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역량강화
2025년 4월부터 6월, 여성주의 글쓰기 집단상담 <그래서 글에 써>를 진행했습니다. 성폭력 생존자들과 프로그램 진행자인 은유 작가님은 총 10주간 치유·회복을 위한 여정에 함께했습니다.
8월 25일, 동명의 제목으로 문집을 발간했습니다. 문집에는 참여자 6명(나무, 전경, 푸른나비, 물, 이제야, 밤가을)이 쓴 글과 참여자 1명(진이)이 찍은 사진들이 실렸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PDF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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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2024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발화>에 이끔이로 참여해주셨던 나기님께서 작업해 주셨습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공생하며 뻗어 나가는 담쟁이 덩굴처럼, 성폭력과 성차별 경험 속에서 살아남고 함께 모여 치유·회복의 과정을 밟아온 생존자들의 글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참여자 나무, 푸른나비, 물, 이제야, 밤가을님이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나무
꼭 필요한 작업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미뤄왔던, 경험에 대한 글쓰기를 토해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함께 참여해주신 선생님들의 진솔하고 용기있는 고백 덕분에 저도 용기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푸른나비
누군가는 내 삶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살았냐”고 묻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는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부모가 있어 지금 네가 존재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 모든 말 앞에서 나는 대답을 잃었습니다. 학대와 폭력으로 얼어붙어 있던 어린 시절의 나.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폭력의 기억이 나를 짓눌렀고, 글을 쓰는 내내 그 기억이 요동쳐 몸과 마음, 모두가 아프게 앓았습니다. 피해의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적지 못하는 나를 향해, “마음껏 써도 괜찮다”는 따스한 격려가 다가왔습니다. 서로의 글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다정한 이끌림 덕분에 힘겨웠지만 의미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우리 모두의 글은 놀라울 만큼 빛났고, 우리는 서로의 글에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글 한 줄, 단어 하나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그리고 그 고통이 표현될 수 있는 ‘언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쓰기를 이끌어 준 활동가와 작가님께도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대답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나이지만, 이 모든 것이 결코 내 탓이 아님을 이제는 분명히 고백하고 싶습니다.
물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저는 이 이야기를 제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살았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힘들었고, 혹여나 용기 내어 말하려 해도 세상은 늘 외면하거나 덮어두려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짐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침묵하고 싶지 않았고, 제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끝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펜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가니,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이 정도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해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저 자신을 놀라게 했습니다. 동시에 이만큼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야기를 저보다 더 아파하며 들어주고 함께 울어준 소중한 글쓰기 벗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영원히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을 겁니다.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야
오랫동안 묻어두고 묵혀놨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써보는 10주였습니다. 직면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여러번 관두고 싶다고도 생각했는데,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각자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모든 분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을 이해받고 있고, 나의 경험이 편견 없이 수용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런 느낌들이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10주간의 기억 덕분에 저는 아마 다른 곳에서도 또 용기내어 말하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존중받았던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가 받은 그 느낌을 꼭 나눠주려고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밤가을
엉킨 실타래 같던 기억을 드디어 글로 풀어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당신의 글을 읽고 나도 더 용기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서로 말해주며 공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생존자 동료들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이 글이 또 다른 생존자에게도 가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