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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안대응

공론화가 진행 중인 개별사례의 구체적인 쟁점을 알리고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밀양집단성폭력사건-끝나지 않은 이야기
  • 2005-09-16
  • 6192


작년 12월,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밀양 집단성폭력사건이 알려진지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권침해로 문제되었던 수사과정을 거쳐, 기소된 10명 전원 소년부송치라는 어이없는 1심 판결, 그리고 소년부 송치 이후 처분결정까지 난 이 사건은 법적으로는 일단락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러 의미에서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고 있는 본 상담소는 이 사건이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이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단상을 우리사회에 밀양 집단성폭력사건이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피해 생존자의 인권침해

이 사건이 알려지기까지는 1년여 동안의 생존자의 고통이 있었다. 2004년 1월부터 피해를 입어온 생존자는 그동안 가해자들로부터 “동영상을 공개 하겠다”,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공포와 두려움, 절망 속에서 중학교 3학년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친가에서 가출 하여 아버지와 이혼 후 따로 살고있는 엄마를 찾아가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머니와 이모는 생존자를 설득해 작년 11월 25일 고소를 했고, 생존자는 고소만 하면 경찰이 알아서 가해학생들을 처벌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요청했던 여자경찰의 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수사관으로부터 “밀양물을 흐려놓았다”라는 폭언을 들어야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가해자 가족들로부터 “고소하고 잘 사나보자”는 위협을 받았으며, 언론에 생존자의 신상이 유출되어 여동생까지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경찰은 44명이나 되는 피의자들을 세워놓고 그 면전에서 생존자에게 강간한자와 강제추행한자를 골라내라고 하는 주문을 했다. 또한 워낙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생존자는 경찰수사 기간에만 9차례나 불려가 한번에 7-8시간 이상씩 진술을 해야했다. 이 사건을 위한 특별검사팀을 꾸렸다는 검찰에서도 마찬가지로 “왜 계속 밀양에 가서 피해를 당했느냐”는 식의 다그침은 피해자비난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생존자는 수사과정에서 정말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입은 것이다.


“합의를 했고, 피고가 미성년자들”이라고 면죄부를 준 재판부의 판결

이번 사건의 44명 피의자들 중 10명(20명은 소년부 송치,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1명은 타형사사건으로 입건)만이 기소된 채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은 일제히 “강제가 아닌 자발적 행위”라고 주장했고, 피고측 변호인은 생존자의 행실을 문제삼았다. 거의 모든 성폭력사건 재판에서 관행처럼 되어버린 피해자 비난논리는 이번 재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4월 1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황진효 부장판사, 이현복판사, 정영태판사)는 피고들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충동적 집단심리에 의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점, ▲사건 진행중에도 친분관계를 유지한 점, ▲피해자들이 합의한 점, ▲피해자들이 현재 충격에서 벗어나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피고인들이 고등학생으로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이고 인격이 미성숙한 소년으로 교화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원 소년부 송치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폭력 피해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1년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일어난 범행이라는 점, ▲친분관계 유지라는 지적은 집단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심리와 그 특별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생존자의 의사가 아닌 친권자인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합의였다는 점, ▲피해생존자는 당시 학교를 결석하고 가출을 한 상태라는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점, ▲피고인들이 미성년자들이지만, 10여명 이상씩 돌아가며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하고, 갖은 협박과 폭력을 행사했던 죄질은 여느 성인범죄 못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당시에 법정에서 판결을 받고 있던 10명의 기소된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들이 과연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재판부의 선처가 피고인들에게 혹시 자신들의 무죄나 죄질의 가벼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피해생존자를 고통스럽게 했고, 나아가 각자의 가족들과, 사회적으로 끼친 악영향 등을 저들은 깨닫고 있을까하는 우려는 단지 나 혼자만의 기우는 아니었으리라. 얼마전 소년원에 있는 아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생존자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며 학교까지 무턱대로 찾아온 한 가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면서도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44명 전원에게 아주 특별한 교정교육이 필요함에도 부산가정법원의 소년부 처분은 기소된 10명 중 5명에게는 소년원 송치, 나머지 5명은 보호자와 자원보호자의 감호위탁, 보호관찰, 사회봉사와 수강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이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는 소년법에서 소년범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사건임에도 재판정보 검색이나 방청도 할 수 없고, 재판결과에 대한 별도의 불복수단도 없다.(* 소년법 문제는 나눔터 제47호 참조바람)


“친권남용에 의한 합의”가 남긴 것들

이번 사건의 판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피해자 측의 ‘합의’로 보인다. 그런데 이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서류상의 합의서와 탄원서로만 현실을 파악했다. 이들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피고인 측의 끈질기고 집요한 공략이 있었다. 이들은 생존자의 아버지와 친가 가족들의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며 합의를 강권했고, 친권을 가진 아버지는 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는 생존자에게 “내가 퇴원시켜주겠다”며 딸의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강행한 합의였다. 당시 생존자는 한 달간의 정신과 입원 후 퇴원했다가 자살기도로 다시 강제입원을 한 상태였다. 따라서 생존자로서는 외부와 단절된 정신과 병동 입원이 죽고싶을 정도로 싫었고, 피고인들의 가족과 친부는 이러한 상태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로서 본 상담소는 생존자 본인과 친권을 갖고 있는 친부(비록 알콜중독자로 심한 가정폭력의 경력이 있다해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었다. 단지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가진 회의에서 집에 가 있는 동안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을 것, 가해자와의 결혼 등의 이야기는 장난으로라도 절대 하지 않을 것, 자살충동의 우려가 있으므로 세심한 배려를 할 것, 10일 후 쉼터에 입소한다는 약속 등을 각서로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퇴원 후 친가에 가는 차안에서부터 합의종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 자고 있는 생존자를 깨워서 주범의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한다.
생존자는 합의 이후 벌어진 가해자측의 비웃음 섞인 반응과 합의금으로 받은 돈들이 아버지의 전셋집 마련과 친척들에게 나뉘어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후회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자가 후회한 때는 이미 합의와 탄원서 제출이 모든 법적 효력을 발생한 이후였다. 결국 생존자는 다시 가출을 하여 엄마를 찾아 헤맸고, 1심 판결 하루 전날 극적으로 엄마를 만나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생활하고있다. 이후 친부는 담당변호사와 본 상담소 등 지원단체들의 설득으로 자신의 친권을 친모에게로 변경하는데 동의를 했고, 지난 주에는 법원에서 친권변경 판결이 났다. 그러나 새로이 친권을 되찾은 엄마는 그 합의금의 단 1원도 받지 못한 채 월세방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재판부가 보지 못한 것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생존자가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피고인들에게 선처를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선고 당일 생존자는 이미 10여일 동안이나 학교를 결석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법정에서 ‘평온한 학교생활’을 운운하는 재판부의 선고를 들으며 지원자로서 나는 만감이 교차되었다. 제출된 서류로만 판단하고 있는 재판부의 실상을 알 수 있었고, 그 서류들의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결국 지원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였다.
생존자는 어렵게 중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에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욱이 재판 이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서 전학을 해야만했다. 그러나 전학을 하기위해 알아본 10여곳의 학교에서는 “장기 결석생”이라며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한 학교 전학담당자는 학교를 찾은 생존자의 어머니와 나에게 “아무리 그런 일을 당했어도, 부모로서, 또 상담자로서 아이를 얼른 추슬러서 학교부터 등교시켰어야 했다”고 했다. 나는 “피해생존자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따뜻하게 배려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이라고 항변을 했지만, 보수적인 교육계의 실상이 뼈져리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닌다해도 생존자가 이러한 제도와 의식구조 안에서 다시 상처받을 일이 걱정되었다. 결국 교육부와 해당 교육청에 항의를 한 후 간신히 한 학교로부터 전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교육부가 각 시도 교육청에 “성폭력전담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하나도 변함없는 인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정안이 마련된 학교폭력관련법에서도 학교폭력에 성폭력을 포함하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성폭력 후유증으로 인한 장기결석은 학교폭력 피해로서 출석으로 인정되는 특례가 인정되지 않는 상태이다.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책위원회와 네티즌들의 활동

12월 7일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생존자 가족은 울산지역의 한 성폭력상담소에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에 대한 상담을 요청해왔다. 이어 여성단체에서 경찰청장을 항의방문하여 진술녹화와 신뢰관계자의 동석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12월 10일에 울산지역의 여성,사회단체들이 ‘밀양성폭력사건대책위’를 구성하였다. 대책위에서는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경찰청, 검찰청 방문, 재판 방청 등의 활동과 의견서 제출,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대책위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지난 4월 15일에는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 토론회를 갖고 특히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또한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의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에서도 경찰,검찰,재판부를 항의방문하고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된 수사와 재판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대책위와 함께 1심 재판결과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 발표, 피해생존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생존자의 2차피해 사실에 격분한 네티즌들은 충격과 분노를 넘어 인터넷 카페운영과 광화문에서의 16차례에 걸친 촛불시위, 서명운동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했다. 그리고 피해 생존자를 돕기위한 기금모금을 하여 생존자에게 전달해달라며 본 상담소에 기탁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이 가해학생들과 가해학생으로 오인된 학생들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요란했던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대응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유래없이 적극적이었던 국회와 정부 각 부처의 반응이다.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현 청소년위원회), 교육부 등에서는 각기 진상조사단을 꾸려 현장을 다녀오고 대응책을 발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국회에서는 각 정당마다 특별대책반을 결성해 울산 현장에 내려가 진상조사를 하고, 당정협의 내용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 사건이 얼마나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란한 대응의 과정과 결과를 보며, 한편에 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연이은 조사단의 울산 방문으로 경찰서에서는 실제 수사보다는 이들에게 보고하는 데에 더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정작 피해 생존자에게 필요했던 어머니와 생존자 자매가 살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 마련은 어느 부처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허술한 지원체계 때문에 생존자는 다시 열악한 환경의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면서 강요된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또한 교육부의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 연달아 일어난 익산집단성폭력사건과 진주집단성폭력사건에서 보면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학교행정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현재 이 사건 이후로 국회에 8개의 성폭력특별법개정안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신뢰관계인 동석제도 확대, 여경조사권 확대 등 대부분 2차피해방지와 피해생존자의 권리확보를 위한 법안들로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 11년만에 유래없는 대폭적인 개정안이다. 이러한 변화는 밀양집단성폭력사건으로 인한 긍정적인 사회의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존자에게 힘찬 응원과 지지를...

본 상담소에서는 지난 12월 15일 울산에서 처음 생존자와 가족을 만난 이후, 그동안 수차례의 법정지원과, 상담, 병원연계, 쉼터연계, 학교전학, 복지혜택 연계 등의 지원을 해오고 있다. 지금도 이 사건의 피해 생존자는 밤이면 문고리를 몇 번씩 확인하는 등의 정신적 불안과 여러 신체적인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특유의 밝음과 힘을 함께 지닌 생존자이고, 때로는 장난도 치는 보통의 청소녀이기도 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오히려 아버지의 술주정과 가정폭력이 없이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생존자를 만날 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그 내면의 강한 힘이 느껴지곤 한다.
이 생존자는 지난 1년 반동안을 참으로 길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왔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많은 어려움도 예상된다. 이 사건의 법률지원을 하고있는 강지원변호사는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및 친권변경 판결 이후 여러 필요한 조치들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당장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나아가 학업을 계속할 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고1인 이 청소녀의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를 향한 꿈, 그 힘이 느껴진다. 또한 생존자가 희망을 가꿔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을 공유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고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 생존자는 더욱 특별한 용기와 지혜를 갖고 분투해주길 기원한다. 이를위해 우리 모두의 힘찬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더불어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2차피해를 방지하고, 생존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해 우리사회가 함께 노력해가야 한다.

글쓴이 : 이미경 ( 본 상담소 소장 )

<이 글은 7월 중순 발간 예정인 나눔터 50호에 실릴 글입니다.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2005. 나눔터 50호로 표기해주시기 바립니다.>