비뚤어진 소유욕, 뒤틀린 집착’으로 이해되는데 이것이 왜 ‘여성혐오’인지 직관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며, 오히려 ‘남혐’과 같은 방식으로 오용 내지 전용될 위험도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셀범죄’라는 명명도 고려해봄직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친밀한 관계 내 용어와 개념에 대한 공부도 이어졌습니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교제폭력/데이트폭력의 명명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친밀한 관계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있고 여기에 ‘일방적으로 친밀성을 추구하는 관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방적 친밀성 추구’ 관계도 친밀성의 맥락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현재 정책 용어로 채택된 ‘교제폭력’은 교제가 공식적으로 성립된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폭력처럼 이해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사건은 일방적 친밀성 추구 속에서 발생하며, 이는 스토킹과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등과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피해자들 또한 ‘교제 폭력’이라는 명명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불리는 순간, ‘한때 친밀한 관계였다”는 지위를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적, 제도적 대응에서는 그 지위를 점유해야만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모순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모순과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친밀한 관계라는 포괄적 용어를 사용하고, 여기에 일방적 친밀성을 추구하는 관계도 포함해야 하는 논의가 제안되고 있다는 점을 공유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에 큰 질문을 안겨준 사이버레카에 대한 대화 내용도 인상깊습니다. “사적 보복 또는 응징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선택하며 해결의 주체로 나서고 존중받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모범택시나 비질란테 같은 응징 콘텐츠가 호응을 얻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위치나 관점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부작용”을 우려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리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적 처벌/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이버레커를 통한 신상 폭로와 ‘사적 제재’를 택하는 생존자의 선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라는 질문도 오래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폭주하는 남성성 북클럽 완주기념 줌 미팅
3주간 책을 매개로 느슨하지만 끈끈하게 만나왔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 없어서, 얼굴 한번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줌미팅 자리가 성사되었습니다. 8월 26일 저녁에 만나 한 시간 알차게 책에 대한 각자의 총평도 나누고, 한국성폭력상담소 토론회를 한권의 책으로 엮는 데 큰 역할을 해주신 편집자님과 소회도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참여자들의 총평을 일부 공유해봅니다.
“특히 성매매 관련한 장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여성의 성착취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왜곡된 남성성을 누리는 남성도 있겠지만, 남성 중에서는 페미니즘을 통해서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고, 막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희)
“요즘 ‘에겐남’ ‘퍼포머티브 메일’ 등이 상업적인 마케팅 요소로 등장하는 상황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에겐남’, ‘퍼포머티브’ 메일 등 소위 ‘무해함’을 강조하면서 연애 시장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이야기된다. 남성문화에서 연애라는 것이 남성성의 속성을 변화시킬 만큼 중요한가? 자본주의 시대에 폭력과 연결되는 남성성과 이런 매력적으로 호명되는 남성성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언제나 대안적 남성성이 무엇인가? 질문도 늘 남는다. 정책적 접근? 교육적 측면? 남성성 개입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 고민이 든다, 상담소에서 후속작을 내달라…!” (동글)
“작년 계엄 이후, 서부지법 사태를 지나며 남성성 관련 교육과 포럼이 많이 늘었다. 민주주의와 남성성을 연결하는 논의 정말 많아졌다. 열심히 찾아 들으면서, ‘아! 남성성의 유해한 부분들이 여기에서 터졌구나’ 정리할 수 있었다. 편집자님과 기획자의 의도도 이것과 맞아떨어진 것 아닐까” (화용)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처음에 보고는 너무 어려웠다. 헤게모니 남성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계엄과 관련하여, 극우화된 남성들의 배경이 궁금했다. 그래서 후반부를 흥미롭게 보았다. 2030 극우화된 남성들이 갖고 있는 커뮤니티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다른 책을 함께 보며 커뮤니티라는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됐다” (엘모)
“많은 이들이 변화를 위해 페미니즘을 고민하는데 이런 유해한 것들, 세상에 혐오를 던지는 것들에 어떻게 대항할지 고민이 된다. ‘대안적 남성성은 가능한가?’ ‘그것이 왜 남성성의 형태가 되어야 하느냐’의 질문도 한다. 이준석류의 서사가 아닌 다른 서사가 등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저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교육적 접근, 정책적 개입? 그럴때 북클럽이 재미있었다. 권김현영 선생님이 남성문화가 지긋지긋한 면이 있기 때문에 분명 이탈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짚으면서 그런데 이들이 새로운 남성 무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점점이 남아있다고 진단한다. 헤게모니 남성성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은 남성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되긴 어려운 상황. 계속해서 좋은 것들은 이탈하고 나쁜 것만 남은 것이 현재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탈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조명해야 할 것인가? 북토크에 와서 고민을 나눈 남성페미니스트들, 이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수수)
“파편화된 남성들의 모습 공감이 된다. 남성으로서 주변에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정말 없다.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 <폭주하는 남성성>도 함께 읽으려고 하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당근에서 지역 페미니스트 모임도 제안하는 등 작은 실천들을 이어가고 있다”(동석)
“책이 너무 잘 쓰여서…… 꼭꼭 씹으며 잘 읽었다. ‘극우’ ‘여성혐오’ ‘여성살해’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구조를 깊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장 마지막마다 희망을 얘기하고 있고, 또 2회차 이어진 북토크에도 남성 참여자 비율이 높았다고 하여, 희망을 얻어가는 귀한 시간이었다.”(낙타)
“세상이 이상한데?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사건들이 일어나고 절망하고 있었다. 이상함을 저만 느끼는 건 아니었을 것 같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엮어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폭주하는 남성성’이 흩어진 사건들을 묶어서 설명하는 언어, 렌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명명이 여러 효용과 한계도 있을 것인데 이 말의 직관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단행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충격 요법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논의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랐고, 논란을 촉발하길 바랐다. 논란이 있지 않고 조용하게 지나가는 사회와 논란을 거친 사회를 비교하자면 논란 속에서 반박하고 싸우는 과정을 거친 사회가 좋다는 판단을 했다. 한편으로 이 책이 저로서도 뜻깊은 책이다. 기획 당시부터 제 삶의 고민과 합치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상담소가 좋은 기획을 만들어주셔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저 개인으로도 회사에도 사회적 책임을 지는 출판을 할 수 있는 책이라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 논의가 더 갈급해진다. 지금은 공통점을 중심으로 묶었다면, 남성성을 더 세분화해서 차이점을 확인하고 어떻게 포섭할 수 있을지 고민도 남는다. ”(동녘 밤톨 편집자님)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